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 ‘금배추’ 대란 반복하지 않으려면

김은영 기자 2024. 10. 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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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 성동구에서 열린 한 비건 축제에서의 일이다. 한 부스에 이르자 앳된 얼굴의 청년이 “좋은 날이니 한턱내겠다”며 시민들을 붙잡았다. 그는 헌법재판소가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이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다며, 축하 메시지를 남기는 이들에게 잔치국수 등을 대접했다.

헌재는 지난 8월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 255명이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1항을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해당 조항은 2050년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2030년까지의 목표만을 명시했는데, 2031년 이후의 목표를 정해두지 않은 것은 제약이 되니 이후에 대해서도 법률에 규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헌재는 “현재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불충분하면 그만큼 미래의 부담이 가중된다”며 “국가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보호조치를 마련하고 미래에 과중한 부담이 이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미래 국민의 자유 보장 및 현재세대와 미래세대 사이 평등한 기본권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라고 했다.

이날 청소년기후행동 소속의 이 청년은 “이제 국회에서 법을 만들 때 과거처럼 미루거나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우리의 기본권을 바탕으로 기후 대응을 하라고 요구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도 기후 위기를 실감한 해였다. 유례없는 폭염과 폭우로 대파, 사과, 시금치 등의 가격이 잇달아 폭등했다. 김장철을 한 달여 앞둔 지금은 한 포기에 2만원이 넘는 ‘금배추’가 등장해 나라가 들썩인다. 오죽하면 국감장에도 금배추가 등판했다.

농작물만이 아니다. 고수온으로 오징어 어획량이 급감하자 ‘금징어’도 모자라 ‘없징어’라는 말이 등장했다. 가을이면 흔하게 먹던 전어의 수확량도 전년보다 절반가량 줄었다. 해외에서는 커피, 설탕, 카카오 등의 수확량이 감소해 가격이 폭등했다. 기후플레이션(기후+인플레이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것이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폭염 등으로 기온이 1℃ 오르면 농산물 가격 상승률은 0.4~0.5%P 상승하고, 이는 최소 6개월가량 지속된다. 또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도 0.07%P 높아진다. 온난화 추세가 지속된다면 기후플레이션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 자명하다.

기후 변화로 작물 값이 높아지면 으레 비축 물량을 풀거나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하다는 게 앞서 여러 차례 발생한 ‘금OO’ 대란에서 확인됐다. 지난 7일 국감에서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금배추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에 “9월 중순에도 고온 현상이 지속돼 어쩔 수 없었다”라며 “당장 지금부터 시나리오별로 대책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진 못했다.

정부와 업계는 중장기적으로는 식량안보를 강화하고 새로운 기후에 맞는 농작물 품종을 개발해야 한다. 더불어 스마트팜을 활성화하고, 푸드테크 기술 등을 활용한 대체 식품 개발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식물성 대체육을 만드는 ‘비욘드미트’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일부 식품기업과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대체 식품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K푸드 열풍’만큼 중요하게 다뤄지진 않는 듯하다. 당장에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비욘드미트의 주가가 1년 새 반토막이 난 이유도 매출이 부진해서다.

일각에선 기후 위기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주체 대부분이 기성세대이다 보니, 이를 ‘먼 미래’로 보고 눈앞의 문제 해결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가 더 할 미래세대가 느끼는 공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 앞서 언급한 소송 청구인 255명 목록에 영유아와 10대 청소년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기후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은 저서 ‘폭염살인’에서 에어컨은 냉방 기술이 아니라 실내의 열을 외부로 옮겨주는 장치에 불과하다고 했다. 에어컨이 주는 시원함 때문에 기후 위기를 내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게 진짜 위기라는 주장이다. 헌재가 지적했듯 현재의 노력이 부족하면 미래의 부담은 더 가중될 것이다. ‘배추가 비싸니 양배추로 김치를 담가 먹자’ 식의 대응으로는 ‘금OO’ 사태가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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