노벨상 한강 “광주민주화운동이 내 인생 바꿔놔” 작품 세계 들여보니

이향휘 선임기자(scent200@mk.co.kr) 2024. 10. 1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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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10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다.”

스웬덴 한림원이 10일(현지시간) 소설가 한강(53)에게 한국인 첫 노벨문학상을 안기며 밝힌 선정 이유다. 이 한 문장엔 한강의 작품 세계를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키워드가 모두 포함돼 있다.

한강의 작품 세계는 단순히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사회적 폭력을 탐구하는 강렬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 시적인 강렬한 문장과 긴밀한 서사 구성, 풍부한 상징으로 주제의식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0년 11월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은 시로 등단하며 문단에 발을 들였다. ‘문학과 사회’ 1993년 겨울호에 시를 발표했다.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됐다.

첫 소설집인 ‘여수의 사랑’부터 차원이 달랐다. 인간 상처를 낱낱이 파헤치는 치열한 세계관을 선보였다. 첫 장편 ‘검은 사슴’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성의 모습으로 심연을 파고들었고, 두 번째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은 석고로 인체의 본을 뜨는 라이프캐스팅을 다뤘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촉망받는 여자 화가의 의문사에서 기억과 고통을 조명했고, ‘희랍어 시간’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 중 하나인 희랍어를 소재로 말(言)을 잃어가는 여성의 삶을 통해 침묵과 소멸을 이야기했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를 새롭게 조명하며, 우리 사회가 숨기기 급급했던 희생과 상처를 정면으로 꺼냈다. 여전히 5·18의 트라우마를 안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학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를 건넸다. 한강은 이와 관련 한 인터뷰에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다”며 “아버지(소설가 한승원 씨)가 보여준 그 사진첩은 내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제주 4·3의 시대적 비극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았다. 그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의미에 대해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사랑이든 애도든 끝내지 않고 끝까지 끌어안고 가겠다는 결의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2016년 그에게 ‘맨부커상’ 영예를 안긴 ‘채식주의자’(영어판 제목 The Vegetarian)는 한강을 명실공히 세계적인 작가로 끌어올린 역작이다. 격렬한 꿈에 시달리다 육식을 거부하게 되면서 스스로 나무가 되어간다고 믿는 여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국내에서 100만부가 팔린 대형 베스트셀러이자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문학상 중 하나를 안기며 한국 문학을 세계 문학의 주류로 편입시킨 작품으로 꼽힌다. 고요한 식물적 상상력과 시적 언어가 맞물리며 폭발할 것 같은 격정과 고통을 담았다.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작품은 ‘흰’이다.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절대로 더럽혀질 수가 없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이면서 시 성격도 지닌 이 작품은 강보, 배내옷, 소금, 눈, 달, 쌀, 파도 등 세상의 흰 것들에 관해 쓴 65편의 짧은 글을 묶은 책이다.

한강은 지금까지 인간을 둘러싼 폭력과 부조리에 대해, 남성 중심주의에 대해, 끊임없이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글을 써왔다. 한강표 소설을 단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그것은 ‘인간’ 두 글자일 것이다.

벼락 같은 희소식에 문단의 찬사도 이어졌다. 신수정 문학평론가는 한국 여성에게 아시아 최초 여성 노벨문학상이 수여된 것에 대해 “한강 문학의 핵심인 여성성과 시적 울림이 드디어 전세계에 통했다”며 “한국 여성 문학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한림원이 밝힌 ‘시적 산문’이라는 표현과 관련해 “시적 산문이 단순히 시같은 산문이라는 형식뿐 아니라 소외된 자들의 재현이라는 내용도 포함하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해석했다.

정과리 문학평론가는 한국인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올 게 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인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오래 지체되었는데 전세계 독자들의 호응을 산 한강 작가에게 영예가 돌아갔다”며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채소가 되고 싶은 자와 탐미주의자 간의 대비를 강렬하게 표현한 점이 서양 독자들에게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1970년 광주 출생 ▷1993년 연세대 국문과 졸업 ▷1993년 ‘문학과사회’에 ‘얼음꽃’ 외 4편의 시로 등단 ▷1994년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 당선 ▷2005년 제29회 이상문학상 대상 ▷2007년 서울예대 미디어창작학과 교수 ▷2010년 동리문학상, 목월문학상 ▷2014년 만해문학상 ▷2015년 황순원문학상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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