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 전문가 10명 중 9명 “美 경제, 연착륙 향해 가고 있다”

홍준기 기자 2024. 10. 1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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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미국發 ‘R의 공포’ 분석...빅컷은 경착륙 막아. 실업률 등이 변수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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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달 동안 미국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에 글로벌 증시가 출렁였다. 각종 경제지표가 악화하며 공포 수위를 높였다. 4%대로 뛰어오른 미국 실업률은 지난 7월에는 4.3%까지 치솟았다. 미국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이 내놓는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도 2.9%에서 한때 2%까지 추락하면서 미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분위기에도 글로벌 금융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WEEKLY BIZ가 글로벌 금융 전문가 10명을 상대로 미국 경제를 긴급 진단하는 설문을 한 결과, 10명 중 9명이 “미국 경제가 연착륙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답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필립 칼슨슬레작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년간 미국이 경기침체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 이어졌지만 이는 ‘잘못된 경보’였다”며 “미국 경제는 연착륙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고 했다.

◇“美 경제, 연착륙 경로 벗어나지 않아”

글로벌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경기 침체란 늪에 빠질 것이란 전망엔 대부분 회의적이었다. 오히려 “경제의 기초 체력이 탄탄해 비교적 높은 금리로 과열을 막아야 하는 ‘긴축의 시대’를 맞이했다”(BCG)는 해석이 나올 정도다. 긴축의 시대란 낮은 실업률과 실질 임금의 상승, 기업들의 막대한 자본 지출(Capex) 등을 특징으로 한다. 실제로 지난 4일 지난달 미국 비농업 일자리 수가 25만4000개 증가해 전망치(14만개)를 크게 뛰어넘었다는 발표가 나오자 고물가와 고성장이 지속되는 노 랜딩(무착륙·No landing)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 경제가 연착륙이란 길목에서 다소 흔들리곤 하지만, 길을 벗어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진단도 많았다. 통상 물가가 안정을 찾고, 성장률이 둔화하더라도 경기 침체에 이르지는 않는 상황을 연착륙 혹은 소프트 랜딩(Soft landing)이라고 한다. 라이언 스위트 옥스퍼드이코노믹스 미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는 연착륙 경로에서 이탈하지 않았다”며 “과거보다 취약해진 것은 맞지만 소비 수준이나 노동시장 상황이 ‘미국 경제가 벙커에 빠졌다’고 볼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다. 로널드 템플 라자드 수석시장전략가는 “앞으로 12~18개월 이내에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져들 가능성은 낮다”고 했고, 스티븐 도버 프랭클린템플턴 리서치센터장도 “2025년에 경기 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은 아직까지 낮아 보인다”고 했다.

금융시장 일각에선 미국의 부진한 제조업 업황에도 우려의 시선도 보낸다. 경기 전망을 반영하는 미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지난달 47.2로 경기 호황·위축의 기준선인 50을 밑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재서 뱅크오브아메리카 이코노미스트는 “1980년엔 제조업이 전체 고용과 GDP의 20%를 차지했지만, 이제는 고용의 8%, GDP의 10% 수준”이라며 “현재 제조업 PMI를 과거 침체 국면과 비교해보면 높은 상태”라고 했다.

중동 지역에서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유가 상승도 당장은 위험 요인은 아닐 것이란 분석도 있다. 스위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유가 급등에 완벽한 면역을 갖춘 건 아니다”라면서도 “(세계 1위 산유국이 되면서) 미국 경제는 예전처럼 국제 유가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픽=김의균

◇“‘빅컷’ 약발은 잘 먹힐 것”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지난달 단행한 빅컷(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하)의 ‘약발’이 잘 먹히며 연착륙을 유도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앤드루 허스비 BNP파리바 미국 담당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연준이 통화 긴축의 수준을 완화(기준금리 인하)하면서 미국 경제가 경착륙을 피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예상보다 더 큰 폭(0.5%포인트)으로 금리를 내리면서 경기 확장이 지속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했다. 데이비드 웡 얼라이언스번스틴 선임투자전략가 역시 “금리 인하와 함께 미국 대선 이후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미국 기업들이 성장을 위한 자본 지출을 늘려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물론 연준의 금리 인하를 지켜보는 불안한 시선도 없지는 않다. 미국 경기 전망이 어둡기 때문에 연준이 예방적 조치로 금리를 큰 폭으로 내렸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페드로 팔란드라니 글로벌엑스 리서치센터장은 “1995년에 연착륙 이후 경기가 확장됐던 사례처럼 금리 인하가 반드시 ‘경기 침체의 신호탄’이 되지는 않는다”며 “일반적인 금리 인하 국면과 달리 현재 미국에선 기업의 이익이 꾸준히 늘고 있는데 이는 미국 경제의 남다른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연준은 내년까지 기준금리를 어느 수준까지 낮출까. WEEKLY BIZ 설문에 응한 전문가들은 대체로 연준이 현재 연 5%인 기준금리를 내년 말까지 3~3.5% 수준까지 낮출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물가보다는 노동시장 상황을 잘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업률이나 실업 수당 청구 건수 등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연준 역시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란 ‘이중의무’에서 고용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가상승률이 2%대로 내려오는 사이 실업률은 4%대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최근 미국 실업률 상승의 주된 원인이 노동 수요 감소가 아닌 구직자 증가기 때문에 아직은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실업률이 꾸준히 상승할 경우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연준은 실업률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템플 수석시장전략가는 “일자리 창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내년 중반에는 기준금리가 3%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침체 위험이 제로(0)는 아니다”

WEEKLY BIZ 설문에서 대다수 전문가들이 미 경제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무게를 뒀지만, ‘미국이 이미 경기 침체에 빠졌다’는 소수 의견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셸 플라크만 로베코자산운용 글로벌주식 총괄은 “저소득 소비자 등 미국 경제의 일부는 이미 경기 침체를 경험하고 있다”며 “연준이 이러한 상황을 늦게 인식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예상보다 큰 폭의 금리 인하에 나선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착륙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전문가들조차 “침체를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칼슨슬레작 이코노미스트는 “경기 침체 위험은 결코 ‘제로(0)’가 아니다”며 “우리는 침체 발생 가능성을 20% 정도로 보고 있다”고 했다.

미국 경제를 불황으로 밀어 넣을 수 있는 위험 요인들도 적잖다. 도버 리서치센터장은 “지정학적 위기나 예상하지 못한 금융권 부채 위기가 미국 경제를 침체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중동에서 전쟁이 격화하면서 유가가 예상하지 못한 수준까지 치솟거나, 미국 상업용 부동산 부실이 금융권 위기로 이어지는 등의 상황이 펼쳐진다면 미국 경제가 갑작스럽게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겨우 잡힌 인플레이션의 불길이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의 ‘실패’ 때문에 다시 타오를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슈로더의 조지 브라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성장 전망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연준이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해 인플레이션이 재발하면 다시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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