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윤석열·한동훈의 기싸움을 왜 봐야 하나

안홍욱 기자 2024. 10. 9.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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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폭탄주’와 ‘콜라’만큼 기질이나 스타일이 한참 다르다. 그래도 두 사람은 2003년 SK 분식회계 사건에서 만나 형님, 동생 하며 20년을 지냈다. 고락을 함께한 둘의 브로맨스가 얼마나 깊었던지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한 대표를 “수사를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법무장관으로 정권 2인자, 소통령으로 불렸다. 지금 보면 두 사람은 서로가 존경·존중하는 마음으로 끈끈한 관계를 이어온 게 아니라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 틀에서 이해가 맞았던 것 같다.

신의가 배신이 되는 건 순간이다. 이해관계가 틀어진 두 사람은 등을 돌렸다. 한 대표가 지난 1월 비상대책위원장 때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에 ‘국민 눈높이’를 꺼낸 게 발단이었다. ‘윤·한 1차 갈등’이다. 대통령의 사퇴 요구를 거부한 한 대표의 승리도, 한 대표의 폴더 인사를 받은 윤 대통령의 승리도 아니었다. 둘의 관계는 지금까지 돌이켜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임기 절반도 안 된 자신의 권력에 생채기를 내려는 한 대표의 ‘자기 정치’를 용납하지 않는다. 한 대표를 키워주기는커녕 품을 생각조차 없다. 거듭된 독대 요청도 응하지 않으니, 말을 섞고 싶지도 않은 듯하다. ‘악의적 무시’다.

한 대표는 어정쩡하다. 윤 대통령에 대한 언행은 모호하고 행보는 갈지자였다. 윤 대통령에게 굴복하자니 전대에서 압승한 차기 미래권력으로서 모양새가 말이 아니고, 대들자니 세력이 부족했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라고 했던 한 대표는 정치력도, 결기도 보여주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냈다.

지금 두 사람 모두 위기다. 윤 대통령은 민심 이반에 국정 리더십을 상실한 지 오래다. 한 대표는 대통령의 높은 벽을 실감했을 뿐 성과라고 내놓을 만한 게 없다. 국정 지지율,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모두 떨어졌다. 김 여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디까지 추락할지 알 수 없다. 김 여사 의혹은 이미 나열하기도 숨이 찰 지경인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의혹이 추가되고 있다. 김 여사 문제는 이미 윤 대통령의 문제가 됐다. 윤 대통령 부부가 함께 공천 문제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녹취 파일도 있다. 국민적 분노는 임계치에 달하고 있다.

조여오는 여론 압박에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 SOS를 칠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윤 대통령조차 김 여사는 ‘통제 불가’라는데, 윤 대통령이 이 상황을 위기라고 느끼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대통령 거부권에 말 잘 듣는 친윤들이 있고,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를 무혐의 처분하는 검찰도 있다.

윤 대통령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건희 특검법’이 지난 4일 국회 재표결에서 부결됐지만, 여당에서 최소 4표 이상의 이탈표가 나왔다. 야당은 조만간 재발의하겠다는데, 이젠 여당 의원들도 다시 표결에 부쳐지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한 대표가 지난 6일 친한계 의원 20명과 만찬했다. 동남아 순방을 떠나는 윤 대통령을 환송하지 않고, 마련한 자리였다. 대통령 거부권을 무력화할 8표는 너끈히 만들 수 있다는, 세 과시인 셈이다. 대통령과 친윤의 공격에 대비한 ‘보험’이자, 대통령을 압박할 카드로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한 대표는 그 다음날 원외 당협위원장 90여명을 만나선, “나라와 당이 사는 방안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김 여사 문제는 사과로 해결할 단계를 넘었다. 여당에서도 그렇게 보는 의원들이 늘고 있다. 친한계 일각에서 ‘심우정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과 관련해 김 여사를 기소해 재판에 넘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대통령을 지킬 수 있도록 특검법만은 막아보겠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이걸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오히려 국민 분노에 기름을 부을 것이다.

결국 김건희 특검법을 두고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마주할 시간이 올 것이다. 내전은 외부와의 전쟁보다 더 살벌한 법이다. 누가 이길지 알 수 없고, 여권 전체가 공멸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라와 당이 살기 위한’ 불가피한 일이다. 한 대표는 대충돌을 감당할 수 있나.

김 여사 문제는 대통령과 여당만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무슨 이유로 윤·한의 기싸움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나. 정권이 염치가 있다면, 김 여사 문제를 빨리 매듭짓고 국민의 건강과 민생을 챙겨야 한다.

안홍욱 논설위원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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