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집, 독선, 다툼이 끊어진 자리의 예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비교하여 내가 누구와 같은지 말해보아라.” 베드로는 그에게 답하되, “당신은 의로운 천사와 같습니다.” 마태가 예수께 말했다. “당신은 지혜로운 철인(哲人)과 같습니다.” 도마가 그에게 이르되, “선생님, 저의 입으로는 당신이 누구와 같은지 감히 말할 수가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예수는 도마에게 이르시되, “나는 너의 선생이 아니라, 너는 내가 벌써 경험한 거품이 끓어오르는 샘물을 마시고 취하였구나”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도마를 데리고 물러가셔서 그에게 세 가지 말씀을 하셨더라. 도마가 자기 친구들에게 돌아오자 저들이 그에게 물어, “예수는 너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도마가 말하길 “그분이 내게 하신 말씀 중 하나라도 너희에게 말하면 너희는 돌을 들어 나를 칠 것이요, 그 돌에서 불이 나와 너희를 태워 버릴 것이다”라고 하였다.(도마복음 13)
위의 구절과 유사한 성경(공관복음)의 구절들은 도마복음과 다르게 ‘종말론과 기독론’(메시아 사상)적으로 기록하였다. ‘마음의 광기’(ego)에 취해 있는 도덕가인 베드로는 도덕을 초월한 예수를, 지식을 추구하는 마태는 시공간을 초월한 실재인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예수는 도마에게 ‘나는 너의 선생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예수처럼 이원적 사유를 초월한 ‘존재의 깊은 비밀을 깨달은 자’(참나)들에게는 모두가 하나의 생명이며, 평등 무차별함으로 더 이상 선생이라는 상(相)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도마는 진리(샘물)에 취하여 하나(One)가 되었기에 ‘절대 평등한 진리(생명)’에 대하여 언어로 한계를 지어 말할 수 없었으며, 비웃음을 사지 않기 위하여 ‘침묵’ 이외에는 대답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천지 만물에는 하나의 진리(생명) 즉 하나님뿐이며, 나와 내가 가진 것들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 세상이 하나님(부처)의 몸이며(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모두가 다 하나님이다’(All is God)는 진리를 자각하는 자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항상 환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침묵’에 대하여 십자가의 성 요한은 “무 안에 거함으로 나에게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알았다”고 하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바로 자기(참나)이고, 자기의 것이기 때문이다. 디오니시오스 주교는 “진리는 긍정과 부정 너머에 있으며, 생각하는 것은 상상일 뿐이다. (…) 그것은 묵상을 통해서만 알려질 수 있다”고 하였다. 예수가 침묵한 도마에게 한 말씀 중 하나는 아마 신성모독이며, 충격적인 “오직 하나님뿐이며, 너는 신(I AM)이다”(요 10:34)일 것이다. 진정한 ‘나(신)를 자각한 자’는 자기(참나)를 망각한 무지한 사람들의 적이 되고, 돌을 던진 자는 그 돌에서 나오는 양심의 불에 의해 그 자신이 심판을 받게 된다.
수심결에서 귀종화상은 “무엇이 부처입니까?”라는 질문에 “그대가 바로 부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라고, 맹자는 ‘인간의 본래 마음에 있는 변하지 않는 본성을 성(性)이다’라고, 우파니샤드에서는 ‘그대가 바로 그것(신·神)이다’라고, 천도교는 ‘영원한 신인 나(참나)를 향해 제상을 차리라’고 하였다(요 4:23). 기도는 기도하는 자신(참나)을 향하여야 하며, 이기적인 에고(거짓 나)를 죽이고, ‘하나인 당신(참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모양이 없이 모든 존재에 편재하고 있는 진정한 ‘나’의 정체성은 문자와 언어를 초월한 참나이다(요 10:34), 마하르쉬는 ‘모든 경전은 그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신성한 참나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만 타당성을 갖는다’고 하였다. 참나(본성) 깨달음은 지금까지 ‘나’(에고)가 몸과 마음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이원적인 허상이 사라지고, ‘나’를 비이원적인 실상(신·神) 그대로의 모습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불교와 힌두교의 수행목적은 태어남이 없고 죽음이 없는 부처(신)가 되는 것이며(견성성불·見性成佛), 브라흐만(신)이 되는 것이다(범아일여·梵我一如).
도마는 예수의 말씀을 다른 제자들에게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언어는 어떤 사실을 명확하게 하지만, 반대로 전체성인 하나의 진리를 가리기도 하며 또한 학문과 다르게 형이상학적인 종교에서는 문자를 쫓다가 영원한 생명을 놓치기 쉽다. 그러므로 초월적인 비이원성(불이·不二)의 진리는 신화, 상징 등으로 설명되고 있다. 기독교의 근본주의자(문자주의)는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것’처럼 본질적인 진리(달)를 보지 않고 실체가 없는 문자(손가락)만 보면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배타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따라서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진리이다(고후 4:18). 예수의 가르침처럼 시공간을 초월한 진리는 언어와 문자적인 것을 초월하기에 침묵으로 설명된다. 절대 평등한 진리는 우리의 개념과 형상으로 나타낼 수도, 알 수도 없는 궁극의 세계이므로 침묵, 공, 무 등의 초 경험성으로 나타낼 수밖에 없다. 바울은 “율법 조문(교리)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린도후서 3:6)고 하여, 성경의 영적 해석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의 진리에 대한 언어의 한계와 침묵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구자만(개신교장로·신학박사·신흥지앤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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