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5년제’ 뉴스 앞에서 [세상읽기]

한겨레 2024. 10. 1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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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1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의 모습. 연합뉴스

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무심코 들여다본 휴대전화 속 포털 사이트에 속보가 떴다. 의대 교육과정을 6년에서 5년으로 줄인다는 내용이었다. 멍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화를 내기도 지친다는 생각이었다. 학생들이 복귀를 안 하고 있으니 1학기를 계속 연장하라는 발표를 하더니, 내년 복학을 전제로 휴학을 승인해줘도 된다는 폭력적 언사가 있었고, 의학교육 평가체계를 흔든다는 지적을 받은 규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뒤였다. 학교 교육의 자율성이나 독립성, 학생의 선택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건가 싶었다. 제시된 정책의 방향과 장점과 단점에 대한 고민과 토론, 갈등의 조정과 설득보다 ‘재난’이라는 명명하에 일방적으로 정책을 몰아붙이던 태도가 교육의 근간을 흔든다고 생각했다.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바람직한 의대 교육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만나는 학생들이나 전공의들이 좋은 의사가 되길, 최소한 환자한테 해를 끼치지 않고, 건강을 회복하는 환자를 보면서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모두가 세상을 호령하는 명의가 될 필요는 없으니, 지역사회에서 환자들과 부대끼며, 나쁜 짓 안 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의사가 되길 바랐다. 내가 그렇게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그런 미래를 생각하는 학생들을 응원하는 사람이 되자 생각했다.

물론, 그동안 의학교육이나 전공의 수련이 제대로 이뤄졌다는 말은 못 할 것 같다. 전공의들이 수련보다 병원의 각종 업무 처리에 정신이 없는 상황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교육하는 게 좋을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고, 수련의와 병원의 노동자라는 신분과 정체성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고민하지 못했다. 의학교육평가인증을 준비하면서 만들라는 각종 서류나 절차가 불편하고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사이버불링을 하며, 서로를 공격하는 상황을 보면서도 우리의 교육이 무엇이 문제인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과연 바꿀 수는 있는 것인지 고민하지 못했다. 그 교육과정에 학생들과 전공의들이 하나의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어떻게 논의하고 의사 결정의 거버넌스를 구성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이런 걸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단언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부가 내놓은 각종 미봉책들은 그걸 고민하고 이끌어 오던 소수의 사람들마저 무너뜨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024년을 전후로 의사들은 완전히 양분이 되어 이제 더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기대하기 어렵다거나,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이며, 한국의 의료는 죽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절망을 넘어 어떤 전망과 대안이 있을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온통 혼란한 상황이지만, 지금의 조치들은 해결책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건강과 질병의 이면에는 사람이 있고 그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있다. 교과서의 지식만을 암기하여 이를 그대로 실행하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필요한 것이라면 교육은 필요 없다. 내가 아는 교육과 그들이 이야기하는 교육이 다른가 싶다.

데이터를 통해 만들어진 대다수의 평균과 패턴에서 벗어난 개인적 상황과 특성을 고려하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생각해낼 수 있는 창의성과 논리성, 다양한 전문가의 언어를 이해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의 역량을 모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끌어내고,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판단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지금 필요한 것 아닌가? 학생들은 이 과정의 당사자들이다. 이미 많은 것을 보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을 억압해서 저항하지 못하도록 녹다운을 시키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밤을 새워서 힘들다고 툴툴거리면서도 환자를 바라보며 싱긋 웃던, 심정지 상태로 실려온 젊은 노동자를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30분 넘게 심폐소생술을 하고도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던, 이런 걸 개발해보면 재미있을 거 같다며 눈을 반짝이던, 이번 기회에 배송회사에서 물류 배송·분류 업무를 하면서 왜 일이 힘든지 알 거 같다고 이야기하는, 그런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보건의료는 힘들게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발 교육이 이런 순간에 반짝이고 힘들어하고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을 키우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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