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가족-자식을 위한 형제의 다른 선택[시네프리뷰]

2024. 10. 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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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이 그랬듯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의 비행을 눈치채고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최선일지 고뇌하는 두 부모의 이야기다. 한국적으로 재탄생한 <보통의 가족>은 여기에 더해 각자의 다른 이상과 원칙을 가지고 살아가는 두 형제의 감정선에 좀더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이브미디어코프


제목: 보통의 가족(A Normal Family)

제작연도: 2024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09분

장르: 드라마

감독: 허진호

출연: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

개봉: 2024년 10월 16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하나의 원작을 여러 나라에서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근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작품은 <완벽한 타인>. 2016년 발표된 이탈리아 영화를 지금까지 20여 개국에서 25차례나 리메이크했다. 한국에서는 이재규 감독이 2018년에 유해진, 조진웅 주연으로 영화화해 성공을 거뒀다.

이런 다국적 리메이크는 로컬라이징(localization)이라 명명되는 ‘현지화’가 필수적인데 사실 그 영역과 정도에 기준이나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완벽한 타인>은 대부분 비슷한 구조와 형태를 유지하며 각 나라 언어로만 바뀐 정도의 각색이 주였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이번 한국 작품이 네 번째 영화화다. 원작은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Herman Koch)가 2009년 발표한 소설 <더 디너>(The Dinner). 전 세계 누적 100만부가 팔렸고, 55개국에 판권을 계약한 유명한 작품으로 네덜란드(2013)를 비롯해 이탈리아(2014), 미국(2017) 등에서 영화화됐다. 그런데 <더 디너>는 나라별 영화마다 자국의 개성을 살린 차별화된 각색이 눈에 띈다.

한국판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허진호라는 이름은 한국 영화 번영기인 1990년대를 상기시킨다. 당시만 해도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시되던 도제 방식에 따라 단편영화와 연출부를 거쳐 ‘입봉’(장편영화 감독이 된)한 거의 마지막 세대라 볼 수 있다.

중견 감독 허진호의 5년 만의 신작

허 감독의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1998)는 고급스럽고 섬세하면서도 서민적이며 보편적인 정서에 부합하는 따뜻한 드라마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명작이다.

이후 내놓은 <봄날은 간다>(2001), <외출>(2005), <행복>(2007) 등을 공통으로 아우르는 ‘멜로 드라마’ 장르는 그의 작품 세계를 규정하는 일종의 대명사가 됐다.

<덕혜옹주>(2016)와 <천문: 하늘에 묻는다>(2019)로 잠시 시대극에 관심을 보였던 그가 5년 만에 내놓은 이번 신작은 그동안의 행보로 볼 때 또 다른 차원의 새로운 시도다.

원작이 그랬듯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의 비행을 눈치채고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최선일지 고뇌하는 두 부모의 이야기다. 하지만 한국적으로 재탄생한 <보통의 가족>은 여기에 더해 각자의 다른 이상과 원칙을 가지고 살아가는 두 형제의 감정선에 좀더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이들의 범죄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위태롭게 버텨오던 관계에 균열을 초래한다. 더불어 형제, 가족이라는 이름의 연약한 고리 안에 봉인해 억누르고 있던 시기와 질투를 서서히 분출케 만든다.

명배우 4인의 매력적인 연기 앙상블

명연기를 넘어 다소 과잉이라 평가받기도 하는 설경구와 김희애의 연기력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감스럽게도 흥행 면에서는 연이어 아쉬운 결과를 기록하고 있다는 공통점 또한 공유하고 있는 중견 배우들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감정적 연기를 쏟아내는데, 극단적 상황과 인물의 설정이 이를 어느 정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해 나름의 설득력을 부여한다.

모처럼 스크린으로 돌아온 장동건은 확실히 이전과 다른 모습이다. 이제는 숨길 수 없는 중년의 외모도 그렇지만, 이전보다 자연스러워진 연기의 폭이 선명히 포착된다. 이런 그의 비현실적인(?) 외모를 큰 화면 가득 보고 있자니 문득 ‘한국에 이런 배우가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것이 바로 시간이 외모와 맞바꾸어 주는 ‘연륜’이라는 선물인가 보다.

다수의 드라마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등 할리우드 대형 영화로 이름을 알린 수현에게는 한국 영화 첫 출연작이다. 젊은 나이와 출중한 미모를 넘어서는 배우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발산하고 있어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 만든다.

<보통의 가족>은 2023년 제48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 상영으로 전 세계 최초 공개된 이후 타이베이 영화제, 팜스프링스 국제영화제, 프리부르 국제영화제 등에 19회나 초청됐다.

또 제44회 판타스포르토 국제영화제와 제39회 몽스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아 한국적 각색이 충분히 유의미한 작업이었다고 확인받았다.

10대 자녀와 질풍노도의 부모들


AT9㈜씨에이엔/ 판씨네마㈜


일찍이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자식을 기르는 부모야말로 미래를 돌보는 사람이라는 점을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한다. 자식들이 조금씩 나아짐으로써 인류와 이 세계의 미래는 조금씩 진보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 현실이 이상처럼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특히 질풍노도의 중심에 들어선 10대의 경우, 자녀뿐 아니라 부모들 역시 큰 혼란의 소용돌이를 버텨내야만 한다.

덴마크 감독 수사네 비르가 2010년 발표한 <인 어 베러 월드>(원제 Hævnen)에서 주인공인 의사 안톤은 아내와 별거 중 아프리카 오지에서 의료봉사를 한다. 반군이 자행하는 폭력과 무질서한 사회상에 점차 회의를 느껴가던 그는 10대 아들 엘리아스와 동급생 크리스티안이 벌인 뜻밖의 사고 소식에 더 큰 충격을 받는다.

2011년 제83회 미국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을 비롯해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유럽 영화상 감독상 등을 수상하며 그해를 대표하는 화제작이 됐다.

작품만큼이나 파란만장한 개인사로 유명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2011년 발표한 <대학살의 신>(Carnage)은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유명 희곡을 각색한 영화다.

폭력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로 만난 교양 있고 예의 바른 4명의 성인남녀. 처음에는 적절한 타협과 양보로 원만하게 합의가 이루어질 것처럼 보였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대면 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지면서 각자 내면에 감추고 있던 추레한 본성과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한정된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네 사람의 끊임없는 대사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대배우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프 왈츠, 존 C. 라일리의 걸쭉한 연기 앙상블이 백미라 할 수 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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