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 나란히 걸어주면 수천 점 기증하겠소"...터너의 추앙, 현실이 됐다 [양정무의 미술 읽어드립니다]
편집자주
좋은 예술 작품 한 점에는 질문이 끝없이 따라붙습니다. '양정무의 그림 읽어드립니다'는 미술과 역사를 넘나들며 대중과 함께 호흡해온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여러분의 '미술 지식 큐레이터'가 되어 그 질문에 답하는 연재입니다. 자, 함께 그림 한번 읽어볼까요.
아름다운 자연이 담긴 풍경화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곳곳에 비밀스러운 문화 코드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일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부자연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풍경화 속엔 읽을 것이 넘쳐난다. 미술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해줄 풍경화 명작을 골라 10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영국이 자랑하는 내셔널 갤러리는 지금부터 정확히 200년 전인 1824년 설립됐다. 현재는 런던 한복판인 트래펄가 광장에 크게 자리하고 있지만, 원래는 근처의 3층짜리 단독주택에 세워졌다가 1836년 현재 위치로 옮겨 왔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가 공식적으로 설립되기 직전에 벌어진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내셔널 갤러리는 처음에는 자수성가한 은행가 존 앵거스테인의 컬렉션을 기초로 그의 저택에 세워졌다. 앵거스테인은 1823년 사망하면서 자신이 살던 집과 함께 애장하던 38점의 회화 작품을 정부에 저렴하게 판매하는 형식으로 기증했다. 이듬해 영국 정부는 이를 내셔널 갤러리로 삼아 그의 소장품을 공식적으로 전시했다.
앵거스테인은 생전에도 수집한 미술품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줬는데, 어느 날 한 젊은 화가가 방문해서 그림을 감상하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앵거스테인이 다가가 왜 우는지 묻자, 그 화가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이 같은 그림을 그리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답하며 울먹였다. 이때 울음을 터뜨린 화가는 오늘날 영국의 국민 화가로 추앙받는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였다.
두 거장의 그림이 나란히 걸린 사연
촉망받는 청년 화가가 눈물을 흘리게 한 그림은 17세기 화가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였다. 앵거스테인은 로랭이 그린 풍경화를 다섯 점 소장하고 있었는데, 터너는 '시바 여왕의 출항' 같은 로랭의 그림을 보고 크게 감동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부터 터너는 로랭을 평생의 롤 모델로 삼고 그의 풍경화 따라잡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훗날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성장한 터너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자기 작품 모두를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유언했다. 550점 이상의 유화, 2,000점 이상의 수채화 등 엄청난 양이었는데, 한 가지 조건이 붙었다. 터너는 자기 작품 중 2점을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한 로랭의 작품 2점과 항상 나란히 전시해 줄 것을 요구했다.
터너가 고른 로랭의 작품은 '시바 여왕의 출항'과 '물레방앗간'이다. 터너가 선별한 자신의 작품은 '카르타고를 건설하는 디도'와 '안개 위로 떠오르는 태양'으로, 지금도 내셔널 갤러리에 가면 이 두 화가의 네 작품이 한자리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과연 터너는 로랭으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고 얼마나 따라잡았을까? 우선 로랭의 '시바 여왕의 출항'과 터너의 '카르타고를 건설하는 디도'를 비교해 보면, 누구의 작품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성과 색채감이 비슷하다. 하지만 세부나 주제 면에서 살펴보면 다른 점도 보인다.
예를 들어 로랭에 비해 터너는 안개 같은 대기에 효과를 강조하여 세부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에 더 집중하고 있다. 빛의 처리도 터너가 더 적극적이어서 전체적으로 바다와 산, 나무와 건축물 등 등장 요소가 모두 빛에 의해 형태가 한층 더 부드럽게 드러난다.
여기서 터너가 고대 지중해의 해상 강국 카르타고를 세운 전설적인 여왕 디도의 이야기를 자신의 그림 속에 펼쳐 놓았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영국도 카르타고처럼 바다를 지배했으면 하는 열망을 낭만적으로 풀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기적으로 프랑스의 나폴레옹과의 전쟁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그려지면서, 그가 재구성한 고대 카르타고의 항구 풍경은 새로운 해상제국을 꿈꾸던 영국인들에게 교훈적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보면 터너와 로랭의 두 작품은 150여 년이라는 시차가 무색할 만큼 많이 비슷하지만, 주제뿐 아니라 세부에서 터너만의 독창성도 잘 드러난다.
풍경화에 국가 정체성을 녹이다
터너의 풍경화가 영국이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일찍이 보여주는 좋은 예가 그가 30세에 그린 '난파선'이다. 터너는 어릴 때부터 ‘그림 신동’으로 불렸는데, 특히 두각을 나타낸 장르는 바다 풍경화였다. 그는 '난파선' 같은 과감한 바다 풍경화로 당시 영국인들의 시각적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난파선'은 가라앉는 배를 배경으로 3대의 구명보트에 옮겨 탄 생존자들이 강한 비바람을 맞으며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담았다. 당시 실제로 벌어진 난파 장면을 생생하게 그렸다고 볼 수 있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시점이 1805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나폴레옹과 맞서 싸워야 하는 영국의 정치적 상황을 우회적으로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유럽 대륙을 장악한 나폴레옹은 바다 건너 영국마저 정복하기 위해 해군력을 증강하면서 영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1805년 10월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르 해전을 승전으로 이끌면서 위기에서 일단 벗어났지만, 나폴레옹의 위협은 1815년까지 계속됐다.
터너가 1812년 선보인 그림 눈보라: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은 다름 아닌 나폴레옹의 군사적 흥망성쇠를 일깨우는 전쟁 풍경화이다. 기원전 218년 로마를 정복하기 위해 힘겹게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을 그렸지만 이는 1800년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원정을 성공시킨 나폴레옹을 강하게 암시하기 때문이다. 한니발은 험준한 산맥을 넘어 원정을 성공시키는 듯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로마에 패한다. 따라서 터너의 전쟁 풍경화도 나폴레옹이 영국에 결국 패배할 것을 주장하는 애국적 그림으로 볼 수 있다.
너무나 정치적인 풍경화 읽기
1802년 프랑스 파리를 답사한 터너는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영웅적인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봤고, 이에 대응하여 '눈보라: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을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터너의 그림에 보이는 혼돈적 상황이 나폴레옹의 위협 앞에서도 산업혁명에 반대하는 러다이트 운동 같은 내부 폭동으로 분열된 영국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담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이제 풍경화는 정치적인 그림이 되었다.
내셔널 갤러리가 설립될 당시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과거의 위대한 명작을 자주 보게 되면 젊은 화가들이 그저 과거의 명작만 따라 그려 창조력을 잃게 될 거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걱정이었다. 터너는 로랭의 풍경화 앞에서 눈물을 터트릴 만큼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나 터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풍경화를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재해석하면서, 평화롭고 목가적이었던 풍경화를 뜨거운 정치적 그림으로 탈바꿈시켰다. 다시 말해 '로랭과 터너의 관계'는 그 관계를 어딘가로 끌고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면 영향을 받는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제 풍경화는 정치적 상황과 국가적 정체성까지 담을 수 있는 생동하는 그림 장르로 거듭났다. 이후 미술 혁신이 풍경화를 중심으로 벌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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