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4수 만에 ‘국채 선진국 클럽’ 편입... 어떤 효과?

강우량 기자 2024. 10. 10.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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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0조 움직이는 세계 최대 지수
외국 투자금 대거 국내로 들어와
환율 안정, 기업 자금 조달 도움
그래픽=양진경

한국 국채가 글로벌 금융시장 큰손들의 ‘쇼핑 리스트’에 공식적으로 포함됐다. 2조5000억달러(약 3360조원)의 자금을 움직이는 세계 최대 채권 지수인 ‘세계국채지수(WGBI)’에 한국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9일 글로벌 지수 제공 업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러셀은 내년 11월부터 한국을 WGBI에 편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22년 9월 편입 직전 단계인 ‘관찰대상국’에 지정된 지 2년 만이다. 한국은 WGBI에서 2%대 비율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 따라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해외 자금은 75조원 정도다. 정부는 한국 국채에 대한 해외 관심이 높아진 데 따른 효과까지 고려하면 최대 90조원에 달하는 외국 자금이 국채 시장에 들어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껏 WGBI에 편입된 국가는 25국으로, 미국·영국·일본 등 금융 선진국이거나 중국·멕시코·남아공처럼 각 지역을 대표하는 국가들이다. 이 때문에 WGBI에 포함되는 게 글로벌 대표 금융시장으로 평가받는 기준으로 통용된다.

앞으로 WGBI에 따라 자금을 배분하는 외국 자금이 대거 국내 채권시장으로 유입되면 달러를 원화로 바꾸려는 수요가 늘어 달러 대비 원화 환율도 하락(원화 강세)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우리 국채가 명실상부한 선진국 수준으로 인정받은 것”라며 “우리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추고, 외환시장도 안정화하는 효과 역시 기대된다”고 했다.

WGBI는 세계 최대 채권 지수다. 블룸버그·바클레이스의 글로벌 종합지수(BBGA), JP모건의 신흥국 국채지수(GBI-EM)와 함께 세계 3대 채권 지수로 불리지만, 단연 최고로 친다. WGBI에 편입됐다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해외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정부가 기대하는 이유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편입은 우리 국채 시장이 명실상부하게 ‘제값 받기’에 성공하였음을 의미한다”며 “세계 10위권인 우리 경제 체급에 맞게 채권시장에 대한 평가가 조정됐다”고 말했다.

WGBI에서 한국 국채가 차지하는 비율은 2.22%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과 일본,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 스페인에 이어 아홉째로 큰 규모다.

◇외환시장 연장, 외국인 규제 완화 등 주효해

이번에 WGBI 편입 결정은 ‘깜짝’ 발표라는 말이 나온다.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이번에 한국의 지수 편입은 어려울 것으로 관측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2022년 9월 보고서에서 편입을 앞둔 국가인 ‘관찰대상국’에 포함된 이후 줄곧 편입을 시도해왔지만 올해 3월까지 3차례에 걸쳐 고배를 마셨다. 국채 발행 규모(500억달러 이상)나 신용등급(S%P 기준 A- 이상) 기준은 충족했지만, 외국인에 대한 규제가 많다는 점이 번번이 걸림돌이 됐다.

하지만 그간 정부는 WGBI 편입을 위해 외국인 투자 규제를 푸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 1월에 외국인이 국채에 투자할 경우에는 과세하지 않기로 했고, 같은 해 12월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를 폐지했다. 특히 지난 6월부터는 외국인이 별도의 국내 계좌를 만들지 않고도 국채를 사들일 수 있도록 국제예탁결제기구(ICSD)인 유로클리어·클리어스트림의 국채통합계좌를 개설했다. 7월에는 외환시장 개장 시간을 오후 3시 30분까지 운영하던 것에서 새벽 2시로 연장했다. 이 때문에 ‘깜짝’ 편입 발표가 아니라 당연한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외국인 자금 국내 유입 효과…”금리 떨어지고 환율도 안정”

외국인은 2600조원 가까운 국내 상장 채권시장의 10%인 259조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기준 외국인의 한국 국채 보유액은 238조원 수준이다. 외국인은 국내 채권을 대부분 국채로 갖고 있다는 뜻이다. WGBI 편입으로 최대 90조원의 해외 자금이 국채시장에 유입되면, 외국인의 한국 국채 보유액이 38%나 늘어나게 된다. 지난 2021년 10월 WGBI에 편입된 중국에선 편입 직후 3개월 동안 약 2000억위안(38조원)의 신규 해외 자금이 국채시장에 유입된 바 있다.

그래픽=양진경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내 투자자들이 여타 투자처를 찾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금융시장으로 옮겨가는 시점에서 편입 결정이 맞물리며 우리 채권시장의 매력이 올라갔다”고 했다.

해외 자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국채 수요가 늘어나면, 시장 금리가 낮아지면서 기업의 회사채 금리부터, 주택담보대출 금리까지 광범위한 금리가 떨어질 수 있다. 지난해 12월 금융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WGBI 편입으로 500억~600억달러의 외국인 자금이 들어오면 국채 금리가 0.2~0.6%포인트 낮아지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1~2차례 내리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연간 최대 1조1000억원의 이자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국채 금리를 기준으로 가산금리를 붙이는 회사채나 은행채 금리가 덩달아 낮아지는 효과도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우리 정부와 기업들의 자금 조달 부담이 줄어들면서, 투자와 분배가 활성화돼 실물경제도 살아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국채 수요가 늘어나면 원화의 가치도 높아져, 달러 대비 환율도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세계국채지수 편입 이후 1년간 600억달러(80조원)가 유입될 경우 환율이 약 4.8%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가 ‘밸류업(기업 가치 개선)’에 힘쓰고 있는 주식시장은 이번 지수 편입으로 간접적인 영향 정도만 받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채권 금리가 낮아지며 수익률이 떨어지면 일부 모험 성향의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으로 옮겨갈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세계국채지수(WGBI)

글로벌 지수 제공 업체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이 발표하는 세계 최대 채권 지수. 이 지수에 맞춰 투자를 결정하는 자금만 2조5000억달러에 달한다. 올해 기준으로 미국과 일본, 영국 등 25국의 국채가 세계 국채 지수에 편입돼 있고, 내년 11월부터 한국 국채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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