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는 ‘보수적 자유주의자’… ‘강한 일본’ 아베와는 다른 길 걷는다[Deep Read]

2024. 10. 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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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각수의 Deep Read - 이시바 총리와 한일관계
실용주의 안보관과 역사에 대한 겸허한 자세 강조… 아베의 新 부국강병 노선에 반대 입장
경제·과거사엔 ‘협력적 한·일관계’ 전망…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 새 비전 설계할 때

이시바 시게루(石破茂)가 일본의 제102대 총리로 취임했다. ‘보수적 자유주의자(conservative liberal)’인 이시바 총리의 일본은 복합 대전환의 시대를 헤쳐 나가는 데 있어 한·일이 소중한 전략 파트너라는 점을 인식하고 경제·과거사 문제 등에서 협력적 양국 관계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시바의 부상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는 크게 의원 표와 당원 표로 결정되는데, 당원 표의 비중이 2차에서 크게 줄어 의원들의 표심이 중요하다. 선거전 초반 젊은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가 높은 여론 지지로 선두에 나섰으나, 정책 부재와 토론 실수로 3위로 처졌다.

결국 인기는 높지만 당내 지지가 약한 이시바와 보수우파가 아베 후계자로 지지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간의 경쟁이었다. 1차에서는 다카이치가 이시바를 이겼으나, 2차에서 이시바가 21표의 근소한 차로 역전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총리,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 등 당 원로 3인의 영향이 컸다. 총선을 앞두고 당의 간판으로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에 대한 우려와 국민 지지도가 높은 이시바에 대한 기대도 작용했다. 자민당이 과거 록히드사건, 리크루트 사건 등 당내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소수파벌의 미키 다케오(三木武夫)와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를 등판시킨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시바 총리는 일본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돗토리(鳥取)현 출신으로, 부친이 돗토리현 지사를 지냈다. “정치하지 말라”는 부친의 유언을 어기고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다. 온건한 스타일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소통을 강조하는 ‘공부하는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선거구에서 5만여 가구를 직접 방문해 5만여 표를 얻을 만큼 유권자 직접 접촉과 목소리 경청을 중시한다.

이시바 총리는 ‘국가의 부강보다 모든 국민이 잘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신념에 따라 분배에 역점을 둔다. 이런 맥락에서 ‘강한 일본’을 내세워 새로운 부국강병을 추구한 아베 노선에 반대를 선명히 해왔다. 정치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조해 아베 정부의 특혜·부정·은폐 스캔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비주류와 무파벌을 고수해온 자칭 보수적 자유주의자다.

◇보수적 자유주의자

이시바 총리가 아베 노선에서 탈피할 수 있을까. 우선 10·27 총선에서 승리해 정권 기반을 굳혀야 한다. 쇄신 이미지를 강조하려 선거대책위원장으로 고이즈미 전 환경대신을 내세우고, 내각도 무파벌과 첫 입각 인사를 대거 기용해 참신성과 변화를 보였다. 다만 소외세력의 반발과 경험 부족으로 국정운영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 당내 기반이 약한 데다 라이벌인 다카이치 진영(주로 아베파)이 정권 참여를 거부해 대립 우려가 크고, 정치자금사건 관련 의원들의 공천문제로 분란 소지도 있다.

최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2002년 이래 가장 낮은 51%에 그쳤다. 지리멸렬하던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 9월 보수 성향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를 대표로 선출, 보수·중도층에 접근하면서 선거전도 힘들어졌다. 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자민당의 잇단 잡음과 실책에 대한 국민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자민당 개혁이 필요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차단하고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총재 선거를 도와준 기시다·스가의 입김과 대립각을 세운 아소의 견제로 비주류인 자신의 노선과 정책을 실현할 당의 지지 확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시바 정권의 안정 여부는 내년 7월 참의원 선거까지 지켜봐야 한다.

이시바 정부의 대아시아 정책은 어떨까. 안보통으로 집단적 자위권 명문화와 자위대 합헌을 위한 개헌을 주장해 매파인 듯 비치지만, 실제로는 실용주의와 균형감이 있다고 평가된다. 그는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가 필요하지만 긴장을 완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며, 아시아 인접국과의 신뢰를 쌓기 위해 역사에 관한 겸허한 자세를 강조한다.

◇대외정책

이시바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미·일 동맹이 필요하지만 국가안보기본법을 제정하고 일방적 불평등성을 없애 대등한 파트너로 규정하자는 생각이 강하다. 또 미·일 SOFA 개정, 미국 내 일본기지 건설, 확장억지의 구체화, 핵 공유, 아시아판 나토 창설 등을 주장한다. 미국에 전적으로 치중했던 아베 노선보다는 좌클릭 하겠지만 그 진폭은 자민당 본류의 반응, 미국 대선 결과 및 중국의 대일 자세 변화 여부 등에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관계 측면에서 이시바 정부 출범은 기회와 불안을 동시에 던져준다. 이시바 총리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지 않고 과거사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다는 점에서 건강한 역사관을 갖고 있다. 지난 4일 이시바 총리가 국회 연설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한·일관계 회복 기조의 연속성이 예견된다. 한·일관계에 이해가 깊은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의 유임과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총재선거대책위원장의 외무대신 임명도 긍정적 요소다. 다만 아베 유산에 관한 입장의 변화가 우파 의원들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있어 이시바 총리의 결단이 필요하다.

한·일관계는 지난해 3월 이후 그해 8월 캠프데이비드 회담까지 빠르게 회복 궤도에 올라 양국 여론도 많이 개선됐다. 이후 양국의 국내 정치 사정과 함께 일본의 성의 부족에 대한 한국의 불만과 한국의 정책 변화 가능성에 대한 일본의 불안이 겹치면서 힘을 잃었다.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라는 계기를 앞두고 양국 관계에 전향적인 이시바 정부가 출범하는 만큼, 다시 두 나라 사이의 관계 안정화 노력을 가속해야 한다. 정상 간 소통과 신뢰 조성을 위해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연내에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셔틀외교를 조기 개최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

이시바 정권은 북핵 문제, 지역 정세, 세계정세, 경제 현안과 글로벌 이슈는 물론 강제동원·일본군위안부 등 과거사 현안들과 관련해 한국과 협력적 접근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조기에 집중 실현해 양국 국민에 협력의 열매를 맛보게 하고 과거사 부담을 순차적으로 낮추려는 노력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한국과 일본이 복합 대전환과 혼돈의 포스트 탈냉전 시대를 헤쳐 나가는 데 상호 소중한 전략 파트너라는 점을 재확인해야 한다. 또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한·일관계의 새로운 비전을 설계해야 할 때다.

니어재단 부이사장, 전 외교부 1·2차관

■ 용어 설명

‘강한 일본’, 즉 ‘그레이트 닛폰’은 2015년 8월 14일 패전 70주년에 나온 ‘아베 담화’에서 구체화한 국정 비전. 세계의 리더가 되기 위한 일본의 재부상을 알리고 새 부국강병 노선을 천명.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이시바 총리의 접근은 주변국에 긍정 평가됨.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기독교 신자로 한·일 과거사 현안에 온건한 목소리를 냈으며 야스쿠니신사 참배 경험이 없는 정치인.

■ 세줄 요약

이시바의 부상 : 일본 새 총리 이시바는 비주류와 무파벌을 고수해온 자칭 ‘보수적 자유주의자’임. ‘강한 일본’을 내세워 신 부국강병을 추구했던 아베 전 총리의 노선에 반대를 선명히 해온 정치인으로 각인돼.

보수적 자유주의자 : 이시바가 아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각 지지율 제고, 기득권세력 반발 차단, 당내 다수의 지지 확보 등 과제를 해결해야. 이를 위해서는 10·27총선과 내년 7월 참의원 선거 승리가 필수.

한·일관계 : 이시바는 아시아 인접국과의 신뢰를 쌓기 위해 역사에 관한 겸허한 자세를 강조. 한국과는 경제·과거사 등과 관련한 연속적 회복 기조가 예견됨. 이순(耳順)을 맞은 한·일 관계의 새로운 비전을 설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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