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韓·李 대리전’ 된 부산 금정 가보니…“보수 텃밭인데 박빙”
한동훈 국민의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나란히 부산 금정을 찾았다. 오는 16일 금정구청장 보궐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여야 지도부가 동시 출격하면서 현장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한 대표는 일할 준비가 된 후보를 뽑아달라는 ‘지역 일꾼론’을, 이 대표는 윤석열 정부 실정을 규탄해달라는 ‘정권 심판론’을 각각 내세우며 자당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현장에서 만난 일부 주민들은 “이번 선거는 박빙”이라며 바닥 민심을 전했다.
◇ 이재명 “보궐선거로 윤 정권 2차 심판” vs 한동훈 “18년 준비된 일꾼 택해달라”
양당 대표의 지원 유세 현장은 대통령 선거 유세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이 대표는 오전부터 부산 금정구 중앙대로에서 김경지 후보 지원 유세에 돌입했다. 김 후보와 함께 유세 차량 위에 올라 ‘정권 심판론’을 재차 강조했다. 이 대표는 “국민들이 총선에서 이미 강력히 심판했는데도 이 정권은 생각을 바꾸기는커녕 더 심해지고 있다”며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는 윤석열 정권에 대한 2차 심판의 핵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후보에 대해선 “살림을 알뜰하게 잘 하는 우리 누이 같은 느낌을 준다”라며 “똑같은 사람을 자꾸 쓰면 주인한테 충실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이번에 바꿔서 한번 써보고 김경지 구청장이 잘하면 다시 뽑고, 못하면 다른 선택을 하면 되지 않나”라고 했다.
이 대표가 지원 유세를 하러 온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파란색 옷을 입은 지지자들 300여명 정도가 몰려 대형마트 앞 광장을 채웠다. 스마트폰에 거치대를 끼워 현장을 생중계하는 스트리머들도 20여명 정도가 이 대표의 연설을 실시간으로 온라인으로 내보냈다.
이 대표는 오후에는 금정구에 위치한 장전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장전역에서부터 부산대역까지 30여분간 걸으며 지지자, 주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 대표 주변으로 300여명 정도의 지지자들이 몰렸다. 지지자와 주민들은 “이재명 화이팅”, “이재명 대통령” 등의 구호를 연호했다. 이 대표는 주민들과 셀카를 찍으며 인사를 나눴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지원 유세가 예정된 부산대 앞 광장은 이날 오후 4시쯤부터 800여 명 인파로 꽉 들어찼다. 현장에서 만난 유권자는 “아까 이 대표 유세는 깜빡하고 놓쳤는데 한 대표 유세라도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빨간색 점퍼에 노타이 차림의 한 대표가 유세 현장에 도착하자 지지자들은 일제히 “한동훈”을 연호했고, 일부 지지자들은 꽃다발을 전달하기도 했다. 유세 차량에 올라탄 한 대표는 가장 먼저 윤일현 부산금정구청장 후보의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주민들의 호응에 화답했다.
마이크를 잡은 한 대표는 ‘준비된 지역일꾼론’을 내세웠다. 그는 “윤 후보는 18년 동안 금정을 위한 계획을 준비해왔다. 18년 동안 준비해온 후보와, 어디서 뚝 떨어져서 뭘 할지도 모르고 나온 후보 중 누굴 선택하겠나”라며 “기호 1번(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유세장이나 팸플릿을 한번 보시라. 뭐가 나와 있나. 여의도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뿐이다. 금정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총선 때 ‘나라를 구해 달라’고 소리치며 다녔는데, 반응해준 분들이 바로 이 부산이다. (그런데) 이 대표가 부산에 와서 금정을 뺏어가겠다고 한다. 그냥 보고만 계실 건가”라며 “윤 후보를 통해 보답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특히 야당의 ‘정권 심판론’을 의식한 듯 “중앙에 정치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계시는데 제가 보완하겠다”며 “저는 흔들리지 않는다. 대한민국만, 부산만, 금정을 보고 가겠다”고 했다. 한 대표가 연설하는 동안 모여있는 주민과 지지자들은 “말 잘한다” “잘 생겼다” “맞습니다”라며 호응하고 “한동훈”을 연호했다.
한 대표는 지원 유세에 앞서 오전에는 윤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현장최고위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윤 후보의 1호 공약인 ‘금정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계획에 대해 “국민의힘과 정부, 부산시가 뒷받침하겠다”고 힘을 실었다. 최고위가 끝난 뒤에는 자신을 보기 위해 온 40여 명의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여러 차례의 셀카 요청에도 응했다.
◇ ‘금정 대첩’된 재보궐 선거...”보수 텃밭이지만 격차 좁혀져”
부산 금정은 이번 재보선 지역 4곳(인천 강화군수, 부산 금정구청장, 전남 영광·곡성군수) 중 가장 주목되는 곳이다. 이 대표와 한 대표 모두 금정구청장 보궐선거 지원을 위해 이날까지 각각 부산을 네 차례 방문하며 당력을 집중했다.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가 총선을 6개월 앞두고 과열 양상을 보였다면 이번에는 두 당 대표가 처한 정치적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대표는 당정 갈등 속에 위태로워진 당 안팎에서의 입지를 굳히고, 이 대표도 다음 달 공직선거법 위증교사 1심 재판을 앞두고 ‘선거에서 이기는 리더십’을 재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이날 유세 현장을 함께한 장동혁 수석최고위원도 “이번 보궐선거 전체 승리의 평가는 금정구청장 선거에서 판가름 날 것”이라며 “이번 보선을 이겨야 다음 지선을 이길 수 있고,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지나가는 보선이 아니다. 그만큼 중요한 선거”라고 호소했다. 여권 관계자는 “10·16 재보궐 선거는 금정 대첩”이라고 말했다.
부산 금정구는 1995년 민선 이후 9번의 구청장 선거에서 보수정당 계열 후보가 8차례 승기를 꽂은 지역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도 부산 18개 지역구 중 17곳을 국민의힘이 싹쓸이했다. 하지만 의료공백 장기화와 여권 내 당정 갈등, 김건희 여사 의혹 악재가 쏟아지며 당 지지율이 하락세에서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틈을 노려 최근 민주당은 조국혁신당과의 야권 단일화로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금정구청장을 깜짝 배출했고, 22대 총선에서도 박인영 민주당 후보가 40%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던 만큼 야권 내에선 ‘해볼 만하다’는 기류로 바뀌었다.
현장에서 만난 지역 민심도 “박빙”이라는 반응이다. 윤 후보 사무실에서 만난 금정구민 박모 씨(61)는 “원래 여기는 보수 안방인데 박빙으로 가고 있다. 한동훈 같은 사람들이 뭐하러 내려오겠나. 다급하니까 그러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하고 김 여사가 문제 같다. 위에서 허탕 치면 밑에 있는 사람들은 백날 해봐야 죽는다”고 했다. 이어 “한 달 전쯤에는 (지지율) 격차가 컸는데 굉장히 좁혀진 느낌”이라고 했다.
또 다른 금정구민인 50대 백모 씨도 “여기는 보수 텃밭이지만 예전처럼 ‘당연히 보수가 이기지’하고 얘기하는 분은 많지 않다”며 선거 판세에 대해 “박빙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 후보도 스펙(경력)이 나쁘지 않지만 위에서 내려와 꽂히는 걸 부산 사람들은 안 좋아한다. 국민의힘 후보가 금정에서 살았고 지역에서 오래 일했다고 해서 지금은 다시 (보수 쪽으로) 올라가는 분위기인 것 같다”라고 했다.
부산 금정구는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실제 투표장을 가는 연령별 유권자 비율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 대한 연령별 반응은 다양했다.
장전역에서 만난 금정구민 50대 이모 씨는 “저희 딸도 선거권이 있는 고3인데 (윤 대통령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 가장 중립적인 게 학생들인데도 싫다고 할 정도면 말 다 한 것 아닌가”라며 “(총선 때와 비교해) 지금은 (정부에) 많이 돌아섰다. 저희 같은 40~50대들은 한참 애들 키우고 살아야 해서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인이 민주당 지지자라고 한 이모(59) 씨는 “원래는 보수꼴통이었는데 주변에 민주당 지지자가 최근 많아졌다”며 “금정구 구서동에서 20년 넘게 살았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다르다”고 했다. 이어 “다른 것보다 윤석열(대통령)이 너무 못하지 않느냐”고 했다.
반면 금정구에서 20여년 거주한 김모(80)씨는 민주당 선거원들이 인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선거 운동을 저렇게 열심히 하지만 이번에도 결국 국민의힘이 안 되겠나”라며 “원래 여기 주민들은 2번(국민의힘)을 찍는다”고 했다.
정치권을 향한 쓴소리도 나왔다. 금정구에서 50년 가까이 살았다는 황모(79) 씨는 “여긴 원래 국민의힘 텃밭이긴 하지만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 다 똑같다. 서민들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이라고 했다.
부산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40대 이모 씨는 “부산 경기가 워낙 안 좋아서 옛날처럼 정치 얘기를 많이 안 한다”며 “10년 전부터 부산 경기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계속 바뀐 게 없지 않느냐”고 했다. 이어 “지난 총선 때도 민주당 의원들이 당선되지 못한 이유가 4년 동안 부산이 바뀐 게 없어서였다”며 “보수에 대해서도 인식이 좋지는 않다. 정치인을 찍어도 바뀌는 게 없으니 사람들이 아예 신경을 꺼버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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