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보도 아저씨와 ‘고갈비’ [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한겨레 2024. 10. 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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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번쩍 뜨이는 짠맛이었다.

서울역에서 숭례문 가는 방향의 지하보도,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말수가 적었고, 정중한 사람이었으며, 언제나 성경과 담배를 가지고 있었다.

지나는 사람도 별로 없는 지하보도에는 생선 굽는 연탄불 냄새도, 기름 넉넉히 두른 프라이팬에서 구워지는 먹음직스런 자글거림도 없다.

공공장소인 지하보도에서 사기업에 퇴거를 당했던 홈리스들과 그에 연대하는 이들이 모여 시청 광장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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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제를 마치고 서울광장을 둘러싸는 ‘서울시 포위 행진’을 출발하는 모습. 5개 항의 ‘홈리스의 공존할 권리’ 선언문을 적은 만장이 보인다. 최인기 작가

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정신 번쩍 뜨이는 짠맛이었다. 10년 정도 전이다. 당시 동아리 활동으로 홈리스 아웃리치(거리상담)를 하고 있었다. 숙련된 활동가들을 따라 보조 역할을 몇개월 하다 보니 종종 상담 역할이 주어지곤 했다. 그렇게 연을 맺은 홈리스가 있었다.

서울역에서 숭례문 가는 방향의 지하보도,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말수가 적었고, 정중한 사람이었으며, 언제나 성경과 담배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아저씨가 품에 고이 모셔둔, 잘 구운 고등어 한 마리를 꺼냈다. ‘고갈비’다. 남대문 일대에서 제법 유명한 곳이라고 너스레를 떠신다. 안주로든 반찬으로든 이 집 고갈비만 한 게 없다며 바닥에 비닐을 대고 그렇게 한 상을 차렸다. 지나는 사람도 별로 없는 지하보도에는 생선 굽는 연탄불 냄새도, 기름 넉넉히 두른 프라이팬에서 구워지는 먹음직스런 자글거림도 없다. 언제 식당에 다녀오셨는지, 다 식은 고등어 한마리가 아무 냄새 없이 놓여 있을 뿐이다.

노릇하니 잘 구워 펼쳐 둔 고갈비의 살점을 집는다. 기름기 때문인지, 식어도 퍽퍽해 뵈지 않는다. 그렇게 한 입을 먹는데 아! 정말 어찌나 짜던지. 조리 실수인지, 원래가 그런 집인지. 뜨거울 때 먹어야 하는 것이 다 식어서 더 짜게 느껴지는 것인지. 정신이 번쩍 뜨였다. 그 짠맛을 입으로 살살 달래 가며 먹는다. 짠맛 뒤로 숨은 잘 구운 생선의 감칠맛을 찾는다.

‘서울시 포위 행진’ 참여자가 서울시를 바라보며 피켓을 든 모습. 최인기 작가

지난 9월, ‘서울시 포위의 날’이 있었다. 공공장소인 지하보도에서 사기업에 퇴거를 당했던 홈리스들과 그에 연대하는 이들이 모여 시청 광장을 돌았다. 홈리스가 머무는 공간인 서울역 앞 지하보도는, 당연하게도 공공장소다. 그 지하보도가 편의를 위해 역 인근 빌딩들로 이어지곤 하는데, 그중 한 곳인 서울스퀘어 직원들이 지하보도에 와서는 홈리스를 퇴거하는 일이 빈번했단다. 말 한마디 쏘아붙일 수 없이 쫓겨났던 이들이 서울시 앞에서 한판 행진을 벌였다. 만장이 휘날리고, 브라스밴드와 풍물패가 경쟁하듯 연주를 하며 흥을 돋웠다. 춤사위를 벌이고, 한껏 화도 내봤다.

살인적인 더위의 여름, 지하보도에서 일상을 보내야 하는 이들의 시간은 녹록지 않았다. 누군들 기꺼이 지하보도의 삶을 택했을까. 지하보도를 지나는 어엿한 이들은 자신의 삶의 모든 부분을 다 선택하며, 자기 뜻대로, 그렇게 살고들 있을까. 그 무더위에 흰소리하며 홈리스를 쫓아내던 직원들은 그 일이 기껍기만 할까. 삶은 우리를 예상치 못한 길로 몰아붙인다. 우리 사회 곳곳의 공공장소는 누구의 소유도 아닌 채로, 그렇게 누군가의 임시피난처가 되기도, 최후의 보루가 되기도 한다.

지하보도의 역할이 뭐냐 묻는다면 ‘숙박’이라 대답하지 않겠지만, 그곳에서 삶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몰아낸 삶이다.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공공의 소유인, 그러니 모두의 땅인 곳에서 잠을 자고, 더위와 추위, 모욕을 견디며 한 마리 고갈비에 울고 웃으며 삶은 그렇게 펼쳐지고 있다. 그이들과 더불어 광장에서 크게 외쳤다. “홈리스도 시민이다!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라!” 고등어를 포장해 기다려주셨던 그 아저씨 얼굴이,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신학생이었던 내게 아저씨는 종종 성경을 읽어주셨다.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면서 외우고 있냐고 핀잔을 주기도 하셨다. 아저씨, 차마 말하지 못하고 열심히 먹었습니다만 이제라도 다시 뵐 수 있다면 여쭙고 싶네요. ‘영 짜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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