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억새와 ‘깨끗한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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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출신 작곡가 손목인(1913~1999)은 1930년대 '천재'로 불렸다.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기댄 억새를 넋 놓고 바라보다, 그리운 얼굴 생각나 '깨끗한 눈물' 한 방울 뚝 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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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출신 작곡가 손목인(1913~1999)은 1930년대 ‘천재’로 불렸다. ‘타향살이’ ‘목포의 눈물’ ‘짝사랑’은 지금까지 사랑받는 명곡이다. ‘타향살이’와 ‘짝사랑’ 작사가는 27세로 요절한 김능인(1910~1937)이다. “지나간 세월 짝사랑하던 여인과 어쩔 수 없이 이별한 남자의 심상을 표현한 시”(권상인 부산문화유산연구회 이사장)가 바로 ‘아-아 으악새 슬피우니’로 시작하는 노래 ‘짝사랑’이다.
으악새가 무엇인지는 지금도 논쟁거리다. 혹자는 억새라고 한다. 작사가는 본래 억-새라고 기록했는데 경상도 출신 가수 고복수가 억새라는 발음이 안 돼 으악새로 불렀다는 설이다. 억새의 옛말에 ‘어웍새’가 있는 것을 보면 인연이 깊은 것은 분명하다. 으악새가 왜가리라는 반론도 있다. 왜가리 방언인 ‘왁새’를 길게 발음했다는 것이다. 평안도에선 철새인 왜가리를 ‘으악새’라 부른다고 한다. 2절에서 ‘뜸북새’도 슬피 운다 하니 제법 그럴싸하다.
으악새가 떠난 님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라면 정일근 시인의 ‘가을 억새’는 이별 노래다.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이 벌써 코 앞이다. 짧아진 볕과 찬 바람은 억새를 키웠다. 누군가 “저녁 노을에 잠긴 억새는 서러울 만큼 아름답다” 했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억새는 달빛보다 희고, 이름이 주는 느낌보다 수척하고, 하얀 망아지의 혼 같다”는 최승호 시인의 문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부산·경남의 대표 가을축제인 ‘합천 황매산 억새 축제’가 지난 5일 개막해 오는 13일까지 열린다. 해발 1113m의 바람에 파도치는 은빛 억새를 배경으로 다양한 문화공연까지 즐길 수 있다. 방탄소년단(BTS)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별빛언덕은 벌써 인산인해다. 영남알프스의 밀양 사자평 억새는 빛깔이 곱기로 유명하다. 천성산 화엄벌뿐만 아니라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 고헌산 가지산 재약산 운문산에도 억새가 지천이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기댄 억새를 넋 놓고 바라보다, 그리운 얼굴 생각나 ‘깨끗한 눈물’ 한 방울 뚝 떨어질 수 있다. 가을인데 어떠랴. 불 타 버리거나(창녕 화왕산) 칡덩굴에 점령(부산 승학산)돼 사라질 뻔했던 억새 복원에 들어간 땀과 정성을 기억하는 산행이면 더 좋겠다.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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