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간장게장 맛의 방정식
곰삭은 향의 젓갈, 매력적인 신맛인 묵은지, 짭조름한 보리굴비. 우리 식탁의 대표적 ‘밥도둑’이다. 하지만 간장게장을 능가할 밥도둑은 없다. 특히 주황색 알(사실은 난소, 게가 진짜 알을 품은 7월은 금어기다) 품은 암꽃게로 담근 양념게장은 밥도둑을 넘어 유혹적이기까지 하다.
바다향 품은 달큰한 꽃게살과 채소·과일맛 품은 간장의 상큼함이 이루는 맛의 중첩은 간장게장을 단순한 저장음식이 아니라 미식의 범주로까지 끌어올린다. 게장 맛의 원천은 감칠맛이다. 콩이 발효되면서 나오는 아미노산과 게살의 단백질에서 나오는 아미노산이 더해진 것이다. 발효의 노련미와 갑각류 살의 신선미 조화도 뛰어나다. 간장게장은 감각적인 주황색 알뿐 아니라 치밀한 맛의 방정식을 품고 있다.
그렇지만 어릴 적 나는 간장게장에 감히 도전하지 못했다. 간장의 쿰쿰한 발효향과 게의 비린내 탓이었다. 대신 매콤달콤한 양념게장은 먹을 수 있었다. 매콤한 양념이 게의 비린내를 없애준 덕분이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에 나와 생선회에 눈뜨면서 간장게장을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간장게장으로 유명한 음식점이 많던 서울 마포와 광화문에서 직장생활을 한 것도 도움이 됐다. 내가 간장게장을 즐기는 데 30년 넘게 걸린 셈이다.
그런데 이런 간장게장을 외국인들이 즐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BC카드가 발표한 최근 3년(2022~2024년)치 외국인 음식 결제 데이터 자료를 보면, 간장게장은 올해 3위에 올랐다. 1위는 치킨, 2위는 중식이었다. 2022년까지만 해도 6위에 머물던 간장게장의 인기가 급상승한 것이다. 한국인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다소 갈리는 간장게장을 외국인이 한국식으로 즐기고 있다는 것은 의외다. 그만큼 한식에 대한 외국인들의 이해가 깊어졌다는 의미다.
한식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계기로 한류를 꼽을 수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나 <범죄도시> 같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음식인 김밥과 국밥이 외국인들에게 인기다. 한류에 대한 접촉 빈도가 높아지면서 한국 음식문화에 대한 경험욕구가 상승한 것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음식을 서양식으로(주로 프랑스식) 해석한 세방화(세계화와 지방화를 합친 단어)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먹는 간장게장 같은 오리지널 한식을 거부감 없이 즐기고 있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외국인들은 한식이 계절감이 좋고 음양오행 같은 동양철학에 기반하고 있는 데다 발효음식과 식물 기반 음식이 많아 영양 균형감이 뛰어나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한식을 한국문화콘텐츠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라고 꼽는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은 “한식이 무궁무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간장게장의 스토리도 무궁무진하다. 간장은 한국과 중국의 고대국가 형성 이전부터 먹어온 동북아 콩 문화의 정수다. 게는 세계 최대 갯벌이 위치한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역사를 품고 있다. 간장게장을 먹을 때 빠지지 않는 김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만 먹는다.
간장게장처럼 입맛뿐 아니라 스토리로도 세계인의 관심을 훔치는 ‘호기심 도둑’이 우리 음식에서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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