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진 냄비와 접시… 평범한 그릇에 우주를 담았다
10년 만에 한국서 개인전
서울 아라리오 갤러리 12일까지
어두운 지하 전시실에 스투파가 들어섰다. 스투파는 본디 불교에서 부처나 스님의 사리를 안치하는 탑. 특이하게도 이 스투파는 몸체 곳곳에 철제 주방 조리 도구들이 박혀 있다. 실제 인도 가정에서 사용했던 찌그러진 냄비와 알루미늄 그릇, 접시들을 흰 석고 몸체에 알알이 박아 넣어 삶의 흔적을 담은 식기를 예배의 대상을 품은 성물함으로 승화했다. 작가는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신성한 것”이라며 “별것 아닌 그릇 안에도 저마다의 우주가 들어 있다”고 했다.
인도의 저명한 현대미술가 수보드 굽타(60)의 개인전 ‘이너 가든’이 서울 율곡로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가 10년 만에 한국에서 선보이는 개인전이다.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제 도시락, 자전거, 우유통 등 일상의 사물을 재조합한 특유의 작품으로 국제 미술계의 찬사를 받은 작가가 신작 회화와 조각 15점을 선보인다.
인도인들이 실제 사용했던 그릇을 재활용하는 작업 방식은 여전하지만, 신작에선 명상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지하 1층에 전시된 또 다른 작품의 제목은 ‘이 질그릇 안에 일곱 개의 대양과 헤아릴 수 없는 별이 있다’. 하나의 그릇을 반으로 쪼갠 뒤 위아래로 펼치고 석고에 심어 넣었다. 내부는 오래된 물건처럼 보이도록 녹(파티나)을 입혔다. 푸르스름한 녹의 질감과 색채가 마치 오랜 세월을 머금은 유물처럼 보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그릇 내부를 휴대폰으로 찍어서 확대해 보라.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무수한 별 같지 않으냐”며 “인도의 시인 카비르가 그릇 속에 우주 만물이 들어 있다고 말한 시 구절에 공감해 동명의 시 제목을 따왔다”고 했다.
실제 인도인들이 사용했던 철제 식기를 납작하게 펴고 그 위에 또 다른 식기들을 얹은 ‘프루스트 매핑’도 흥미롭다. 굽타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마들렌을 베어 물면 기억을 떠올리는 대목이 내가 하는 작업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내 작품에 사용된 낡은 그릇에도 사람들의 경험과 추억, 갖가지 감정이 스며 있다”고 했다.
한국의 그릇이 궁금해 남대문 시장 그릇 도매 상가를 다녀왔다는 그는 “유명한 사람이든 하층민이든 우리는 모두 밥을 먹고 일상을 영위하고, 인도의 다양한 계층이 사용하던 그릇이 결국엔 다 한데 모여서 고철로 재활용된다”고 했다. 전시는 12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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