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노예’ 피해자 국가배상 소송냈지만…정부는 여전히 “책임 없다” 답변
2021년 ‘제2의 염전노예 사건’ 피해자로 알려진 박영근(56)씨는 최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 중이다. 노동청 근로감독관의 합의 종용으로 피해 구제가 늦어졌으니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인데, 앞서 2014년 신안 염전노예 사건에서 대법원이 ‘국가의 보호 의무’를 인정했음에도 정부는 “책임 없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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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장애를 가진 박씨는 지난 2014년 7월부터 2021년 5월까지 전남 신안군의 한 염전에서 사실상 감금당한 상태로 일을 했다. 매달 140만원을 받고 일하기로 계약을 맺었지만, 박씨 손에 들어온 돈은 실질적으로 한 푼도 없었다. 새벽 3시부터 밤 11시에 이르는 근무 시간, 관리자의 동행 하에 이뤄지는 연 2회 외출 등의 노동 착취를 견디던 박씨는 2021년 5월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염전에서 탈출한 박씨는 2021년 6월 광주지방고용노동청 목포지청에 염전 운영자 장아무개씨를 대상으로 한 진정을 제기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체불임금이 400만원이고 피해자에게 지급하겠다는 장씨의 진술만을 듣고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했고 사건을 종결했다. 그 과정에서 박씨에 대한 대면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박씨의 의사소통 능력에 대한 판단도 없었다. 근로감독관은 박씨가 진정취하 예시 문구를 수신받아 진정취하 의사를 표하는 과정에서 ‘형서처벌’이나 ‘치하합니다’ 등 오타와 오기를 반복했음에도 박씨의 의사소통 어려움 정도를 확인하지 않았다. 또한 염전 운영자 장씨는 이미 과거 장애인에 대한 장기간 임금 미지급과 감금으로 처벌을 받은 경력이 있고, 근로감독관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과거 수사와 관련한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음에도 장씨에 대한 범죄 경력 조회 등을 하지 않았다.
이후 2021년 10월 박씨에 대한 노동착취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에야 목포지청은 내사에 착수했고, 그 결과 피해자에게 미지불된 임금과 퇴직금이 400만원이 아닌 총 87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박씨는 지능과 인지기능에 대한 평가에서 같은 연령대 하위 0.3% 수준 판정을 받았고, 2021년 12월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지적장애 등록을 했다.
박씨 쪽은 지난해 4월 “노동청의 합의 종용 등으로 피해 구제가 늦어졌다”며 국가를 상대로 3500만원 상당의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박씨쪽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사법기관은 조사 과정에서 사건 관계인이 의사소통이나 의사표현에 어려움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장애인에게는 형사사법 절차에서 조력을 받을 수 있음과 그 구체적인 조력 내용을 알려줘야 함에도 근로감독관은 피해자의 장애 여부 확인 및 그에 따른 조치 등을 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앞서 지난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박씨가 낸 진정에 대해 근로감독관의 과실을 인정하며 노동부에 장애 여부 확인과 관련한 지침을 만들고, 장애인 염전 노동자의 권리구제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국가는 여전히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 지난 6월 정부가 재판부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근로감독관은 원고가 통화 당시 의사소통이 가능하여 원고가 의사표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장애 여부 등을 확인하지 않은 것에 근로감독관의 고의나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앞서 2014년 발생했던 신안 염전 노예 사건에서도 정부는 이런 태도를 보였다. 염전 노동 착취 사건이 사회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된 신안·완도 ‘염전노예’ 사건의 국가 배상 소송에서도 정부는 “국가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항소심 법원은 국가의 보호 의무 책임을 인정하고 대법원 역시 이를 확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인권유린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대접도 받지 못한 채 장기간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사회적 약자인 정신장애인들은 외딴 섬에서 가혹 행위를 감수하며 대가 없이 장기간 중노동을 감당해야 했다”며 “당시 ‘신안·완도 지역에 정신장애인 강제노동 피해가 적지 않다’는 언론 보도가 줄곧 있었다. 해당 지역 관할 경찰 공무원과 근로감독관,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 각별한 주의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배상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7년 뒤 같은 사건이 반복됐고, 여전히 국가배상 소송에서 정부는 책임을 부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씨 쪽은 “염전 운영자 일가와 지역사회의 책임뿐 아니라, 권리 구제를 늦춘 국가의 책임을 꼭 묻고 싶다”는 입장이다. 사기, 근로기준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염전 운영자 장씨는 지난 8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국가 배상 소송은 아직 첫 변론 기일이 잡히지 않았다. 박씨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가 잘못했다는 인정을 꼭 받고 싶은 마음”라며 “과거를 털고 새로운 삶을 나가기 위해서라도 꼭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일을 찾았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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