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가 집 값 올린다고?...‘아트 퍼니처’의 세계
작년 11월 문을 연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아자부다이힐스’는 낡은 도심을 개발해 높이 330m짜리 초고층 빌딩 세 동짜리 복합 단지로 바꾼 곳이다. 이곳엔 초고가 펜트하우스이자 일본에서 가장 비싼 레지던스라는 ‘아만(Aman) 레지던스’도 들어섰는데, 이곳 내부의 화룡점정은 다름 아닌 가구(家具)다. 일본의 건축 거장 구마 겐고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가구 컬렉션 ‘미구미(Migumi)’로 꾸몄다.
미국 뉴욕에서 가장 비싼 레지던스 건물 중 하나로 꼽히는 ‘원57′은 덴마크 출신의 디자이너 피터 스카닝으로부터 시작된 가구업체 라조니(LAZZONI) 제품으로 꾸몄다고 알려졌다. ‘원57′은 홈페이지에서 “피보나치 커피 테이블과 암체어, 소파와 맞춤형 TV장, 마스터 침실과 옷장까지 라조니의 뛰어난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고심해서 완성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글로벌 고가 부동산 업체들이 최근 가구에 투자하고 있다. 초고가 레지던스 주택을 판매할 때 빈 공간을 분양하는 것이 아닌 전문 갤러리스트와 공간 컨설턴트가 추천하는 디자이너 가구로 내부를 채워 고객을 불러 모으려는 것이다. 유명 건축가나 디자이너가 만드는 맞춤 작품, 고가의 아트 퍼니처(Art Furniture)일수록 선호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현상은 이어진다. 일부 갤러리에선 부동산 건설업체 및 투자회사들이 작품을 선점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 끌어올리는 아트 퍼니처
한때 가구는 조연이었다. 조명·가구 업체인 ‘디에디트’의 최혁재 대표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내에선 고급 아파트를 사들이는 것이 먼저였고, 2000년대 초부터 유럽 수입 브랜드를 사들이는 것이 유행했다”고 했다. 1세대 수입 가구 유행도 이때 시작됐다. 간결하면서도 기능성이 강조되는 북유럽 가구가 국내에 흘러 들어온 것은 2000년대 초부터다. 소위 ‘미드 센추리 모던’으로 불리는 빈티지의 유행도 이때 정점을 찍었다. 최근엔 초고가 레지던스를 중심으로 대중적으로 쉽게 찍어낼 수 없어 희소 가치가 높은 맞춤형 가구, 장인이 빚어낸 컬렉션 가구를 들여놓는 것이 새로운 흐름이 되는 분위기다.
최 대표는 “한정판 디자인을 많이 만드는 디자이너로 알려진 벨기에 앤트워프 출신의 피터 마에스, 유리 공예 작품을 관능적으로 빚어내는 제레미 맥스웰 윈트레베르트, 유기적인 곡선을 거침없이 재현하는 발렌틴 로엘만 같은 작가의 작품이 특히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부동산 업체들도 레지던스 분양을 위해 유명 디자이너의 아트 퍼니처를 적극적으로 쓰는 추세다. 청담 어퍼하우스와 르페이드 청담의 경우엔 커뮤니티 공용 하우스를 발렌틴 로엘만의 가구로 꾸몄고, 나인원한남은 기본 실내가구를 몰테니C로 들여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로엘만부터 구마 겐고까지
실제로 집에 어떤 가구를 배치하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구매율은 크게 달라진다는 조사도 있다. 지난 8월 데이터 조사기관 할리팩스가 전 세계 주요 국가의 소비자 2000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의 25%는 집을 둘러보는 데 평균 49분이 걸렸는데, 이들 중 37%는 집의 구조만큼이나 배치된 가구를 신경 써서 봤다. 수압(25%), 가전제품(24%), 바닥(14%), 벽(12%)보다 가구를 더 중요하게 신경 쓴다고도 했다.
미국 뉴욕이나 영국 런던, 일본 도쿄 같은 메가 시티에 지어진 초고가 레지던스일수록 그 나라의 지역민보단 외국인들이 구입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귀띔했다. 가령 일본 아자부다이힐스의 고가 레지던스에 입주하는 이들의 대부분도 중동이나 유럽에서 온 외국인들이고, 이들은 보통 가격 상한선을 따지지 않는 고객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상품 기획·운영 업체인 핏플레이스의 이호 대표는 “가성비나 가심비를 따져서 사는 고객과는 여러모로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만족시킬 차별적인 서비스가 필요하고 그만큼 아트 퍼니처의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펜디가 디자인한 집에 펜디 까사 인테리어 제품으로 채운 레지던스가 해외에서 잘 팔리는 것이 비슷한 예”라는 설명이다.
다만 아트 퍼니처로 꾸민 초고가 레지던스라고 무작정 투자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하이엔드 오피스텔 사업이 자금난으로 차질을 빚는 사례가 적지 않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기가 가라앉지 않고 있어 미분양 사태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호 대표는 “아직 우리나라는 여러모로 과도기를 겪고 있는 만큼 신중하게 따져보고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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