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의 한뼘 양생]함께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우리 같은 ‘마처’ 세대(부모를 돌보는 ‘마’지막 세대, 자식들에게 돌봄을 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의 가장 큰 고민은 “늙으면 누가 돌봐주지?” 아닐까? 현실적으로 4인 1실의 요양원 아니면 어림잡아 보증금 2억원, 월 150만원 이상을 내야 하는 실버타운, 이 양자택일밖에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메종 드 히미코>. 도쿄에서 게이바를 운영하던 히미코가 갑자기 은퇴, 바닷가 낡은 호텔을 사서 게이 양로원을 만들었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가 영감을 줬다. 게이는 아니지만 나도 그와 같은 양로원을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살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든든했다. 영화에서는 히미코의 젊은 애인(무려 ‘오다기리 조’다!)이 암에 걸린 히미코 대신 양로원을 운영하며 히미코의 딸을 찾아내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도 한다. 오, 우리의 사설 양로원도 주변 청년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겠네. 그런데 노인복지학 전공 후배의 일갈, “언니, 그거 돈도 엄청 많이 들고, 운영하려면 대관업무로 골치 썩을 텐데, 늙어서 그걸 하고 싶어요?”
방향을 시니어 코하우징으로 돌렸다. 공부도 하고 공동체 주택을 직접 탐방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바람도 분명히 드러났는데, 우리는 함께 살기를 원하는 만큼이나 자기 스타일대로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심리적·공간적 거리를 원하고 있었다. 결국 사업 주체는 협동조합으로 하고, 땅을 공유하되, 각자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형태로 집을 짓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일은 처음부터 틀어졌다. 내가 사는 경기도에는 ‘공동체 주택’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협동조합을 포함한 주택법인 모두를 ‘임대사업자’로 간주해 세금을 엄청나게 매긴다는 것이다.
어떡하지? 그러면 일단 땅부터 알아보자. 그런데 어떻게? 나는 인터넷 검색에서 첫 번째로 올라온 부동산에 무작정 전화했다. “사모님, 제가 ○○○동, ○○○동 토지를 싹 알아보고 착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라는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나뿐 아니라 친구 여럿이 ‘사모님’이 되면서 알아낸 정보로 우리는 올 초 예닐곱 군데 땅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일은 진척되지 않았다. 가성비를 생각하면 한 가구당 15~20평 정도로 한 층에 두 가구, 3층이나 4층 정도를 올려 총 6가구나 8가구가 함께 사는 빌라를 짓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텃밭 한 뙈기, 공유 공간 하나 없이 건물 하나만 달랑 올리는 형태가, 더구나 모든 비용을 n분의 1씩 부담하는 방식이 우리가 원하는 시니어 코하우징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땅을 사서 입주할 때까지 드는 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는 와중에 최근 중산층형 실버주택이 건설업계의 새로운 블루칩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 노년 주거시설이 저소득층용 고령자복지주택과 고소득층용인 실버타운으로 선명하게 나누어져 있을 뿐 아니라 두 가지 모두 합쳐도 전체 노인 인구의 0.12%만 입주할 수 있는 규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니어 레지던스를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건설규제를 푸는 식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토지와 건물 소유권을 확보하지 않아도 실버타운을 운영할 수 있게 하고, 그동안 임대형만 가능했던 것을 분양형도 허용해준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프리미엄급 시니어주택”에서 “5성급 호텔 수준의 커뮤니티와 24시간 토털 라이프 케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깃발들이 나부낀다.
그런데 양자택일에서 사지선다 혹은 오지선다로 바뀐다고 해서 다양성이 증대되는 것일까? 건설업자들뿐 아니라 공동체 주택을 짓겠다는 사람들에게도 정책적인 지원을 해주어야 말 그대로 다양한 ‘시니어 레지던스’가 확대되지 않을까? 어쨌든 우리는 시니어 코하우징 프로젝트를 다시 가동하기로 했다. “하이엔드급 레지던스”가 아니라 아프면 서로 돌봐주고, 일주일에 한 번은 태극권을 함께 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밥이라도 같이 먹는, 다정하고 느슨한 공동체 주택, 5년 안에 만들어보고 싶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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