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소송으로 가시죠! 변호사님!”
“소송은 최후, 합의가 최우선”…노사, 대립 아닌 협력·타협 관계
김두현 변호사
“소송으로 가시죠! 차은경 변호사님!”
이혼전문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굿파트너’의 차은경 변호사(장나라 분)는 “소송은 최후, 합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곳”이라며 법률사무소 ‘다시 봄’을 만든다. 과잉진료 없이 의뢰인에게 빠르게 봄을 되찾아준다는 의미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후배였던 한유리 변호사를 소송 상대방으로 만났고, 합의를 시도해보지만 잘 되지 않자 법정을 나서며 서로 “소송으로 가자!”고 성질을 낸다. 차은경 변호사는 왜 합의보다 소송이 안좋다고 봤을까.
재판은 정의와 진실을 밝히는 절차지만 그 과정은 처절한 싸움으로 점철돼 있다. 승소 또는 유죄판결은 곧 상대방이 거짓말쟁이거나 적어도 나쁜 놈임을 증명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증명이 끝나면 승자와 패자만 남는다. 모 아니면 도. 판결에는 적당한타협이 없다. 재판은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과정이다. 하물며 이혼이나 징계사건은 상대가 인격적으로 나쁜 놈임을 증명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문제가 있고 나쁜 놈인지를 구구절절 적은 동료들이나 배우자의 진술서가 날아든다. 어떤 기분이겠는가. 그래서 이기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패소한다면? 어느 쪽이든 당사자들의 인간적인 관계는 끝이다.
한화가 대우조선을 인수한지 1년여가 지났다. 사명도 한화오션으로 변경했다. 그런 한화가 근로자 100여 명을 고소, 고발했다고 한다. 대부분 집회와 파업에 관한 일이다. 집회와 파업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고 원래 합법이다. 그런데 한화는 무슨 이유로 자기 직원을 100명이나 고소한걸까.
한화오션 근로자들은 단체교섭에서 대화가 잘 풀리지 않자 ‘부회장님’이 오실 때 그 앞에서 집회를 했다. 이 과정에서 부회장님의 차량통행이 방해됐고 관리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게 된 것이 집시법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파업은? 노동조합법상 절차는 거쳤지만 특수선 등 주요 방산물자를 생산하는 근로자가 파업에 가담한게 문제고 불법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파업은 합법이지만 공무원과 방산노동자는 예외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주요 방산물자를 생산하는 노동자의 파업을 범죄로 처벌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파업이 금지되는 주요 방산노동자인지 아닌지 구분은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원래는 다른 부서인데 파업 당시에만 방산부서로 지원을 왔다든지, 반대로 방산부서지만 다른 부서로 파견을 나갔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다. 또 방산물자이긴 하지만 국군에 납품하는게 아니라 해외수출용을 생산하던 중일 수도 있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이런 걸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있어서 명확성의 원칙이나 최소침해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에 2021년 창원지방법원도 이 법조항에 대해 위헌소지가 있다고 보아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고, 헌법재판소가 현재까지 위헌 여부를 심리 중에 있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심리중인 사건은 다름아닌 한화오션의 대주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해 위헌 여부의 심리가 시작되면 일단 그 재판은 중단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방산 파업 사건도 멈춰있는 상태다. 그러니 같은 건으로 고소를 하더라도 재판이 당장 진행될지 어떨지 미지수고 진행된다 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결론에 따라 무죄가 될 가능성도 열려 있는 상황이다. 한화오션은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테지만 파업에 참여한 자기 근로자를 대거 고소한 것이다.
고소된 100여 명의 근로자는 경찰로부터 출석요구를 받게 된다. 경찰서에 반나절 이상 나가 조사를 받아야 하고, 나중에는 검찰에 가서 또 조사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 보통의 근로자에게는 경찰서와 검찰청을 들락날락 하는 일 자체가 고역이고 두려운 일이다. 고소 고발도 권리이니 누구든 경찰서에 고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죄가 될지 어떨지도 모르는 일로 자기 직원 100여 명을 경찰서로 보내는 건 무척 이례적이다.
재판은 결국 상대를 굴복시키는 과정이다. 한화오션이 근로자 100여 명을 고소고발한 건 그 진의가 무엇이든 근로자를 굴복시키려는 행위가 된다. 근로자도 향후 경영진, 관리자들을 고소고발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노사 간 단체교섭의 본질인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서로 굴복시킬 때까지 극한의 대립과 대결만 이어지게 된다. 노사가 극한까지 싸워 굴복시킨 사업장이 잘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소송은 최후, 합의가 최우선”이라는 차은경 변호사의 말대로, 상대를 눌렀다는 정신승리가 아닌 협력과 타협을 통한 상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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