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더 머니이스트-이윤학의 일의 기술]

2024. 10. 1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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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여덟 번째 이야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프로(Professional)와 아마추어(Amateur)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여러 차이가 있겠지만 프로는 '그 일로 먹고 사는 사람'이고 아마추어는 '즐거움을 위해 그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같은 일이라도 프로에겐 생업(生業)이고 아마추어에겐 취미이지요. 그래서 회사에 다니는 순간 누구나 프로가 됩니다. 숙련도에 따른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프로입니다.

아마추어가 프로처럼 하면 칭찬받지만, 프로가 아마추어처럼 하면 비난을 면치 못합니다. 심지어 방출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내에서 '가족처럼 지낸다'는 것이 자칫 온정주의로 흐르면 안 됩니다. 그건 프로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동료를 대하라는 것이지, 규정을 위반하거나 그것을 눈감아주거나, 궁극적으로 회사의 성장을 막는 것은 프로의 자세가 아닙니다.

 가족 같은 분위기 중시하는 회사, 자기 검열 강해

관계 지향적인 조직일수록 '자기 검열'(Self-Censorship)을 많이 하게 됩니다. 타인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할 목적으로 스스로 표현과 행동을 검열하는 것입니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중시하는 회사일수록 관계 지향적이고, 자기 검열이 강합니다. 이러한 조직은 조직원들 사이 '끼리의식'이 강할지 몰라도, 서서히 침몰합니다.

제가 아는 한 자산운용사의 주식 매니저 이야기입니다. 그는 6년 차 주식 매니저였는데, 2년 전 다른 자산운용사로 이직했습니다. 새로운 자산운용사로 이직을 추천한 사람은 그 회사의 마케팅 본부 상품담당 팀장이었습니다. 상품팀장은 주식 매니저의 대학 선배였는데, 뭐든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직 후 주식 매니저는 상품팀장과 더욱 가까워져, 서로의 배우자가 언니, 동생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가 됐죠.

문제는 그즈음 생겼습니다. 주식 매니저는 이제 주니어의 티를 벗고 본인이 주도적으로 디자인한 새로운 주식형 펀드를 론칭하고 싶었습니다. 본격적인 주식 매니저로 성장하기 위해서죠. 게다가 그 회사는 최근 몇 년간 새롭게 출시한 주식형 펀드가 없었기에 회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신상품을 출시하기 위해 관련 부서와 협의를 할 무렵 친형 같던 상품팀장이 넌지시 말합니다. "넌 인생을 왜 그렇게 어렵게 살려고 해. 좀 쉽게 살아. 네가 만들려는 그 펀드, 없어도 그동안 우리 회사 잘 해왔어. 그거 안 만들어도 너 잘리지 않아." 신상품 출시 업무를 담당하는 상품팀장에게 받은 메시지는 일 벌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주식 매니저는 고민에 빠졌지요. 결국 선배의 뜻에 따라 신상품 출시를 포기하게 됩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관계 지향적인 조직에선 '내가 이걸 하면 저 사람은 뭐라고 생각할까?', '내가 이 상품을 만들자고 하면 저 팀에서 힘들다고 하지 않을까?'라는 식의 자기 검열이 일상화됩니다. 자기 검열이 몸에 밴 조직에서는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나게 마련이지요. 그건 현상 유지, 새로운 변화 없음을 뜻합니다. 물론 모든 업무엔 협업의 당사자가 있고, 서로의 고충을 충분히 숙지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고충이 회사의 성장과 무관하게 개인의 이익에 영향을 받게 된다면 문제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금융회사가 추구해야 할 이익엔 3가지가 있습니다. 고객의 이익, 회사의 이익, 개인의 이익입니다. 그리고 '고객>회사>개인'이라는 엄연한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만약 이 순서가 뒤바뀐다면 우린 그걸 두고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라고 합니다. 고객 이익보다 회사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금융회사는 '선관주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법률상 처벌을 받습니다. 사회적 지탄도 당연히 따르지요. 마찬가지로 회사의 이익보다 직원 개인의 이익을 우선으로 해도 법규상 제재와 징계를 받습니다.

자기 검열이 팽배한 조직에선 회사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의 순서가 바뀌기 쉽습니다. 앞서 말한 주식 매니저의 사례는 회사에 직접적 손해를 끼치진 않았지만, 잠재적으로 회사가 얻을 수도 있는 이익의 기회를 사전에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직원 개인이 금전적 이익을 보지 않았지만, 개인의 편의를 위해 업무를 진행하지 않았으므로 근로계약상 신의 성실 원칙에 따른 '성실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일들이 회사 전체에 퍼지기 시작하면 조직은 서서히 침몰한다는 겁니다. 배는 침몰하는데, 침몰하는 갑판 위에서 선원들 끼리 파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요. 이렇게 서서히 침몰하는 조직에선 개인의 발전이나 성장 또한 있을 리가 없습니다.

 회사에선 가족아닌 프로가 돼야

가족이나 친구 등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자기 검열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의가 있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으로 사랑받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서의 자기 검열은 조직의 성장뿐 아니라 개인의 성장을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회사는 가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회사는 가족이 아니라 '어벤져스(Avengers)'처럼 돼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가 그 어벤져스의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각자가 최고의 기량으로 원팀(One Team)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프로입니다. 좋은 게 좋다고 형, 동생하면서 의리로 뭉치면 농경시대 기준의 가족이자 식구가 될 뿐입니다. 일에서만큼은 영화 어벤져스의 타노스가 말한 것처럼 '나는 필연적 존재다(I’m inevitable)'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회사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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