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런 말을" "우리나라는 달라"…불통에 얼어붙은 교실
[편집자주]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면서 학교가 달라지고 있다. 지방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70%가 이주배경학생으로 채워진 학교가 등장했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 베트남, 필리핀, 태국, 몽골, 캄보디아 등 학생들의 출신 국가도 다양하다. 준비가 덜 된 학교 현장은 식은땀을 흘린다. 이주배경학생 19만 시대, 학생과 교사가 모두 행복한 학교를 고민해본다.
# 지난해 경기 김포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이주배경학생이 친구와 장난을 치는 과정에서 목을 조르는 듯한 행위를 했다. 교사 A씨는 번역기를 사용해서 "목을 조르면 안 된다"고 지도했다. 그러자 학생은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A씨는 "소통이 제대로 안 되니 교사 의견이 아이들에게 다른 의도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고 기자에게 토로했다.
# 교사 B씨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다문화 가정에서 허용하는 훈육의 종류와 정도가 출신 국가별로 천차만별이기 때문. B씨는 "아동 학대 정황이 있어도 '우리나라에선 아니다'라고 하면 개입하기 힘들다"며 "학생이 어릴수록 교사가 부모와 긴밀히 소통해야 하는데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을 일일이 다 이해시키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초등학교의 이주배경학생 비율이 증가하면서 교육의 최일선에 있는 교사들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 번역기 사용하고 통역사 사용해도 "오해 잦아"…다문화 교실 혼란 가득
다문화 학급 담임을 맡은 교사들은 기본적인 대화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입을 모았다. 전교생의 90%가 이주배경학생인 학교에서 근무한 C씨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일단 한국어로 소통이 안 되는 학생들이 이렇게 많은 학교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을 못 했다"고 말했다.
특히 문화가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들에서 온 학생들을 지도할 때 긴장감이 높아진다. 관련 정보가 전무해서다.
C씨가 근무한 학교는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온 학생들도 있었지만 중앙아시아 국가 출신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C씨는 "학교 근처에 큰 공단이 있어 외국인 근로자의 아이들이 (해당) 학교에 많이 다녔지만 이주배경학생을 가르쳐 본 교사가 많이 없었다"며 "(교육) 대학에서도 관련 강의가 많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 학생들의 부모로부터 항의성 민원이 들어오는 일도 숱하다. 경기 시흥 한 중학교에서 근무한 교사 D씨는 "학생들 학업 능력의 중간 수준에 맞춰 수업을 한다"며 "한국어를 잘 못 하는 아이들이 절대 다수이면 한국 학생들이 받는 수업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내 출신 국가별 무리도 생긴다. 한국어를 배울 기회는 더욱 줄어들고 같은 학교 학생들 사이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다고 학교 관계자들은 우려했다.
C씨는 "수업 시간을 제외하면 출신 국가가 같은 학생끼리만 대화하니 한국어가 늘 수 없는 상황"이라며 "수업을 알아듣지 못하니 아이들 입장에서도 학업 효능감이 전혀 없고 솔직히 교사들도 힘들다. 악순환이다"라고 말했다.
◆ 출신 국가 같은 학생들끼리 대화…학생도, 교사도 "힘들다"
전문가들은 우선 시급성을 고려해 다문화 학급 교사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주배경학생 교육을 위한 환경과 지원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교사들 사명감에 호소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교 수업 중 다문화 관련 교육이 있지만 필수는 아니다. 교육 현장의 형태가 지역마다 달라 다문화 교육만 필수로 지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이주배경학생이 많은 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연수를 확대해 교사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언어 교사를 증원해 담임에게 몰린 업무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B씨는 "다르지만 함께 살아야 한다는 식의 당위적인 메시지를 넘어 실제 다른 국가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해결할지 피부에 와닿는 다문화 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교실 안 이주배경학생이 증가하면서 한국 학생들이 소외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부 외에도 지방자치단체와 국토교통부 등 다양한 부처가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상식 동국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이주배경학생이 많은 학교의 동네는 다문화 출신 배경 부모들이 많이 모여들어 게토화되면서 문제가 불거진다"며 "교육 정책만 손 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조 교수는 "모든 문화가 병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다문화 교육의 진정한 목표"라며 "이주배경학생 수용 비율을 일정 비율 이상 되지 않게끔 정책적으로 관리하거나 지역이 게토화되지 않도록 흩어지게끔 여러 부처가 협력해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이주배경 학생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한국어학급은 지역별로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배경 학생과 학부모들을 상대하는 인력도 낮은 처우 때문에 수요만큼 확보를 못하고 구인난을 겪는 상황이다.
9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준혁 민주당 의원이 제출받은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운영되는 한국어학급은 총 552개다. 한국어학급은 한국어와 한국문화 집중교육을 위해 중도입국, 외국인 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특별학급을 말한다. 한국어학급은 2019년 326개에서 매년 증가세를 보였지만 지역별로 편차가 컸다.
한국어학급은 올해 기준으로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 경기와 인천이 100곳 이상 설치돼 있지만 △제주(2개) △세종(2개) △전북(6개) △전남(9개) △울산(9개) 등은 10개 미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제주의 경우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간 한국어학급이 운영되지 않다가 올해 2개가 개설됐다.
제주, 전북, 전남, 울산은 이주배경학생이 빠르게 늘어나는 곳이다. 교육통계서비스(KESS)에 따르면 올해 제주 지역 초·중·고 이주배경학생 수는 3332명으로 전년 대비(3128명) 6.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북은 9010명으로 전년 대비 3.9%, 전남은 1만1117명으로 5.4%, 울산은 4009명으로 4.4% 각각 늘어났다.
이주배경학생들이 외부 기관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출석을 인정 받는 '한국어 예비과정' 역시 미비한 수준이다. 한국어 예비과정은 각 시도 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이 3~12개월 단위로 운영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기준 전국 한국어 예비과정은 29개가 운영된다. △경기 12개 △부산 5개 △충북 5개 △전남 3개 △인천·광주·경북·경남 각각 1개다. 서울·대구·대전·울산 등 9개 지역은 한 곳도 설치돼 있지 않다.
◆ 한국어 돕는 '다문화언어강사'… 울산은 올해 1명 뽑았다
이주배경학생의 한국어와 이중언어를 지도하고 학부모 상담을 돕는 '다문화언어강사'도 지역별 편차가 컸다. 서울의 경우 다문화언어강사는 하루 8시간 일하는 전일제 근무자로 1년 계약직이다. 유치원 또는 초·중·고교가 신청을 하면 교육청이 선발하고 학교에 배치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선발된 다문화언어강사는 1195명이다. △경기 지역이 318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북 98명 △서울 89명 △광주 79명 순이었다. 반면 △울산은 1명 △강원 17명 △대전 20명 △세종 24명으로 선발 인원이 학생 수 대비 적었다. 울산의 경우 산술적으로 다문화언어강사 한명이 이주배경학생 4009명 모두를 가르쳐야 하는 구조다.
일부 시·도교육청은 다문화언어강사 외에도 이중언어교실, 다문화보조인력을 두고 있다. 이들은 주당 15시간 미만 초단기 근로자다. 지역 교육청이 인건비를 지원하면 학교에서 자체 채용하는 구조다.
이중언어교실 강사는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에 이중 언어 사용이 능통해야 하고 교원 자격증 소지자가 우대된다. 하지만 저임금에 선발 기준도 까다로워 구인난을 겪는다.
경기도 안산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김모씨는 "선발 기준이 높아서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파키스탄, 몽골, 방글라데시 같은 소수 언어는 보조 인력을 구하기 더 힘들어서 한꺼번에 교실에서 수업 받는다. 그 책임은 일반 교사의 몫"이라고 했다.
다문화언어강사를 언어별로 보면 중국어가 256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러시아어 197명 △베트남은 193명이었다. 아랍어는 5명, 몽골어는 36명에 그친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주배경학생을 위한 강사를 뽑을 수 있도록 특별교부금을 지원하고 있다"며 "학교도, 시·도 교육청도 투자를 늘리고 대응 방법을 고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유효송 기자 valid.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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