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답하다] 의장은 `당파적 리더`·`중립적 중재자`?… 아슬아슬 줄타기
16대부터 제1당 의원총회 경선
'당적 이탈' 등 중립성 의무 불구
편파적 운영에 사퇴권고 받기도
국회의장
"우원식 국회의장은 여전히 더불어민주당원이다. 중재를 시도하는 척하면서 친정의 입법 폭주에 힘을 실어준다."
최근 우 의장이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국회의원의 투표로 선출된 국회의 대표자로서 대통령에 이은 국가 권력서열 2위에 위치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국민의힘은 의장이 민주당의 유리하게 편파적으로 국회를 운영한다고 비판한다. 심지어 본희의 발언을 마친 뒤 우 의장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고 의석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친정인 민주당은 끊임없이 의장을 압박한다. 의장이 중립적인 의사운영을 하도록 놔두질 않는다. 의장의 당적 이탈 의무와 중립성을 규정한 '국회법'도 유명무실하다. 의장은 중립적 중재자와 당파적 지도자 사이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독재정권 하의 국회의장
제헌국회부터 2대까지는 국회의장이 국회의 대표로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제헌국회 이승만 의장과 2대 신익희 의장은 독립운동 및 임시정부 활동 등의 경력을 토대로 강한 정치력을 행사했다. 당시까지 안정적인 정당체계를 확립되지 못한 것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정당체계가 구축된 3대부터는 의장이 집권여당을 대표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지명에 따라 선출된 이기붕 의장은 사사오입 개헌에 압장서는 등 대통령의 종신 집권과 자유당의 이익을 대표하기 위해 의장 권력을 이용했다.
박정희 정권에서도 대통령이 지명한 의원이 의장으로 선출되는 전통이 계속됐다. 집권 여당이 항상 원내 제1당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필요조건이었다. 9대 정일권 의장은 초선의원, 10대 백두진 의장은 박 대통령이 지명한 유정회 의원으로, 군부 정권하에서 의장의 위상이 얼마나 낮았는지를 상직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의 지명에 따라 당선된 의장은 권한을 날치기 입법이나 야당총재 제명 등에 행사했다.
◇민주화 이후의 국회의장
13대 국회부터도 한동안 당총재인 대통령의 지명이 의장선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다 16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집권여당(새천년민주당)이 제1당 지위를 상실하면서 후반기에 최초로 야당(한나라당) 출신 박관용 의장이 선출됐다. 전반기에는 DJP(김대중·김종필)연합 후보가 의장으로 당선됐지만, DJP연합이 와해된 후반기에는 제1당인 한나라당에서 의장이 뽑혔다. 이는 역사상 최초로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킬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후로는 원내 제1당의 의원총회에서 경선을 통해 결정된 다선의원이 의장으로 선출되는 전통이 확립됐다.
의장선출에서 대통령의 영향력이 사라졌다고 해서 의장의 당파성 논란이 사라지진 않았다. 당적 보유가 금지된 16대 국회 후반기 이후 현재까지 12인의 의장 중 10인(83.3%)에 대해 사퇴촉구 결의안이 제출됐다. 17대 국회 이후 11명의 의장 중 10명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 권한쟁의 심판이 청구됐다. 의장의 편파적인 의사진행으로 인한 중립의무 위반과 헌정질서 훼손이 주요 사유였다.
22대 국회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은 지난 6월 11일 사퇴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고, 같은 달 18일엔 상임위 강제 배정 등에 대한 무효를 확인하기 위해 우 의장을 피청구인으로 하는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단지 법적으로 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한다고 해서 국회 의장직이 '중립적인 중재자'로 인식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의장들이 중립의 의무를 고수하려다 자신이 몸 담았던 정당과 심하게 충돌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14대(재임 1993~1994년)·16대(2000~2002년) 이만섭 국회의장은 재임 중 집권 여당이 요구하는 날치기 입법을 전부 거부하다가 김영삼·김대중 대통령과 모두 척을 졌고, 18대 전반기(2008~2010년) 김형오 의장은 재임시절 예산안 직권 상정을 주저하다가 여야 모두의 공격을 받았다. 19대 후반기(2014~2016년) 정의화 국회의장은 새누리당이 요구했던 노동개혁법, 테러방지법 등에 대한 직권상정을 전부 거부한 뒤,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친정과 냉랭한 기류를 이어가다 2020년에 와서야 국민의힘에 복귀했다.
임기 내내 여야 협치를 강조했던 21대 김진표 국회의장은 친정으로부터 싫은 소리를 적지 않게 들었다. 거야인 민주당에 노란봉투법, 채상병특검법 등 쟁점법안과 예산안 처리를 여당인 국민의힘과 협의해서 처리하라고 주문할 때마다 '민심을 저버리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의장의 법적 권한 변화
국회의장은 선출 직후부터 당적을 이탈해야 한다. 국회법 제20조의 2에 규정된 이 조항은 16대 국회 때인 2002년 신설됐다. 당시 국회법 개정안은 '의장 당적 이탈' 조항을 신설한 이유를 "의장의 중립성을 보장하고 국회의 위상 제고를 위해"라고 설명했다.
의장의 당적이탈 의무는 제5대 국회 때도 추가됐다. 이 의장의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 영향이 컸다. 1954년 11월 '초대 대통령만은 중임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내용의 개헌안이 재적 203명 가운데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로 부결됐는데, 자유당 소속인 이 의장은 개헌안 가결을 선포했다. 당시 가결 요건은 203명의 3분의 2인 135.33표인에, 이를 반올림하면 135표로도 통과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의장 권한의 상당 부분도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거나 국회 운영위원회와 협의하도록 바뀌었다. 자유당 정권과 군부 정권 하에서 독재를 뒷받침했던 의장들의 행태가 제도의 변화를 가져 온 셈이다.
다만 부정적인 영향도 있었다. 심사를 마치지 못한 법안을 놓고 기간을 지정한 뒤 본회의로 올리는 직권상정 때문이다. 국회는 당적 보유 금지 조항을 신설하는 대신, 의장에게 이 권한을 부여했다. 그 때부터 일부 의장들은 이 권한을 이용해 당파성을 강하게 고수해왔다.
특히 17·18대 국회에서 여야가 대립하는 쟁점법안이 직권상정을 통해 처리되는 경우가 급증했다.
문제는 직권상정 처리과정과 이후에 여야가 더 심각한 대립과 파국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결국 2012년 5월 국회법을 개정해 의장이 직권상정이 가능한 범위를 천재지변·국가 비상사태·의장과 교섭단체 대표의원과의 합의 세 경우로 엄격하게 제한했다.
◇해외 사례
미국의 의장은 중립적 중재자형이 아니다. 미국은 항상 민주당이나 공화당 중 어느 한 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며, 다수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을 다수당 독식(winner-take-all)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런 환경에서 하원의장은 대외적으로는 의회 전체를 대표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다수당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당파적인 지도자로서 역할을 적극 수행한다.
이를 제대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다. 민주당 출신이었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2020년 2월 4일 본회의에서 공화당 출신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끝난 후 연설문을 4차례나 찢어버렸다.
의장의 당파성은 제도적 권한에 의해 뒷받침된다. 의장은 다수당의 입법의제를 신속히 통과시키기 위해 규칙정지(suspension of rules)나 만장일치동의(unanimous consent motion) 등 의사규칙을 적극 활용한다. 또 양당의 운영위원회 위원장으로 소속 의원의 상임위원회 배정도 주도한다. 법안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특별규칙 부여를 결정하는 규칙위원회 위원 배정이나, 제3의 원으로 불리는 양원협의회 위원 배정 권한도 의장이 갖고 있다.
반면 영국의 의장은 비당파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본회의를 주재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의장은 당선과 동시에 당적을 이탈해야 한다.
의장은 본회의에서 여야 정당간 발언시간 배분·긴급토론의 허용·대정부 질문 질의자 선정 등을 정할 때 불편부당한 중재자의 입장에서 결정한다. 특히 소수정당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보호해야 하는 책임을 갖는다.
그러면서 본회의 의사운영에 강력한 질서유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의장은 원내소란이 발생할 경우 의원에게 발언중지나 호명의 제재를 강하거나, 회의장 퇴장을 명령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갖는다.
의회대표자로서 권위를 크게 존중받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의회제도의 모국으로서 700여 년 넘는 기간 확립돼 온 정치적 전통이다. 하원의원들 사이에서도 중립적 중재자로서의 의장의 역할에 대한 높은 수준의 합의가 존재한다.
◇한국 국회의장이 가야할 길
한국의 이상적인 의장모델은 영국의 하원의장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실적적으로 권위를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매 국회마다 제2당이 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고 사퇴권고 결의안을 제출하는 게 현실이다. 이상과 현실에 상당히 괴리가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현실을 수용해 다수당 대표형 의장 모델을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일종의 미국 의장의 모습과 가까워지는 셈이다.
다만 이런 모델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의장의 당적 이탈 의무를 규정한 '국회법' 조문을 삭제해야 한다. 현재 의장이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도록 돼 있는 의사운영과 관련된 조문 역시 의장의 재량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당연히 신중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입법조사처는 "이런 변화는 큰 틀에서 국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라며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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