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의 사진지문] 책 돌리기
# 중학생 때 짝꿍에게 배웠습니다. 보기엔 쉬워 보였는데 막상 해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처음엔 책이 아니라 책받침이었습니다. 책받침은 얇고 무게가 가벼워 돌리기가 더 어렵습니다. 처음엔 다른 손으로 살짝 돌려줘야 합니다. 시동을 건다고 할까요? 시작부터 쉽지 않습니다. 세게 하면 튕겨 나가고 살살 하면 돌지 못하고 떨어져버립니다. 힘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 시작을 잘했다고 끝난 것도 아닙니다. 책받침이 돌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손가락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정가운데 있으면 축이 고정돼 돌릴 수가 없습니다. 축에서 멀어지면 중심이 무너져서 책받침이 떨어집니다. 가운데 축에서 살짝 옆에 있어야 무게 중심이 무너지지 않으면서 계속 돌릴 수 있는 힘이 전달됩니다. 축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 그렇습니다. 책받침을 오래 돌리는 비법은 힘과 축의 균형을 맞추는 겁니다. 적당한 힘으로 살짝씩 손가락을 돌려줘야 하고 축을 중심으로 가운데와 살짝 옆을 왔다 갔다 하며 위치를 변경해줘야 합니다. 균형이 잘 잡힌 책받침은 점프 묘기를 부릴 수도 있고 한 시간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 아이 책을 정리하다 문득 옛 생각에 사로잡혀 책을 돌려봤습니다. 처음엔 떨어뜨렸지만 몇번의 시도 끝에 안정적으로 돌기 시작합니다. 손가락은 균형 잡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저는 뿌듯한 얼굴로 아내를 봅니다. "여보 나 잘 돌리지?"
# 문득 책 돌리기에서 삶의 균형을 생각합니다. 힘의 세기와 방향이 한쪽으로 치우친 게 좋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균형점을 찾은 책이 손가락 위에서 춤을 춥니다. 책 돌리기처럼 제 삶도 균형점을 찾았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삶도요.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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