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윤극영 ‘반달’ 100년
백기완 선생(1933~2021)이 2010년 어느 날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규탄하는 서울시청 대한문 앞 집회에서 피끓는 목소리로 발언한 뒤 노래를 한 곡 불렀다. 동요 ‘반달’이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으로 시작한 노래를 사람들이 따라 불렀다. 하지만 노래의 2절까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백 선생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라고 노래를 맺은 뒤의 여운을 잊을 수 없다.
‘반달’은 동요작가 윤극영 선생(1903~1988)이 1926년 내놓은 동요집 <반달>에 수록된 표제곡이다. 윤 선생은 이 동요집에서 ‘반달’을 1924년 10월12일 완성했다고 밝혔다. 곧 ‘반달’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된다. 지난 세기 동안 이 땅에서 이 동요만큼 많이 불린 노래가 있을까. 어린이들이 고무줄놀이, 세세세 놀이를 할 때 단골 노래였다.
이 노래가 탄생했을 당시는 일제가 학교에서 우리말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던 때였다. 하지만 일제도 이 노래가 퍼져나가는 걸 막지는 못했다. 일본, 중국에서도 마치 자신들 노래인 양 착각하고 부른 걸 보면 민중은 국경을 넘어 정서적 공감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윤 선생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을 피해 귀국한 뒤 본격적인 동요 창작을 했다. 유학 시절 소파 방정환을 만난 인연으로 색동회 창립회원이 되어 우리말 동요의 가치에 대한 신념을 다졌다. 윤 선생의 생전 경향신문, KBS 등 인터뷰를 보면 ‘반달’ 창작의 직접적 동기는 큰누나의 죽음이었다. 아침에 뜬 흰 반달을 보고 곧 사라져버릴 그 달이 죽은 누나 같기도 했고 나라 잃은 조선 민족 같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의 처음은 어쩐지 애잔하다. 하지만 그가 가장 고심했다는 2절 끝부분에 가면 사뭇 달라진다. 고요하게 시작한 1절과 달리 2절에는 악센트를 넣어 우렁차게 부르도록 했다. “서쪽만 볼 것이 아니라 동쪽에 뜬 샛별도 보자, 돛대도 삿대도 없이 가던 민족의 설움을 딛고 길을 찾아가자는 뜻을 담으려 했죠.”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희망을 찾지 못하는 시절이다. 샛별을 등대 삼아 길을 찾아보려 했던 그 뜻을, 마침 578돌을 맞은 한글날에 되새겨본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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