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의 도시스카프] 텐트에 구겨넣은 축제, 공간은 사라져도 경험은 쌓인다
텅 빈 무대·흔한 음식… 현장 10년째 그대로 보여주기식 체험만 있는 하얀 몽골텐트 가득 지속성 없는 행정지상주의 '도떼기' 공간기획 시민 모두가 즐기는 축제로 시스템 개선해야
선선한 바람과 더불어 도시들이 축제로 바쁘다.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 등에서는 축제 소식을 알리느라 요란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양반 도시'라는 곳에서는 고등어 김밥이 대관절 무엇이라고 몇 시간 이상 줄을 서야 겨우 사 먹을 수 있다고 한다.
SNS에는 '도장깨기' 하듯 각종 부스 안의 음식에 대한 가격과 맛 이야기로 가득하다. 축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역 소식을 전하는 공중파 방송에도 먹거리 자랑이 한창이다. 고등어 축제를 해도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 그 자리에 말없이 있었던 참치김밥만 서럽다.
둔치가 보이는 아름다운 야경 아래 텅 빈 바이킹과 놀이기구는 공중을 휘젓고, 시끄러운 음악과 아나운서의 음성이 정신 사납게 들려온다. 그런 와중에도 건강식품을 홍보하는 업체 직원한테 잡혀 30분 동안이나 일장 연설을 들어야 했다. 정말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날 것만 같았다. 약장사는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돔형 대형 텐트 안에는 흰색 비닐을 깐 테이블이 썰렁하게 놓여 있다. 축제장 단골 음식인 부침개, 도토리묵, 소머리국밥 등이 메뉴다. 그래도 고래고기는 없었다. 다른 지역에서 원정 나온 듯한 푸드트럭 거리에는 손님이 없고 알록달록 예쁜 등들만이 어색함을 메우는 듯하다.
크고 웅장한 무대는 텅 비어있고, 각종 조명장치와 방송 장비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야바위 시장, 소머리국밥, 건강식품, 인형 뽑기, 각종 주방용품 판매 부스 등이 무대 뒤로 즐비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축제장은 참으로 한결같다. 이름만 다를 뿐 공간도 프로그램도 변함이 없다. 단을 높이 올려 만든 크고 화려한 무대와 각종 조명장치, 무대 주변을 둘러싼 5×5m 크기의 하얀색 몽골 텐트, 그리고 돔형 천막 식당이다. 5×5 세상에는 정체성을 알리는 현수막 한 장, 접이식 플라스틱 테이블 한두 개와 간이의자 몇 개가 기본이다. 체험 행사에는 미리 만들어진 DIY 용 키트를 받아 몇 분 투다닥 하면 가져갈 수 있는 사물이 만들어진다.
수십 개의 부스에 '체험 행사'라고 이름을 붙여놓고 "이번 축제는 시민들에게 더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 성공적인 행사였다"고 홍보할 것은 자명하다. 연출된 사진과 함께 말이다. 고등어 김밥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은 모두 축제를 즐기러 온 관광객으로 둔갑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고 백서에 길이길이 기록될 것이다. 행사장 어디를 보아도 축제와 관련된 행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도시뿐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나 다 똑같다.
공간은 사람을 차별한다. 무대에는 초대받은 사람만 오를 수 있다. 달동네 5×5 텐트는 아무나 갈 수 있다. 심지어 그 널찍하고 화려한 무대는 개막식이 끝나고 나면 별 쓸모가 없다. 당연하다. 사용자가 시민이 아니니 말이다. 5×5 텐트 속에서 볼 수 있는 세상은 참으로 단춧구멍만 하다. 주최 측은 언제나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한다. 많은 체험 행사로 시민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겠다고 말이다.
2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그랬다. 개막식을 위해 동원된 사람들이 차떼기 관광버스에서 내려 먼저 공간을 채운다. 식장이 준비되면 등장하는 VIP들과 누구도 귀담아들을 법하지 않은 긴 인사말, 화려한 개막선언, 그리고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그것으로 무대는 본 목적을 충실히 수행한 셈이다. 동원 인력들이 자리를 뜨고 나면 행사장은 본격적인 '도떼기'로 본색을 드러낸다.
'도떼기'로 기획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산 부족과 이해관계자들의 압박, 관계기관의 간섭 속에서 축제가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결국, 개막 당일 몇 시간 동안만 북적거리는 척하다 끝난다. 무인 계수기를 조작해 성과도 원대로 부풀릴 수 있다. 다 좋다. 그러나 시민들은 무엇을 누릴 수 있는가.
아파트도 30년이 넘으면 재개발 노래를 부르고, 원도심은 도시재생을 한다. 200층짜리 타워를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모든 시민이 걸을만하고 쉴만한 공간으로 만들어달라는 것뿐이다. 젊은 사람들은 맛집에 줄서기 바쁘고, 어르신들은 "볼거리가 없다"라며 빈손으로 허탈해하며 돌아가신다. 30년을 속고도 또 찾아오신다.
참 솔직하지 못한 공간이다. 텐트 하나에 현수막 달랑 하나 붙여놓으면 그것으로 다양한 체험을 제공했다고 성과를 포장하는 측이나, 그것을 모르는 척 인정해주는 측이나 모두 행정 지상주의에 매여 있다.
축제는 개막의 화려함과 함께 잠시 머물다 가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세월 가면 나무도 자라 새들이 모여들고 그늘도 지우는데, 우리나라 축제는 어찌 된 셈 인지 갈수록 '도떼기 시장'이다. 필사적으로 흥행용 콘텐츠를 끼워 넣지만, 자생력도 지속가능성이 없어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담당자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내년엔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 그만이니까. 인기 있는 콘텐츠는 별도의 공간에 별도의 디자인으로 특화된 공간을 내어주고, 그렇지 않은 콘텐츠들은 후미진 곳에 허름한 천막 텐트 하나 내어준다. 사람이 오든 가든 상관없다. 스타 콘텐츠에 사람이 모여들기만 하면 된다. 무례하다.
'그들만의 축제'는 성공했다. 며칠 짜리 일회성 축제이지만 그곳에도 공간이 구성되고 경험이 만들어진다.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는 공간은 독선적이다. 거대한 무대 주변의 오밀조밀한 텐트가 고시촌 방들처럼 처량해 보인다. 사공은 많은데 전문가가 설 자리는 없다.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축제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쇼는 계속되어야 하니까 말이다(Show must 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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