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독일의 부침에서 배울 점

2024. 10. 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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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필자에게 선진국에 대해 명확하게 각인된 가르침이 있다.

'독일 국민의 성실성, 이탈리아 국민의 예술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독일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2000년대 들어 도입된 것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한편 원전을 줄여간다는 내용이었다.

독일이 가라앉는 모습을 보며 국민이 갖춰야 할 덕목이 성실성만은 아니라고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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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모든 원전 멈춰 세운 채
재생에너지 의존도 늘리다
러시아 천연가스 공급 끊겨
국가 산업마저 대대적 위기
백년지대계 섣불리 적용땐
견고한 나라도 버티지못해

1980년대에 필자에게 선진국에 대해 명확하게 각인된 가르침이 있다. '독일 국민의 성실성, 이탈리아 국민의 예술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동시에 갖추라는 요구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을 다 커서 깨달았다. BMW는 페라리의 빨간색을 구현하지 못하고, 피아트는 폭스바겐 같은 기술적 신뢰를 못 받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던 그 당시에는 좋은 건 다 좇아야 맞는 것 같았다. 특히 독일은 제조업 중심 수출 강국을 지향하는 한국에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존재였다.

유럽이 총체적 난국에 빠진 중에 독일의 어려움은 상징적이다. 2008년에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대 초반 남유럽 국가들이 재정위기에 처했을 때 독일은 유럽의 구원자로 부상했다. 독일식 재정 원칙이 유럽연합에 확산되는 계기도 되었다. 하지만 지금 독일은 침체된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불안으로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달 초 독일의 '국민차' 폭스바겐은 독일 내 공장들의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또한 그 며칠 전에는 지방 주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옛 동독 지역에서 약진했고, 튀링겐주에서는 1위를 했다. 이러한 결과의 원인에는 몇 가지가 있지만,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한 부담과 더 큰 그림에서의 환경 정책이 1순위로 꼽힌다.

독일의 현재 상황을 일으킨 나비의 날갯짓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볼 수 있다. 독일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2000년대 들어 도입된 것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한편 원전을 줄여간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서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한다는 급진적인 결정이 내려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몇 달 미뤄지긴 했지만 독일은 작년 4월 모든 원전을 중지했다. 하지만 에너지 문제는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전력은 안정적인 공급이 가장 중요한데, 재생에너지 생산은 변덕스러울 수밖에 없다. 독일은 변동성을 보완하면서 비교적 탄소 배출이 적은 천연가스 사용을 늘려야 했다. 가뜩이나 비싼 천연가스의 원가를 낮추고자 러시아로부터 2021년 이래 파이프라인을 통해 가스를 공급받았는데, 2022년 파이프라인 폭파 사건으로 에너지 위기를 맞은 것이다.

폭스바겐의 위기를 촉발한 2015년 디젤 배출 가스 스캔들도 강화된 환경 정책에 보조를 맞추다가 그릇된 선택을 한 결과였다. 배출 가스 시험 중일 때만 배출 가스를 낮추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차량에 설치한 것이 발각된 것이다. 이 스캔들로 폭스바겐에 대한 신뢰가 추락했을 뿐만 아니라 전기차 이행이 가속화되면서 내연기관차의 입지가 좁아지는 대형 민폐를 끼치게 됐다. 독일만 놓고 보면 높은 에너지 비용과 인건비, 과도한 규제와 관료주의의 폐해가 폭스바겐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나는 중이다. 최근에는 코베스트로라는 대형 화학 회사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국영 석유회사에 인수된다는 발표가 났고, 독일 최대 은행인 코메르츠방크가 이탈리아의 유니크레디트에 적대적 인수 상황에 놓이면서 독일의 미래에 대한 회의는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환경 정책을 부정하거나 에너지 전환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영향이 드러나는 정책을 섣불리 작동하고 가속하면 독일 같은 나라도 흔들린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민이 지속 가능한 비전을 지지해야 책임 있는 정책들이 수립되고 실현되지 않을까. 독일이 가라앉는 모습을 보며 국민이 갖춰야 할 덕목이 성실성만은 아니라고 깨닫는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경제사회연구원 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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