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진의 직평직설] 앵벌이 과학자와 노벨상

파이낸셜뉴스 2024. 10. 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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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과학상 지금까지 0
박봉과 관료주의가 원인
멀리 내다보고 투자해야
손성진 논설실장
작은 희망이 보였다. 노벨상 얘기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논문에 한국인 하일호 박사가 공동 1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말하자면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결정적 도우미 역할을 한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 의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푼다.

윤석열 정부가 작년에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과학계의 거센 반발에 뜨끔했을 것이다. 과학인들을 달래기 위해 더 큰 보따리를 풀어야 했다. 정부는 한국이 R&D 투자 1위국을 그리 오래 하고도 왜 성과가 없나 하는 의구심을 품었을 것이다. 과학계에 투입된 돈만으로 따지면 지금쯤 노벨상을 한 명이라도 받았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런 점은 과학계도 반성하는 게 마땅하다.

과학이나 의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일본인은 25명이고, 중국도 3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한국인은 왜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평균 연구기간이 32년이라는 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우리 과학인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시간이다.

박사 학위를 가진 연구원들 사이에서 과학자들이 홀대당한다는 자조 섞인 푸념을 들을 수 있다. '빚쟁이' '앵벌이'라는 말로 자신들의 처지를 하소연한다. 연구를 할 만하면 정년에 가로막혀 실제 연구기간은 20여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말이 억대 연봉이지 일부에 불과하고, 임금피크제도 걸려 의욕이 떨어진다고 한다. 대학으로 옮겨도 상대적 박봉으로 빚을 안 지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보다 더 크게 꼬집는 문제는 관료주의 폐단이다. 연구과제 수주를 위해 연구기관끼리 경쟁해야 하고, 성과를 내라고 압박하는 공무원들 등쌀을 견디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그런 문제는 대학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마당에 정부의 예산 삭감은 과학인들의 화를 돋우었을 성싶다.

듣고 보니 이런 환경을 바꾸지 않는 이상 노벨상은 더 받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과학인을 푸대접하면서 노벨상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 아니겠는가. 정부가 해외 석학을 유치하기 위한 정책들을 펴고 있지만 근본 풍토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정년으로 일터를 잃은 석학들이 줄줄이 중국이나 미국으로 떠나고 있다. 석학을 데려오지는 못하고 도로 외국에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석학들이 경쟁국에서 그 나라를 위해 일한다면 우리로서는 이중의 국가적 손실이다.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해 그 나라에 제공한다면 부메랑은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문제는 이런 심각한 상황을 우리 정부, 공직자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계에서 보면 이번 정부는 국익을 해치는 정책을 편 셈이 된다. '과학입국 기술자립'을 내걸고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독려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혜안을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과학적 성과는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끈질기고 지루할 정도의 노력과 투자가 따라야 한다. 당장 성과를 내놓으라고 다그칠 일이 아니다. 기다려주고 밀어줘야 한다. 과학 연구라면 정권과 무관하게 이어가야 한다. 잦은 정권교체가 사실은 과학의 발목을 잡는다. 임기 내 성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투자를 꺼린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의대 열풍이다. 의료개혁을 위해 의대정원을 늘려야 하지만 과학인재를 의학에 빼앗기는 반작용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입을 닫고 있어서 그렇지 과학계는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 그러잖아도 학령인구는 줄어드는데 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로 몰려가서 이공계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지금 세태로 보면 의학과 생리학 분야에서 출중한 인재가 배출될 것 같지도 않다. 정부 정책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을 들여다보면 순수의학 연구에 대한 열망이 느껴지지 않아서다. 의학 연구가 아니라 그저 돈 많이 버는 의사로 성공하기를 원하는 씁쓸한 현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tonio66@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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