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금성·수성에 새긴 한국인 이름…플라톤·뉴턴·베토벤·괴테와 동격[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얼마전 생소한 역사 인물이 ‘갑툭튀’ 했다.
19세기 문인·관료이자 천문·수학자인 ‘남병철(1817~1863)’이다.
‘달 뒷면’의 ‘이름 없는 충돌구(크레이터)’에 ‘남병철 충돌구(Nam Byeong-Cheol Crater)’라는 명칭이 붙었다는 소식이었다.
이름을 얻은 과정이 흥미롭다. 현재 진호 교수가 이끄는 경희대 다누리 자기장 탑재체 연구팀이 미국 산타크루즈대(이안 게릭베셀 교수팀)와 공동으로 한국 최초의 달 탐사선인 다누리(2022년 8월 발사)를 통해 달에 존재하는 ‘이상 자기장’ 연구를 벌이고 있다.
자기장은 자기력이 미치는 공간을 뜻한다. 지구 내부에는 자기장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핵이 존재한다. 덕분에 사람들은 세계 어디에서나 나침반으로 방향을 알 수 있다. 사람으로 치면 지구의 핵은 심장이고, 자기장은 혈류라 할 수 있다. 반면 달에는 핵이 뿜어내는 자기장이 없다. 핵이 소멸했거나 활동을 멈춘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곳곳에서 일부 강하게 관측되는 ‘이상 자기장’만이 측정된다.
■세종 말고 남병철
경희대·산타크루즈대 연구팀은 2021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달의 뒷면에 존재하는 이름없는 충돌구(Unnamed crater)’에 주목해왔다. 이 충돌구(지름 132㎞)는 내부 자기장의 세기가 주변(외부)보다 강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데 공동 연구자인 이안 교수가 “이 충돌구에 한국인 과학·천문학자 이름을 부여해봄이 어떠냐”고 경희대팀에 제안했다. 진호 교수는 양홍진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장에게 ‘좋은 이름 좀 추천해달라’고 청했다. 이에 양홍진 센터장이 우선 떠올린 인물은 각종 천문기기 발명을 이끌고 조선 천문학을 세계 으뜸으로 키운 세종대왕이었다.
그러나 ‘달의 뒷면’인게 왠지 걸렸다. 인류가 관측할 수 있는 ‘달의 앞면’이라면 몰라도 뒷면에 ‘세종대왕’ 이름을 붙이기는 좀 그랬다.
‘달의 뒷면’이라면, 오히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가 적당해보였다. 그렇다고 국제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올릴 수 없었다. 그래서 떠올린 이가 ‘남병철’이었다.
남병철은 예조판서·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었지만 천문학자·수학자로도 큰 성과를 남긴 인물이다.
2006년 국제공인학술지(<한국우주과학지>)에 남병철이 제작한 ‘혼천의’를 연구한 논문이 실린 것도 결정적인 몫을 했다. 국제학계에 정식 소개된 천문학자·수학자라는 점이 부각됐다.
이렇게 추천된 ‘남병철 크레이터’ 명칭은 지난 8월14일 국제천문연맹의 승인을 받아 최종 공인되었다.
■수성에 나타난 정철·윤선도
그렇다면 태양계 행성 및 위성에 붙인 ‘한국’ 혹은 ‘한국인’ 관련 이름이 얼마나 될까.
찾아보니 더러 보였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수성’에서 정철(1536~1593)과 윤선도(1587~1671)의 충돌구(크레이터)가 눈에 띈다.
‘정철(Chong Chol) 충돌구’(지름 143㎞)는 1979년, ‘윤선도(Yun Son Do) 충돌구’(지름 76㎞)는 1976년에 각각 명명되었다. 왜 ‘수성(Mercury)의 충돌구에 조선시대 시인(정철·윤선도) 이름을 지었을까’. 궁금해서 검색했다가 깜짝 놀랐다.
‘안토니 가우디(1852~1926),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2),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 , 폴 세잔(1839~1906),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앤디 워홀(1928~1987), 안톤 체호프(1860~1904),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표트르 차이콥스키(1840~1893), 윌리엄 버츠 예이츠(1865~1939)….’
이름만 열거해도 화려한 문인·예술가들이 총 집합되어 있었다. 숱한 한국 작가·예술가 가운데 왜 정철·윤선도 두 인물이 선택되었는지는 필자가 알아내지 못했다. 다만 정철·윤선도 등의 수성 충돌구가 1976년과 79년 국제천문연맹의 승인을 받아 한꺼번에 명명되었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이들 수성의 충돌구에 세계적인 작가·화가·음악가들의 이름이 붙은 근거가 있다.
‘수성의 크레이터(충돌구)에는 뚜렷한 업적을 세운 아티스트, 음악가, 화가, 작가 등의 이름을 짓는다’는 국제천문연맹의 행·위성 명명 규정에 따른 것이다.
■금성엔 황진이·신사임당…
금성은 로마 신화의 여신(비너스) 이름을 딴 행성이기에 온갖 여신과 여성의 이름으로 도배했다. 금성 충돌구의 이름을 보자.
지름 20㎞를 기준으로 그 이상의 충돌구에는 각 분야에서 뛰어난 공적을 올린 여성, 그 이하엔 평범한 여성 이름을 각각 붙인다. 그 중 클레오파트라(이집트 여왕·기원전 69~30)와 크산티페(소크라테스 부인·기원전 5세기말), 모나리자(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델·1479~1551?),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 앤 설리반(헬렌 켈러의 스승·1866~1936), 마리아 몬테소리(교육자·1870~1952)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의 황진이(Hwangcini·미상)와 신 사임당(Samintang·1504~1551)도 들어있다.
1991년 미국 하와이대 마노아 캠퍼스 소속 학자인 V.S. 수리퀴에즈가 제안한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황진이 충돌구’(30.2㎞)와 ‘신사임당 충돌구’(25.9㎞)는 지름 20㎞가 넘는다. 연옥(1997·9.5㎞) 및 연숙(1997·8.5㎞) 충돌구는 지름 20㎞ 이하라 보통 한국 여성의 이름을 붙였다. 금성에는 충돌구 외에도 한국어로 ‘금성(Kumsong)’으로 표기된 ‘발리스(계곡)’가 있다.
이유가 있다. 금성의 계곡 가운데 길이 400㎞ 이상 되는 곳은 세계 다양한 언어의 ‘금성’ 단어를 붙인다. 그래서 금성에서 확인된 길이 700㎞ 길이의 협곡에 ‘비너스’의 한국 이름인 ‘금성’을 붙였다. 이밖에 금성의 각 부분에 ‘마고할미 테세라(판)’, ‘설문대 할망 프룩투스(물결)’, ‘세오녀 카스마(대협곡)’, ‘삼신 할미 코로나’ 등 한국 설화에 등장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화성에서는 지름 50㎞ 기준으로 충돌구의 이름 규칙이 나뉜다. 50㎞ 이상은 화성 연구, 혹은 화성 관련 작품을 쓰는데 공을 세운 과학자나 작가 등에게 이름을 부여한다. 50㎞ 이하는 주로 인구 약 10만명이나 그 이하의 도시나 마을 이름을 붙인다.
화성에는 ‘나주(Naju·지름 8.03㎞)’ 및 ‘진주(Chinju·지름 65.71㎞)’ 충돌구가 보인다. ‘Jori(31.3㎞) 충돌구’와 ‘Taejin 충돌구’(28.06㎞)도 보이는데, 정확히 한국의 어느 도시를 가리키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또 ‘낙동강(Nakdong) 발리스(계곡)’(길이 669.63km)’도 보인다.
■플라톤에서 뉴턴까지
이번에 ‘남병철 크레이터’가 명명된 달의 경우는 어떨까.
달에 존재하는 충돌구는 지름이 1㎞ 이상 되는 것만 100만개 정도에 달한다. 그중 현재까지 1659개에만 이름이 붙었다. 무심코 ‘달의 충돌구(크레이터)’ 이름을 검색했다가 또 놀랐다.
이번에는 역사를 빛낸 물리학자·천문학자·수학자·발명가는 물론 철학자·시인까지 모조리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국제천문연맹이 정한 ‘달 충돌구’ 명명 원칙 덕분이다.
즉 ‘과학자, 엔지니어, 탐험가는 물론이고 우주 천문 행성 분야에서 뚜렷한 공헌도가 있는 인물’ 등이 달 충돌구의 이름 자격을 얻게 된다. 무작위로 그 면면을 열거해보자.
찰스 다윈(1809~1882),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알리기에리 단테(1265~1321), 플라톤(기원전 428~347), 블레즈 파스칼(1623~1662), 그레고어 요한 멘델(1822~1884), 토마스 에디슨(1847-1931), 유클리드(기원전 300 무렵 활약),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7), 헤로도토스(기원전 484~408),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2~44), 에드워드 제너(1749~1823), 아이작 뉴턴(1643~1727), 루이 파스퇴르(1822~1895), 피타고라스(?~기원전 532), 바스쿠 다가마(1460~1524), 튀코 브라헤(1546~1601), 제임스 와트(1736~1819), 에밀 졸라(1840~1902), 로알 아문센(1872~1928), 아르키메데스(기원전 287?~212)….
이런 인물 화려한 인맥 속에 조선의 천문·수학자인 ‘남병철’이 한자리 차지하게 된 것이다.
■문·이과 통합형 인물
혹자는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대체 남병철이 누구이기에 그러한 동서고금의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건가. ‘오버’가 아닌가. 남병철의 삶을 요약한 부음기사(<철종실록> 1863년 7월13일자)를 보자.
“전 대제학 남병철이 (47살로) 죽었다…서적을 널리 섭렵하여 투철하게 깨우친 뒤에야 그쳤다. 한번 눈을 거친 것은 평생 동안 잊지 않았다. 천문 역법에도 널리 통달하여 우주의 미묘한 이치를 세밀히 분석해 냈다…”
남병철이 문과에 급제한 것은 21살 때였다. 이후 문관으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예조·공조·형조·이조판서를 두루 거쳤고, 문관의 꽃이라는 홍문관 대제학 겸 관상감 제조에 임명되었다.(1859) 천생 ‘문과생’일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문사철’의 소양은 기본이었고, 천문학·수학 등에도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남병철은 이미 150년 전 문·이과 통섭을 이룬 ‘천재’였던 것이다. 요즘 좁은 분야에서 학자니 뭐니 하면서 거들먹 거리는 자는 남병철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할 듯 싶다. 김상현(1811~1890)은 “통유(세상사와 모든 학문을 통달한 유학자)는 백에, 천에 하나도 없는데 남병철이 바로 그 통유”라고 극찬했다.
그가 천문역산학과 수학 연구에도 몰두한 이유가 있다.
“유가의 경전 해석에는 저마다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수는 (수식으로) 시비를 분명히 가릴 수 있으므로 천문 현상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그래서 산수를 공부했다.”(<규재유고>)
“하늘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중국이든 서양이든 따지지 않고 오직 정밀하게 측량·계산하는 것이 합당하다. 달과 별, 오성(수성·화성·목성·토성)이 어찌 인간 세상의 존화양이(尊華洋夷)를 알겠는가. 지금 서양 역법으로 하면 검증되는 것이 많고 중국 역법으로 하면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다.”(<규재유고>)
■지방에 따른 가늠쇠 조정
남병철의 천문·수학 공부는 1859년 홍문관 대제학 임명과 함께 겸직한 관상감 제조 시절 만개했다.
이때부터 천문·수학서인 <의기집설>(1859)과 <해경세초해>(1861), <추보속해>(1862) 등을 잇달아 편찬한다.
이중 혼천의 같은 대표 천문기기 10종의 구조와 제작법·사용법을 기록한 <의기집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혼천의’는 해와 달, 별 같은 여러 천체의 움직임과 위치를 측정하던 표준 천문 관측기기다.
그런데 기존 혼천의는 북극 고도(위도)를 관측지(서울 관상감)에 맞게 한번 설치하면 더는 변경할 수 없었다.
그러니 예컨대 위도가 다른 서울(37.5도)와 부산(35도)에서의 측정값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남병철 혼천의’는 이런 단점을 보완했다. 관측의 기준이 되는 위도를 그 지방에 맞출 수 있게 해서 그곳에 맞는 정확한 측정값을 얻을 수 있게 했다.
그 이전에는 왜 위도를 서울로 고정시켰을까. 본디 왕조 시대의 천문관측은 국왕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국왕이 거처하는 도읍지에 관측기기를 고정·설치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서양천문학이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지식인 사회에 도입되면서 천문 관측의 대중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남병철 혼천의’는 이런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한 ‘맞춤형 신상’이었다.
■휴대용 천문관측기구 개량
‘남병철 혼천의’에 또다른 특장이 있었다. 기존 혼천의는 회전축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별도의 천문기기를 만들어 별 따로, 태양계 움직임 따로 관측해야 했다. 이에 ‘남병철 혼천의’는 고리 하나를 더 만들었다. 그런 뒤 눈금이 달린 ‘천체 관측용 축’을 3종류의 구멍(적극공·황극공·천정공)에 선택해서 연결하면 원하는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 적극공에 넣으면 별, 황극공에 넣으면 태양계의 움직임을 각각 관측할 수 있다. 또 천정공에 넣으면 관측자가 서있는 지평선이 기준이 되는 천체를 볼 수 있다. 예전에는 각각의 기능별로 3개 제작되었던 혼천의를 하나로 합쳐놓은 셈이다.
남병철은 북극고도를 지역에 따라 조정할 수 있고, 별, 태양 등의 천체를 하나의 혼천의로 자유자재로 관측할 수 있는 획기적인 ‘개량 혼천의’를 개발한 것이다. 한국천문연구원과 국립과천과학관은 올해 2월 실물로는 남아있지 않은 남병철 혼천의를 <의기집설>의 내용을 토대로 복원·성공했다.
■수학으로 풀어낸 천문현상
전통 한문학 체계에서 공부한 남병철이지만 서양 천문학과 수학을 100% 자기것으로 소화했다.
그의 <의기집설>에는 천문 관측에 적용된 수학적 원리와 관측값을 이용한 계산법이 아주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중에는 ‘구면(球面) 삼각법’ 각과 변 사이의 관계를 삼각 함수로 나타내는 방법)을 이용해서 각종 천문 현상을 수학으로 표현하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다.
뛰어난 수학자의 면모는 각종 수학서 편찬에서 발현된다. <해경세초해>(1861)는 고차 방정식과 관련된 170가지의 예제를 만들어 푸는 과정을 해설했다.
<추보속해>(1862)는 청나라 천문·수학서를 참조하여 천체 움직임의 계산 방법을 설명한 천문역산서이다. 남병철은 이 책에서 1860년을 역원(曆元·역법을 정하는 원년)으로 삼고, 서울(한양)의 위도를 활용했다. 중국을 거쳐 도입된 서양천문학의 성과를 조선의 실정에 접목시킨 것이다.
이와 같은 남병철의 천문 산수학 수준은 매우 수준이 높았다. 즉 1861년(철종 12) 중국을 방문한 박규수(1807~1876)로부터 남병철의 천문·수학서를 전달받은 중국인 왕헌이 감탄사를 연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규재유고>)
■7365 세종(SEJONG)
그러니 수많은 ‘달 충돌구’ 명단에 조선의 천문학자·수학자인 ‘남병철’이라는 한자리 차지했다 해도 토를 달 수 없다. 오히려 만시지탄이다. 물론 이름을 붙였다고 ‘남병철 충돌구’가 한국 땅이 되는 것도 아닌데 무슨 대수냐는 항변도 나올 법하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전부터 천문학 강국이었다. 이후 오랜 기간 침체되었다가 다시 우주에 눈을 돌려 인공위성을 탑재한 발사체와 달 궤도선(다누리)까지 쏘아올렸다. 그런데 지금까지 명명된 1659개의 달 충돌구에 아무렴 한국인 이름이 없었다니….
소행성(태양 주위를 도는 천체 중 크기가 행성보다 훨씬 작은 천체)의 경우는 어떤가.
1996년 8월 일본의 아마추어 천문가인 와타나베 가즈오(渡邊和郞)가 화성~목성 사이에 존재하는 7000여개 중 지름 5~6㎞ 되는 소행성에 ‘7365 세종(Sejong)’의 이름이 붙었다. 후루가와 기이치로(古川 麒一郞) 도쿄 천문대 박사의 주선으로 1997년 국제천문연맹에 등록했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7000개 중 하나에 불과한 작디작은 소행성에, 그것도 일본인의 주선으로, 그것도 다른 분도 아닌 ‘세종’ 이름을 붙였다. 왠지 부끄럽다.
‘세종’을 포함해서 한국인, 혹은 외국인이 한국 이름을 붙인 것은 1998년 발견된 소행성 ‘23880 통일(Tongil·2001)’ 등 30개에 육박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름을 얻는 2만4254개의 소행성 중에 0.1% 정도에 불과하다.
또하나 이번에 ‘남병철’ 관련 자료를 보다보니 아직도 모르는 인물이 태반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역사에서 ‘남병철’ 같은 천재 천문학자·수학자가 존재했는지 금시초문이었다. 그만큼 천문학을 비롯한 과학분야에 무신경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려니….
이번 기회에 별 이름 짓는 디테일도 신경써야 할 것 같다. 남병철 같은 분들을 발굴하는 것도….(이 기사를 위해 양홍진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장, 남경욱 국립과천과학관 학예연구관, 박현후 경희대 연구원이 도움말과 자료를 보내주었습니다.)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참고자료>
최홍순·김상혁·민병희·남경욱·유경한·김용기, ‘19세기 남병철 <의기집설> 혼천의 용법 분석’, <천문학논총> 39권, 한국천문학회, 2024
노대환, ‘19세기 중반 남병철의 학문과 현실 인식’, <이화사학연구> 40권40호, 이화사학연구소, 2010
남경욱, ‘남병철 <의기집설>의 험시의 연구’, <한국과학사학회지> 33권3호, 한국과학사학회, 2011
김상혁·이용삼·남문현, ‘남병철의 혼천의 연구2:<의기집설>에 나오는 ’혼천의용법‘의 역해설’, <우주과학회지> 23권1호, 한국우주과학회, 2006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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