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자개장 안에는…이불뿐 아니라 사랑도 겹겹이[그림책]
자개장 할머니
안효림 글·그림
소원나무 | 48쪽 | 1만7000원
주인공 ‘나’의 집에는 할머니의 할머니 할머니 때부터 썼다는 자개장이 하나 있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가 얇은 조개껍데기를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박아 만든 영롱한 장이다. 어느 날 집이 망해 급히 물건을 챙겨 떠나야 했을 때, 주인공의 부모는 TV도 소파도 아닌 자개장을 챙긴다.
나는 이사한 집의 한쪽 벽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자개장이 영 못마땅하다. “덩치는 냉장고보다 큰데 나오는 건 이불밖에 없다.”
망한 집안을 다시 일으켜야 하는 엄마, 아빠는 온종일 집에 없다.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태권도장에 가서 놀고 싶은데, 데려다줄 어른이 없다. 나는 자개장 안에 들어가 외친다.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라도 괜찮으니까 지금 당장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자 정말 할머니가 나온다. 곱게 쪽 진 머리부터 버선까지 모두 자개처럼 빛나는 ‘자개장 할머니’다. “짜잔 나오라면 나와야지~”라는 말과 함께 싱글벙글 웃으며 등장한 할머니 옆에는 학과 나비, 거북이가 있다.
할머니는 태권도장에 가기 전 들를 곳이 있다며 나의 손을 붙잡고 귀한 ‘복숭아 씨앗’을 찾아 산을 넘고 물을 건넌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복숭아 과육을 다 먹자 단단하고 반짝이는 씨앗이 나온다. 자손들을 대대로 지켜줬다는 집안의 보석이다. 복숭아 씨앗을 들고 태권도장에서 실컷 놀고 온 나는 이제 마음도 풍요롭고,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에 배도 부르다. 노곤해진 나에게 할머니가 말한다. “사랑이 담긴 것들은 함부로 버리는 게 아니란다. 사랑이 담기면 뭐든 다 귀해지는 법이니까.”
자개장의 특징을 잘 활용한 재미있는 그림책이다. 푸르면서도 보랏빛이 돌고, 노랗기도 한 자개의 신비로운 색이 촘촘하게 그려진 장은 마치 자개장 한 귀퉁이를 떼다 박아둔 것 같다. 2018년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자인 안효림 작가의 신작이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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