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기록 유산이 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역사&오늘]

김정한 기자 2024. 10.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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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년 10월 9일, 세종대왕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의 훈민정음을 반포했다.

이에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쉽게 글을 배우고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자 당시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를 비롯한 사대부들을 중심으로 한글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는 신하들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백성들을 위한 문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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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 세종대왕, 훈민정음 반포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본)·언해본. 2023.10.5/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446년 10월 9일, 세종대왕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의 훈민정음을 반포했다. 이로써 우리라나는 고유의 문자를 가지게 됐다.

당시 조선은 한자를 사용했지만, 많은 백성은 복잡한 한자를 읽고 쓸 수 없었다. 이에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쉽게 글을 배우고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훈민정음은 1443년에 창제됐다. 사람의 발음 기관을 관찰해 자음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고, 모음은 하늘, 땅, 사람을 상징하는 원리를 적용했다. 처음에 만들어진 글자는 28자였으나 오늘날에는 24글자만 사용하게 됐다.

훈민정음이 창제되자 당시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를 비롯한 사대부들을 중심으로 한글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당시 조선 사회는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적이었고, 한자는 유교 경전을 읽고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문자였다. 사대부들은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것은 유교적 질서를 깨뜨리는 행위라고 생각했고, 또한 사대주의에 사로잡혀 중국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는 신하들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백성들을 위한 문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세종대왕의 의지와 백성들의 지지 덕분에 한글은 널리 보급될 수 있었다. 훈민정음은 양반들의 무시와 홀대를 받았으나, 점차 국가 행정,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1928년 국어학자 주시경은 훈민정음을 '한글'로 명명했다. '우리 민족만의 하나뿐인 글자'라는 의미였다. 오늘날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유네스코는 1989년 '세종대왕상'을 제정해 문맹 퇴치사업에 공이 많은 개인이나 단체 3명(단체)에게 수여하고 있다. 또한 1997년 10월에는 '훈민정음'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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