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한강] 부서지기 쉬운 인간의 삶이지만…"천천히 더 나아가고 싶다"

김여진 2024. 10. 1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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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쾌거
▲ 2018년 김유정문학촌에서 열린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한 한강(사진 가운데) 작가. 강원도민일보 자료사진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소설가 한강은 6년 전 춘천에서 “우리가 이 세계에 잠시 머무는 의미가 대체 무엇인지, 이 세계에서 끝끝내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천천히, 더 나아가고 싶다”고 했다.

2018년 김유정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전상국)가 시상한 김유정문학상을 받았을 때다.

또 2016년 소설 ‘흰’ 출판간담회에서 노벨문학상 관련 질문을 받았을 때는 “글을 쓸 때 과연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 사이에서 흔들리다가 ‘어떻게 되긴 됐네’하는 그런 느낌으로 완성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상이라든지 그 다음 일들까지 생각하기에는 여력이 부족하다. 어디까지나 책이 완성되고 다음에 아주 먼 결과”라며 “그냥 글 쓰는 사람은 그냥 글 쓰라고 하면 좋겠다”고 답했었다. 맨부커 국제상 수상 당시에는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드린다”는 소감을 남겼었다.

그런 그가 첫 노벨문학상을 한국에 안겼다.

한강 작가는 여성 작가로서 역대 18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기록됐다. 아시아 국가 국적의 작가 수상은 2012년 중국 출신의 작가 모옌 이후 12년 만이다.
 

▲ 소설가 한강. 

일찌감치 해외 문단에서 주목받은 한강은 2007년 발표했던 소설 ‘채식주의자’로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와 함께 2016년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하면서 명실공히 세계적 작가로 떠올랐으며, 이후에도 유수의 국내외 문학상을 받았다.

특히 2018년에는 김유정 소설가의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12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했다.

2017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게재한 단편 ‘작별’로 이 상을 받았던 한강 작가는 당시 수상소감에서 “곧 녹아 사라지기 전에 모든 것과 작별해야 하는 사람. 평생토록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왔는데, 이제는 정말 마지막으로 뜨겁고도 서늘한 질문을 하고 있는 사람. 그녀는 녹아 사라졌지만, 아직 녹지 않은 저는 그 질문들을 지금도 끌어안고 있다”고 했었다.

김유정문학상 심사를 맡았던 오정희·전상국 소설가, 김동식 문학평론가는 겨울의 어느 날 벤치에서 잠시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고 보니 눈사람이 되어 버린 여성에 관한 이야기인 이 작품에 대해 “단순히 눈사람이 되어버린 어느 여성에 관한 황망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경계를 한 꺼풀씩 벗겨 나가며 인간과 사물(눈사람)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존재와 소멸의 경계를 소설의 서사적 육체를 통해서 슬프도록 아름답게 재현해 놓은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어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이지만, 심사위원들의 눈길이 이 작품에 오래도록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 부근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존재와 소멸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경계로 우리를 인도해 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했었다.

한강은 죽음과 폭력 등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를 시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로 풀어내는 독창적이 작품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5년작 소설 ‘몽고반점’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으면서 큰 이목을 끌었다. 당시 고 이어령 문화관광부 장관은 “차원 높은 상징성과 뛰어난 작법으로 또 다른 소설 읽기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다”라고 평했었다.

특히 한국 현대사의 어둠과 상처, 죽음과 폭력 문제, 등을 서정적이면서도 독창적이고 유려한 문체로 형상화했다. 육식을 하지 않는 주인공을 통해 폭력을 고발한 ‘채식주의자’,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2014년작 장편 ‘소년이 온다’, 제주 4·3 사건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쓴 2021년 ‘작별하지 않는다’ 등이 대표적이며 ‘내 여자의 열매’, ‘그대의 차가운 손’, ‘검은 사슴’, ‘바람이 분다 가라’, ’흰’, ‘희랍어 시간’ 등의 작품을 냈다.

매츠 말름 노벨상 종신위원장과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한강의 노벨상 선정 이유는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정면으로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는 극찬이다. 이어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덧붙였다.

1970년 광주 출신으로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이상문학상 대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말라파르테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89년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원작장편을 쓴 한승원 소설가가 부친이다.

한편 한국 작가 중 이번 노벨문학상 후보군으로는 지난 3월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시 부문에서 수상한 김혜순 시인도 거론돼 관심을 받았었다. 춘천 등에서 활동했던 김 시인이 시집 ‘날개 환상통’으로 한국 작가 최초로 이 상을 받았으며, 노벨상 후보군으로도 거론되면서 국내외 문단에서 다시 이목을 끌었다.

세계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노벨 문학상은 “문학 분야에서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생산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노벨상 창시자 알프레드 노벨이 밝힌 선정 기준에 따른 것이다. 1901년부터 올해까지 총 117차례 수여됐으며 모두 121명이 받았다. 노벨상 수상자는 상금 1100만 크로나(약 13억 4000만 원)와 메달, 증서를 받는다.

◇한강= △1970년 광주광역시 출생 △1989년 풍문여고 졸업 △1993년 연세대 국문과 졸업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 시 당선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붉은 닻’ 당선 △1999년 한국소설문학상 △2000년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05년 이상문학상 대상 △2007년 서울예술대 교수 △2010년 동리문학상 △2014년 만해문학상 △2015년 황순원문학상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2018년 김유정문학상,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 △2019년 산클레멘테 문학상 △2022년 대산문학상 △2023년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2024년 노벨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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