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 ①생리의학상…유전자발현 정밀 조절자 miRNA

백대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2024. 10. 1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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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노벨생리의학상 발표 현장. 연합뉴스 제공

● 인체 내 세포들이 왜 모두 다른지를 설명할 수 있는 유전자 발현 조절

인체는 약 30조 개에 이르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세포의 집합체이다. 피부 세포, 신경 세포, 면역 세포, 근육 세포 등 다양한 크기와 형태를 가지며 제각기 맡은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면서 복잡한 생명체를 이룬다.

이 모든 세포의 설계도는 세포 핵에 있는 DNA에 저장되어 있으며 한 사람의 체내의 세포들은 정확하게 동일한 DNA 설계도로 만들어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 답은 세포 내 유전자 발현 조절에 있다. DNA 설계도 상에서 하나의 기능을 수행하는 단위를 유전자라고 하는데 각 유전자는 mRNA라는 중간 단계를 거쳐 단백질로 만들어진다. 앞서 언급한 세포의 다양한 크기, 형태와 기능은 그 세포 내에서 어떤 단백질이 얼마나 만들어지는가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한 세포가 근육 세포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근섬유 단백질이 많이 생산되어야 한다. 유전자 발현 조절을 통해 근섬유를 만드는 mRNA의 발현을 늘리면 근섬유 단백질이 많아지면서 해당 세포는 근육 세포로 발달할 수 있다.

mRNA 발현을 조절하는 이와 같은 방식을 '전사인자를 통한 유전자 발현 조절'이라고 하며, 이 기작을 발견한 과학자, 프랑수아 자코브(François Jacob)와 자크 모노(Jacques Lucien Monod)는 1965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약 30년 동안 전사인자는 유전자 발현 조절을 설명하는 거의 유일한 기작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1998년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완전히 새로운 원리가 밝혀진다.

● 유전자 발현을 스위치처럼 강하게 꺼버리는 RNA 간섭

1998년 앤드류 파이어(Andrew Fire)와 크레익 멜로(Craig Mello)는 예쁜꼬마선충(학명 Caebirhabiditis elegans)에 이중가닥 RNA(double-stranded RNA)를 도입하면 이중가닥 RNA와 상보적 서열을 가진 mRNA가 분해되어 근육 기형이 발생함을 증명하였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전사인자에 의해 mRNA 발현을 조절하는 대신 이미 발현된 mRNA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것이다. RNA 간섭(RNA interference)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현상은 다양한 동식물에서 관찰되었으며 두 과학자에게는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수여되었다. 

RNA 간섭이 발견된 이후 과학자들이 이중가닥 RNA가 mRNA를 분해하는 기작을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주로 세포 외부로부터 도입된 이중가닥 RNA는 세포 내에서 효소에 의해 22 뉴클레오타이드(nt, RNA의 길이 단위) 길이의 짧은 분자로 가공되며 이 짧은 분자를 siRNA(small interfering RNA)라고 한다.

siRNA는 자신과 상보적인 서열을 가진 mRNA와 22nt의 연속적인 결합을 이룬 후 효소가 mRNA를 절단하며 이를 통해 mRNA의 발현을 강하게 줄이게 된다. 이와 같은 RNA 간섭 현상을 이용해 여러 치료제가 개발 중이다. 특히 얼나일럼 파마슈티컬스(Alnylam Pharmaceuticals) 사는 2018년 세계 최초의 RNA 간섭 신약을 FDA에서 승인받은 이래 현재까지 5가지의 신약을 FDA에서 승인받은 바 있으며 향후 더 많은 혁신적 RNA 간섭 신약이 개발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유전자 발현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마이크로RNA

그렇다면 2024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제인 마이크로RNA(microRNA)와 RNA 간섭의 차이는 무엇일까. 마이크로RNA도 앞서 설명한 siRNA와 유사하게 길이 22nt의 짧은 RNA 분자이며 상보적으로 mRNA와 결합하여 mRNA 및 단백질 발현을 억제한다는 점에서 RNA 간섭과 유사하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여러 차이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마이크로RNA는 세포의 DNA 설계도 상에 존재하고 있는 마이크로RNA 유전자로부터 발현되며 세포 내의 mRNA를 조절 표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또한 mRNA와 20nt 이상 결합해야 하는 siRNA와 다르게 마이크로RNA는 단 6-7nt의 결합만으로도 mRNA의 발현을 억제하며 mRNA의 발현양의 30~50% 정도만을 미세하게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다른 중요한 차이점은 보통 단 한 개의 제어 표적을 가지는 siRNA와는 달리, 마이크로RNA는 평균적으로 200개 이상의 mRNA를 동시에 제어 표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자 이제 1000개에 이르는 인간 마이크로RNA들이 2만1000개의 인간 mRNA 거의 전체를 제어 표적으로 삼는 거미줄과 같은 촘촘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mRNA 발현양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거대한 유전자 조절 네트워크 집합체를 상상해 보자.

이번 노벨상의 의의는 이러한 마이크로RNA를 동물에서 최초로 발견하고 동작하는 기작을 규명했다는 점에 있다.

빅터 앰브로스(Victor Ambros) 매사추세츠 의대 교수와 게리 러브컨(Gary Ruvkun) 하버드 의대 교수는 1993년도에 예쁜꼬마선충에서 lin-4라는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들지 않고 22nt의 짧은 RNA분자를 만드는데 단백질을 만들지 않음에도 lin-14 mRNA와의 상보 결합을 통해 lin-14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lin-4가 바로 최초로 발견된 마이크로RNA이며 후속 연구에서 lin-4가 lin-28 유전자 발현 또한 억제한다는 사실을 추가적으로 발견했다.

여기서 단순히 예쁜꼬마선충의 발달 과정에서 나오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한정지어 생각하지 않고 꾸준히 연구를 진행한 결과 러브컨 교수는 2000년 또 다른 마이크로RNA인 let-7을 발견하였는데 let-7은 예쁜꼬마선충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진화적으로 보존되어 있으면서 세포 내에서 핵심적 기능을 수행함을 확인하였다.

이 놀라운 발견 후로 분석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현재까지 1000개가 넘는 마이크로RNA가 인간에게서 발견되었고 4만개가 넘는 마이크로RNA 유전자가 271개의 생물체에서 발견되었다.

● 대한민국 노벨 과학상에 대한 시사점

지난 수십 년 동안 매년 10월 초가 되면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이 노벨 과학상을 염원하다가 왜 우리는 수상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자괴감 섞인 질문을 던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어쩌면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이 그 오랜 질문에 대해 한 가지 힌트를 줄 수 있다.

2006년과 2024년 노벨 생리의학상 모두 예쁜꼬마선충의 유전학이라는 순수 기초과학에 주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분야는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생소하여 선뜻 대규모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나 1990년대의 미국 정부를 포함한 그 어떤 정부에게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해당 분야의 최고 과학자들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면서 그들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순수 기초과학 분야에 장기적으로 투자하기로 결정한 당시 미국 정부의 현명한 결정이 두 개의 노벨 생리의학상과 얼나일럼 파마슈티컬스라는 시총 45조 원짜리 선도 기업을 탄생시키고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경제적, 과학적 이익을 미국에 돌려 준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의 순수 기초과학에 대한 장기적 투자의 규모와 방법이 적절한지 면밀히 재점검해 볼 시점이다. 

※필자소개
백대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KAIST 전기공학부(생명과학 부전공)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에서 생명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화이트헤드 연구소, 매사추세츠공대(MIT),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HHMI)에서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 2010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부임했다.

[백대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n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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