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띄우려는 중국… 발목 잡는 ‘빈집 9000만채’[Global Focus]

박세희 기자 2024. 10.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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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Focus - 주택공급 과잉… ‘유령도시’ 속출
베이징서 30㎞ 거리의 옌자오
공사 멈춰 철골 뼈대만 곳곳에
위성도시 빈집 늘면서 ‘슬럼화’
인구 급감도 경기악화 부추겨
전문가 “도시 4분의 1 빈 곳도
질서유지 등 사회적문제 될 것”
지난해 3월 31일 중국 북동부 랴오닝성 선양 교외의 국빈맨션이 부동산 경기 악화로 건설이 중단된 채 버려져 있는 모습. 과잉 공급된 주택을 흡수하기 힘든 중소 도시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유령마을이 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베이징=박세희 특파원 saysay@munhwa.com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더 떨어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부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겁니다.”

지난 4일 허베이(河北)성 옌자오(燕郊)에서 만난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이같이 말했다. 옌자오는 베이징(北京)에서 동쪽으로 30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베이징 시내까지 대중교통으로 약 1시간 거리여서 베이징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많이 산다. 비싼 베이징 집값을 피해 많은 한인과 조선족들이 옮겨간 곳이자, 부동산 가격 급등과 급락을 겪은 대표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옌자오에 들어서자 건물 공사가 멈춘 지 오래돼 철골 뼈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건물부터 눈에 띄었다. 건물 인근에서 만난 한 시민은 “(옌자오) 정부가 쓰려고 지은 건물”이라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사가 멈춘 지 몇 년 됐다”고 전했다. 곳곳의 새 아파트들은 아직 사람이 들어가 살지 않는 모습이었고, 이날 찾은 한 아파트단지 분양사무실은 손님 없이 휑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옌자오가 위성도시로 한창 떠오르던 2010년대 중반, 아파트 가격은 평당 3만∼4만 위안(약 572만∼762만 원)이었지만 지금은 1만∼2만 위안에 불과하다. 그땐 서로 부동산을 사려고 안달이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인 상황”이라며 “그래도 이번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고 나서 문의가 조금씩 다시 오고 있다”고 전했다.

◇부동산 정책 발표했지만…전문가들 “더욱 근본적인 대책 필요” = 이날 만난 옌자오의 부동산 중개업자를 비롯해 베이징에서 부동산을 중개하는 이들은 최근 중국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경기 부양책으로 부동산 경기가 다시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은 지난달 27일 시중은행의 지급준비율(RRR·지준율)을 0.5%포인트 낮춰 장기 유동성 1조 위안(약 189조 원)을 공급했고 정책금리인 7일물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 금리도 인하했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인하하면서 상하이(上海), 선전, 광저우(廣州) 등 중국 1선 도시들도 곧바로 주택 구매 규제조치를 완화하고 나섰고 충칭(重慶), 쓰촨(四川) 등 10여 개 성과 우한(武漢), 난창(南昌) 등 50여 개 도시는 자체 부동산 정책을 내놨다. 국경절 연휴 기간(1∼7일)과 맞물려 정부 주도로 20여 개 성·시·자치구, 130여 개 도시에서 1000여 개 부동산회사가 참여한 가운데 2000여 개에 달하는 다양한 부동산 판촉 행사도 진행됐다. 이에 국경절 연휴 기간 주택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는 CCTV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서구권 경제학자들은 중국 정부가 지난 8일 발표한 예산 조치 투입 등 최근 내놓은 대책 이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는 빈 주택이 9000만 채 이상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 가구당 가구원이 3명이라고 가정하면 브라질 전체 인구(약 2억 명)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중국의 많은 도시들이 절대 채워지지 않을 빈집으로 가득하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그나마 베이징과 상하이, 선전과 같은 대도시는 경제도 역동적이고 이민자들의 유입도 있어 과잉 공급된 주택을 흡수할 수 있겠지만,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고 인구도 감소하는 소규모 도시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훨씬 어렵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인구가 수십만∼수백만 명 정도인 3∼5선 도시들이 중국 주택 재고의 60% 이상을 보유 중이다. 토지 판매와 건설이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지방 정부의 지갑을 살찌웠기 때문에 많은 개발자들이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더 많은 토지를 건설하도록 장려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부동산 경기가 활황일 때 많은 건축업자들은 소도시를 목표로 삼았다. 대도시는 점점 더 비싸지고 있었고, 투자자들은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하는 한 어디든 구매할 의향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베이징과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옌자오, 상하이(上海)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치동(啓東) 등이 주목받았던 게 바로 그때다.

◇인구 감소도 문제…‘유령 도시’ 늘며 사회적 문제도 =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도 부동산 경기가 악화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중국 인구는 2022년 말 기준 14억1175만 명으로 전년 대비 85만 명 줄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명을 기록했다.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2.1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런 추세라면 2035년 인구가 14억 명대를 밑돌고 2100년쯤에는 5억 명대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티안레이 황 연구원은 “근본적으로 집을 채울 사람이 충분하지 않다. 주택 공급 과잉 문제에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현재 중국 곳곳엔 건축업체들의 파산 등으로 개발이 멈춘 유령 도시들이 다수 있다. 260개의 유럽식 빌라로 호화롭게 계획돼 2010년 착공됐으나 2년 만에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건물 뼈대만 흉물스럽게 남은 선양(瀋陽) 인근의 국빈맨션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현재도 버려진 채 인근 농민들의 경작지와 가축우리로 일부 사용되고 있다.

중소 도시들을 중심으로 ‘유령 도시’가 늘면서 이에 따른 사회적 문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빈집이 늘고 도시가 황폐화되며 슬럼화되고 있는 것이다. 로고프 교수는 “주택의 4분의 1이 빈 도시들이 있을 것”이라며 “그런 곳에서는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어렵다. 앞으로 사회적, 거버넌스적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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