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생도, 90년대생도 "아직 사랑을 믿니?"…변하는 사랑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들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10. 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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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저격]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의미 있는 고독 - 제21회 EBS국제다큐영화제 (글 :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순정남 순정녀의 사랑에 눈물 콧물 짓던 시대에, 사랑은 그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열쇠처럼 보였다. 신분 간 격차를 비롯해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거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결말로 끝나는 영화들은 관객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이제 그런 사랑의 시대는 끝났다고 영화는 선언한다.

2000년대에 나와서 히트했던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광고는 '이번이야말로 찐사랑'이라고 외치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랑은 수많은 문학작품과 영화들을 통해 수없이 묘사됐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으로 남아 있다. 변하는 사랑에 대한 서사는 관객에게 감정이입과 거리감을 넘나들게 만든다. 아무리 반복해도 아직도 할 말이 많이 남아 있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최근에 개봉한 캐나다 출신 모니아 초크리 감독의 <사랑의 탐구>는 상투적일 수도 있는 사랑의 행태를 감독 특유의 감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파격적인 부분도 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왜 그런 결말로 끝냈는지, 감독의 의도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뒀다.

아직 정교수가 되지 못하고 노인 대상으로 철학 강의를 하는 여주인공 소피아는 남편을 비롯해 주변의 지적인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별문제 없이 살아간다. 첫 장면부터 식탁에서 열띤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을 통해 소피아가 어떤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소피아가 그런 삶에 특별히 권태감을 느끼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강사이자 주부다.

그러나 별장을 매입하면서 소피아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전부 수리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소피아가 울음을 터트리자, 수리공인 뱅상이 소피아를 위로하면서 둘 사이에 미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감정으로 발전한다. 사랑은 사고처럼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로맨스 영화들의 흔한 도입이다. 소피아는 뱅상과 불꽃같은 사랑을 나누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며 행복해한다. 하지만 남편과 뱅상 사이에서 갈등한다. 시댁과 친정 식구들의 관계도 얽혀있기 때문에 칼로 자르듯 깔끔한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 남편과 뱅상은 하는 일도 성격도 전혀 다른 만큼 가족들의 분위기도 다르다.

열정과 낯섦, 안정과 익숙함은 쌍을 이루면서 그녀의 감정을 공격한다. 영화는 겉으로 드러난 소피아의 감정과는 또 다른 내적 감정이 자리 잡고 있음을 미세하게 보여준다. 결국 관객으로선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결말로 이어진다. 뱅상과 관계에 따라 소피아의 감정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면서 철학 수업의 분위기와 내용도 달라진다. 철학자들이 표현하는 사랑에 대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견해가 소피아의 현재 감정을 대변한다. 고민 끝에 소피아는 남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뱅상을 택한다. 그러나 영화의 엔딩은 감독이 선택한 또 다른 반전이다.

지인들과 모임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뱅상은 무릎을 꿇고 소피아에게 결혼반지를 내밀며 청혼한다. 그런데 마침 설거지를 돕고 있던 소피아는 거품이 묻은 고무장갑 낀 손을 위로 올린 채, 한참 시간을 끌어 뱅상을 당혹하게 만든다. 결국 고무장갑을 힘들게 벗고 반지를 손가락에 끼지만, 짧다고도 길다고도 할 수 없는 그 애매한 시간은 뱅상과 결혼해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했던 소피아의 심경을 의심하게 만드는 첫 번째 사건이었고 마지막 장면과도 이어진다. 상대를 향한 열정, 결혼, 임신이 순차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정이라는 통념이 깨어지는 시대상과 연결되는 느낌이다.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경험했지만, 사고처럼 다가온 열정에 휩싸여 결혼을 깬 경험이 있는 소피아는 이제 결혼을 믿지 않게 된 것일까. 길에 혼자 서서 하늘을 쳐다보는 그녀의 표정은 묘하지만, 그 안에서 왜 고독한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걸까.

올해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사랑에 대해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한다. MZ 세대의 사랑법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로, 주인공인 율리에는 의학도였으나 계속해서 자신의 전공을 바꾼다. 자신의 관심이 끌리는 대로 살기 위해 망설임 없이 다른 길을 택한다. 전공과 함께 이성 취향도 계속 변한다. 20대 후반인 율리에가 40대인 유명 만화가 악셀과 사귀면서 겪는 갈등을 주 서사로 하면서 사랑이라고 느끼는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최적의 파트너라고 생각했던 악셀과 동거하면서 어느 순간 율리에는 허전해진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율리에는 만화가로 성공한 악셀을 보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틈새를 비집고 새로운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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