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시선] 흑백요리사 관전기
요즘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가 장안의 화제다. 지난 8일 공개된 제12화에서 '나폴리 맛피아' 권성준씨가 최고의 셰프 자리에 올랐다. 1위를 놓고 겨룬 마지막 상대는 한국계 미국 스타 셰프 에드워드 리였다. 말 그대로 흑과 백, 패기와 연륜의 대결이었다. 흑수저 요리사로 출전한 권씨가 우승하기까지의 긴 여정에는 탈락의 위기와 보류 판정, 패자부활전을 통한 생환, 세미파이널 1위와 그에 이은 최종 우승이라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서바이벌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에 시청자가 열광한 이유다.
그것이 드라마든, 다큐멘터리든, 혹은 예능이든 하나의 프로그램이 성공하기 위해선 서사, 즉 이야기가 필요하다. 양치기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끝내 쓰러뜨리고 승리를 쟁취하는 이야기라면 금상첨화다. 사람들은 일라이자가 아니라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고 노래하는 캔디에 더 열광하게 마련이다. 경연 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브리튼스 갓 탤런트'의 첫 우승자는 휴대폰 외판원으로 생계를 꾸린 폴 포츠였다. 이를 벤치마킹한 '슈퍼스타K'도 환풍기 수리공으로 일한 허각을 최종 승자로 뽑았다. 흑수저 요리사들의 분투를 통해 언더독 서사를 완성한 '흑백요리사'도 그런 점에서 보면 맥을 제대로 짚은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였다면 '흑백요리사'의 성공은 지금 같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컴피티션(competition)과 서바이벌(survival)이라는 프로그램의 형식과 구조가 커다란 뼈대를 이루고 있지만 피와 살을 이루는 디테일(detail)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했다면 '흑백요리사'는 지금보다 훨씬 헐겁고 싱거운, 그렇고 그런 요리 프로그램이 됐을 공산이 크다. 내가 보기에 디테일을 살린 일등공신은 흑수저와 백수저 요리사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음식과 그 음식들이 불러낸 추억과 거기에 얽힌 인생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런 작고 소소한 것들이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법이다.
음식에는 추억의 힘이 있다. 제10화 '인생을 요리하라' 편에서 이탈리아 요리사 나폴리 맛피아가 만든 '게국지 파스타'는 그걸 유감없이 보여준다. 게국지는 먹을 게 없던 시절 충남 태안 바닷가 사람들이 먹다 남은 게장을 버리기 아까워 여기에 묵은 김치를 넣고 팔팔 끓여낸 음식이다. 어린 시절 찍은 증조할머니 사진과 함께 화면에 비친 게국지 파스타에선 생업으로 바쁜 부모님 대신 자신을 키워주신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사랑이 뚝뚝 묻어났다. 음식 맛을 볼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그가 이 라운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위를 하면서 결승에 진출한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김치찌개, 떡볶이 같은 음식을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갔던 한국계 미국인 싱어송라이터 미셸 정미 자우너는 자신의 책 'H마트에서 울다'에 이렇게 적었다. "음식은 (죽은)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엄마는 겉보기엔 지독한 잔소리꾼이었지만, 내 입맛에 꼭 맞춰 밥상을 차려줄 때만큼은 나를 얼마나 끔찍이 여기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또 "훌륭한 음식 앞에선 마음이 웅장하고 경건해지기도 한다"면서 "(그것은 아마도) 먹는 행위 자체에서 정서적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도 했다. 음식이, 그리고 음식을 주인공으로 한 '흑백요리사'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은 이유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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