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시의원과 동조자들 [전국 프리즘]
최예린 | 전국팀 기자
엄밀히 말하면 ‘물먹은’ 건이었다. 7월1일 저녁 방송 뉴스에 “대전시의원 ㄱ씨가 선거사무실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됐다”고 단독 보도됐을 때까지도 큰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물먹은 건이라 여긴 채 넘기려 했다. 무엇보다 ‘어디서든 흔한 일’이란 생각이 없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더러운 말과 손’에 대한 경험을 도처에서 했다. 회사 사무실, 기자실, 회식 자리, 취재원과 점심·저녁 자리….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타격’이 불현듯 나를 때렸다. ‘잽’이냐 ‘어퍼컷’이냐 정도 차이일 뿐, 당황스럽고 불쾌했다. 그러나 한번도 제대로 ‘문제 제기’하진 못했다. 성폭력에 대한 날 선 기사를 쓰면서도 정작 나의 피해는 부정하거나 외면했다. ‘성폭력 피해자’라고 드러내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 잘 알아서다. 처음엔 조금 소란하다 결국 피해자는 ‘문제를 일으킨 사람’으로 찍혀 그 조직이나 세계를 떠나는 모습을 보곤 했다. 가해자는 살아남아 시간이 흘러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그 꼴에 대한 간접 경험은 ‘피해자로 규정되지 않겠다’는 안간힘으로 이어졌다. “넌 여자 아닌 기자”라며 불려 나간 술자리에서 굳이 ‘높은 사람’ 옆자리에 앉히려 할 때도 나는 차라리 가해자의 위치에 서기로 했다. 환갑을 바라보던 그 높은 사람의 양팔은 20대 후반의 계집애에게 꽉 붙들린 채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노래 반주에 맞춰 맥없이 춤을 췄다. 나는 ‘살기 품은 피에로’처럼 그의 팔을 허공으로 마구 휘두르며, 끝까지 웃으며 울지 않았다.
그런 일은 너무 흔했다. 용기를 냈다가 조용히 그 바닥에서 자취를 감춘 이들도 있었다. 가해와 피해를 뒤섞은 야비한 뒷말은 성폭력의 짝꿍처럼 따라붙었다. 대전시의원 성추행 사건을 못 본 척 지나치려던 나를 뒤돌아보게 한 것도 사실 그런 뒷말들이었다.
“성폭력이 아니라 연애. 피해자의 앙심과 의도. 무고한 가해자.”
방송사의 첫 보도 다음날부터 지역 정가를 중심으로 실체 없는 말들이 퍼져나갔다. 여느 성폭력 사건처럼 조용히, 무책임한 방식으로 30대 초반의 피해자는 빠르게 가해자로 둔갑하고 있었다. 깊은 빡침이 올라왔다. 피소된 송활섭 대전시의원은 “왜 엉덩이를 만지셨나요?”라는 나의 ‘1차원적’ 질문에 “엉덩이를 만진 게 아니고요, 허리춤을 친 거고요”라며 ‘3차원적’ 대답을 내놨고, “그럼 허리는 왜 치셨나요?”란 눈치 없는 채근이 이어지자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4시간 뒤 만난 피해자가 허공에 외치듯 내게 “왜 그 시의원도, 그가 속한 정당도 내겐 사과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는 건가요?” 물었을 땐 어떤 답도 할 수 없었다. 모든 상황이 너무 염치없었기 때문이다.
송 의원이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지 두달여 만인 지난 9월5일 대전시의회는 본회의에서 송 의원 제명안을 부결시켰다. 징계 당사자를 뺀 21명의 재적 의원 중 단 7명만 제명안에 찬성했다. 반대 13명, 기권 1명이었다. 시의회 윤리특별위원회가 제명안을 의결할 때 찬성한 의원이 6명이었다. 국민의힘이 19명(더불어민주당 2명)인 상황에서(송 의원은 성추행 피소 며칠 뒤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제명안 통과가 어려울 거라 예상했지만 ‘고작 7명이라니’ 충격이었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도 당황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찬성표가 어느 정도 나와 내 정체를 들키지 않을 거’라 믿었는데 뒤에 숨기 어려워진 거다. 궁지에 몰리자 의원 여럿이 “나는 찬성, 너는 반대”라고 우기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당할 수 있는 흔한 일’이란 현실은 이들 대전시의원의 생각과 마음에 어떤 작용을 했을까. 결과만 보면, 그 사실이 혹여 피해자를 외면해도 좋을 각자의 ‘핑계’로 쓰이진 않았을까. 성추행당한 30대 초반의 시민이 아니라, 가해 동료 의원의 손을 잡아도 괜찮은 ‘명분’으로 말이다. 이유야 어떻든 그렇게 그들은 성폭력의 동조자로, 기록되는 길을 택했다.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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