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와 무관한 '쩐의전쟁'… 누가 이기든 승자의 저주"['고려아연 사태' 긴급대담]

김찬미 2024. 10. 1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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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 75년간 동업해온 고려아연과 영풍 간 격화되고 있는 경영권 분쟁에 대한 전반적 관전평이다.

특히 고려아연의 최씨 일가가 3조원 규모의 자사주 공개매수로 반격을 가하면서 사태는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10일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와 안효섭 한국ESG연구소 본부장으로부터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교훈과 과제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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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와 안효섭 한국ESG연구소 본부장이 바라본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75년 오월동주 관계서 적대적 대립 국면 전환… 유사한 분쟁 더 많이 생길 것
경영 안정성·주주가치 영향… 투명한 거버넌스로 경영권 분쟁 미연에 막아야
분쟁의 끝은 주가폭락과 투자 손실… 효율적 공매도시스템 정착 필요
3~4세 승계 늘면서 공개매수 통한 사모펀드의 경영권 교체 시도 늘 것
"기업가치와 무관한 '쩐의전쟁'… 누가 이기든 승자의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 75년간 동업해온 고려아연과 영풍 간 격화되고 있는 경영권 분쟁에 대한 전반적 관전평이다.

양측이 공개매수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특히 고려아연의 최씨 일가가 3조원 규모의 자사주 공개매수로 반격을 가하면서 사태는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다.

이같은 과열 양상에 루머와 비방전까지 가세하면서 시장의 우려는 짙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기업가치와 무관한 극단적 '쩐의 전쟁'이라고 진단한다.

국내 기업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향후 고려아연과 유사한 사태는 꾸준히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10일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와 안효섭 한국ESG연구소 본부장으로부터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교훈과 과제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이번 경영권 분쟁의 시사점은.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우선 공개매수 규모에 있어서 앞서 MBK파트너스가 제시한 최대 2조원 이상은 국내에서 역대 최대다. 향후 법원 결정에 따라 공격과 방어에 동원될 자금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그만큼 국내 사모펀드 시장 사이즈가 커졌다는 방증이다. 두 번째는 영풍의 장씨와 고려아연 최씨 일가 간의 '오월동주'가 적대적 대립 국면으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이 배경에는 분쟁의 당사자 간 세대와 문화 차이, 그로 인한 경영방식의 이견이 자리 잡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려아연은 세계 최대 제련업체이면서 가장 높은 금속회수율을 자랑한다. 동시에 2차전지 핵심소재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어 사실상 국가산업에 속하는 업체다. 사모펀드의 공개매수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나, 이러한 국가 중추기업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규제가 필요하다.

▲안효섭 한국ESG연구소 본부장=공개매수 기간 자기주식 매입을 통한 경영권 방어 가능 여부가 가장 큰 쟁점이자 시사점이다. 지난 2일 법원은 가처분 기각 결정에서 고려아연이 자기주식 매입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은 자본시장법 관련 법 해석에도 중요한 참고가 될 것으로 판단되며, 향후 유사한 분쟁에서 대상 회사가 자기주식을 활용하는 데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K밸류업 측면에서 이번 사태를 평가한다면.

▲류 대표=이번 고려아연의 경우 50년 유산을 지키려는 측과 그에 도전하는 가문 간의 공격과 방어이기에 기업가치와 무관한 극단적 '쩐의 전쟁' 양상을 띠고 있다. 이 경우 어느 쪽이 승리하더라도 부담하지 않아도 될 다양한 경영차질, 불요불급한 비용 증가 등으로 '승자의 저주'라는 덫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내재가치와 무관한 주가 폭등은 이후 폭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안 본부장=통상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면 양 당사자는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 향상에 부합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일반주주를 설득하려 한다. 치열하게 진행되는 이 과정을 통해 고려아연의 밸류업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기업 거버넌스와 관련, 앞으로의 과제는.

▲류 대표=기업 거버넌스의 핵심은 이사회 구성과 운영이다. 특히 사외이사들이 전문적 식견, 경험 등을 갖췄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또 설령 전문성을 갖춰도 회사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면 사외이사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환경부·국세청 출신 전직 관료 등으로 구성된 고려아연 이사회 구성은 아쉬움이 있다. 향후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사외이사로 구성을 확대하고, 사외이사진을 재편하는 것이 기업 거버넌스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다.

▲안 본부장=강화되고 있는 주주권에 비해 정작 우리나라 주주총회는 주주권익 보호에 미흡한 게 사실이다. 주총 소집공고를 주주총회 2주 전인 현재보다 몇 주 앞당기고, 주총 개최 시기도 연중으로 분산하는 게 필수적이다. 또 기업들은 감사 보고서를 지금보다 더 빨리 공시해야 한다. 주총 시기뿐 아니라 연중 기업설명회(IR) 등을 통해 투자자들이 마음껏 궁금증을 해소하고 건설적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다른 경영권 분쟁과 비교할 때 투자은행(IB), 재계에 던지는 화두는.

▲류 대표=우리나라도 기업 역사가 길어짐에 따라 창업주나 2세들이 사망하거나 은퇴하게 된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3~4세나 주요 주주 간 결속력이 약화되고, 동시에 경영전략 및 이해관계 등에서 이견이 자주 노출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고려아연과 유사한 분쟁이 더욱 많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지배주주의 경영성과가 상대적으로 낮거나 횡령, 배임 등 위법적 행위에 연루될 경우 사모펀드나 IB들은 비지배 주요주주와 접촉을 통해 적대적 공개매수 등을 부추기거나 시도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투명한 거버넌스, 자기자본비용(COE) 등을 최우선에 두는 경영을 해야 한다.

―공개매수를 통한 경영권 확보가 주가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한 보완책과 견해는.

▲류 대표=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고려아연 측이 제시한 공개매수 가격인 83만원은 올해 예상 실적 기준으로 고평가된 주가라고 할 수 있다. 양 측의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공개매수 경쟁으로 기업의 기초체력(펀더멘털)과 무관한 버블이 발생하고 있다. 향후에도 양측의 대결 양상에 따라 그 변동성이 폭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정상적 시장 수급에 의한 주가 상승과 그에 가담한 투자자들의 결말은 주가 폭락과 대규모 투자손실이다. 이에 대한 가장 효과적 수단 중 하나로 하루속히 자본시장 내 '효율적 공매도' 시스템을 정착키고 운영해야 한다.

▲안 본부장=보통 공개매수 가격이 공개매수 직전 주가보다 높게 책정하기 때문에 주가 변동성이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경영권 분쟁이 어느 일방의 승리로 결론이 날 무렵 무섭게 오르던 주가는 순식간에 급락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공개매수 시 주가 변동성에 대한 간접적 보완책으로는 현재 시행 초읽기에 들어간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주목해야 한다.

―SK·소버린 사태와 고려아연 사태의 차별점은.

▲류 대표=먼저 소버린은 100% 외국계 헤지펀드라는 점에서 국내 사모펀드인 MBK와 다르다. 또 소버린은 당시 분식회계 사태로 인해 자산가치 미만으로 주가가 폭락했던 SK글로벌 지분 14.99%를 매입했지만, 고려아연의 경영상황은 SK와 달리 비교적 정상적인 상황이며 주가 역시 저평가됐다고 볼 수 없다.

▲안 본부장=먼저 MBK 측은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과 의결권 공동행사 계약을 맺은 것으로, 단독으로 SK그룹 경영권을 노린 소버린과는 차이가 있다. 또 다른 차이점은 소버린 사태와 달리 소액주주가 고려아연 경영진 손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향후 사모펀드가 경영권 분쟁에 주류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나. 그렇다면 어떤 방식이 나올까.

▲류 대표=국내는 내재가치 대비 저평가된 기업이 많고, 세대교체가 계속 이뤄지면서 주요 주주 간의 경영전략이나 방침 등을 놓고 이견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들을 활용해 자금동원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사모펀드들은 공개매수를 통한 경영권 교체 시도, 특정 주주와 결탁한 공개매수 후 주주 간 협약에 의한 매수청구권(콜옵션) 행사를 통해 경영권을 행사하는 투자 시도가 이어질 가능성 역시 높다.

▲안 본부장=국내 다수 기업에서는 최근 창업자의 3~4세로 경영승계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상속·증여 부담 등으로 오너 일가 지분율은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사례가 많아지고 있어 경영권 획득을 목적으로 한 사모펀드의 움직임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사모펀드도 행동주의 펀드가 추구하는 전략과 거의 유사한 방법으로 관여 활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은.

▲류 대표=환경·사회·지배구조(ESG) 측면에서 두 가지만 첨언하고 싶다. 먼저 한국적 맥락을 감안할 때 이른바 패밀리 경영의 장점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고 본다. 사모펀드는 단기적 관점에서의 주주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반면, 패밀리 경영은 더 장기적이며 주주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경영을 할 수 있는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장씨 일가가 경영을 맡았던 영풍은 과거 ESG 관점에서 사건·사고에 연루된 바 있다. ESG를 표방하는 투자자들은 이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안 본부장=고려아연과 영풍 사이의 경영권 분쟁은 단순한 내부갈등을 넘어서 기업의 경영안정성과 주주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슈이다. 경영권 분쟁이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 두 회사 모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투자자들은 양 회사 이사회의 대응과 주가 변동을 살펴봐야 한다. 향후 이 사태의 해결 여부와 그 과정에서 나타날 변화는 고려아연의 주가와 경영권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hippo@fnnews.com 김찬미 강구귀 김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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