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자연도, 기업도… 생존 넘어 超생존이 답이다
10년 후 먹거리는 아예 언감생심… 하지만 자연의 진화 법칙은 달라
생존 넘어 초생존의 길 가려면 유리한 변화 양산하는 조직 필요
경기 어렵다 선발대 지원 끊으면 결국 모두에게 필멸의 길
스타트업 생태계의 일원이 되면 최근 경기가 어떤지는 뉴스를 보지 않아도 체감할 수 있다. 그렇다. 지금은 모두가 생존을 걱정하는 시기다. 한껏 올라간 기준금리는 떨어지지 않고 주가는 바닥을 긴 지 오래다. 게다가 우리 경제력의 큰 부분을 담당했던 반도체 산업의 미래도 장밋빛이 아니다. 미래 먹거리인 AI, 배터리, 바이오 산업도 변수가 많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고들 한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일반적인 대응은 돈을 못 버는 조직부터 없애는 결정이다. 비용만 쓰는 조직이니 소중해도 유지하기가 힘들다. 10년 후 먹거리를 위해 실험하는 전담팀을 야심 차게 만든 기업의 대표들도 이렇게 힘든 시기에는 흔들리기 쉽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기업 내의 수많은 탐험가 집단이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진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대개 10년도 참지 못하는 근시안들이다.
시야를 획기적으로 넓혀 무려 40억년의 생명의 역사를 보자. 38억년 전쯤부터 시작된 세균의 세계는 엄청나게 다양해졌고, 우리가 속해있는 진핵생물의 세계는 훨씬 더 다양해졌다.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종이 현존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대략 수천억 종), 생태학자들은 탄생한 종 중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 종은 대략 10퍼센트 미만이라고 추정한다. 바꿔 말하면, 생명체의 90퍼센트는 멸절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생명의 세계에서도 멸절은 규칙이지 예외가 아니다. 생존이 예외다.
기업의 생태계도 비슷하다. 미국의 대표적 주가지수인 S&P500에 따르면(2021년 기준) 기업의 평균수명은 22년이고 이 수명이 점점 짧아져 2027년에는 16.4년 정도가 될 것이다. 1965년에는 33년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0~40% 정도 하락했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2016년 기준) 신생 기업의 약 20%가 첫해에 문을 닫고 5년 이내에 50%가 사라진다. 국내의 경우(2020년 기준), 스타트업 5년 차 생존율은 34% 정도로 미국보다 낮고 OECD 회원국의 평균치에 해당된다. 존속 시간의 스케일 차이만 있을 뿐, 생명과 기업의 세계는 비슷한 운명의 패턴을 보인다. 즉, 대부분이 실패한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는가? 그렇다면 자연에서 성공의 원리도 한번 배워보자. 코스타리카의 숲에 가면 기가 막힌 등판이 달린 여치를 만날 수 있다. 보통 여치와 달리 이 여치의 등판은 나뭇잎만큼 넓고 실제 잎맥 같은 것이 그려져 있다. 물론 누가 그린 게 아니다. 심지어 벌레 파먹은 모양도 있다. 이 또한 벌레가 파먹은 게 아니고 그렇게 생긴 것이다. 아마 여치를 잡아먹으려는 새들이 이것을 필경 나뭇잎으로 착각할 것이다. 놀라운 적응이다. 다윈은 자연계의 이런 놀라운 형질들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자연적 원인으로 설명하기 시작한 최초의 과학자였다.
그 원리란 바로 자연선택 메커니즘이다. 자연선택이 작용하려면 변이가 존재해야 하고 그 변이가 생존과 번식에 차이를 불러일으켜야 하며 또한 대물림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알고리즘적으로 반복되면 그런 변이들이 누적적으로 선택되어 결국 아주 정교한 적응들을 만들어낸다. 여치의 등판처럼.
그런데 이 정도의 놀라운 적응도 오래는 못 간다. 짧게는 몇십년에서 길게는 몇만년(생명의 역사에서는 눈깜짝할 만한 시간도 아닌)이면 종 자체가 사라진다. 자연을 본받아 새로운 변이(제품과 서비스)들을 만들어 시장 환경에 적응하려는 기업들에는 이 또한 힘이 빠지는 소식이다.
하지만 생명의 역사를 더 깊이 파보면 긍정적인 통찰도 얻어낼 수 있다. 고생물학자들에 따르면 동물들이 빅뱅처럼 한꺼번에 탄생한 캄브리아기(5억4000만년전~4억8000만년전) 이전에 체절(절지동물 등의 몸을 이룬 낱낱의 마디)은 이미 있었다. 그 이후로 체절은 동물계를 엄청나게 다양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체절의 수를 달리하거나 체절에 어떤 부속지(다리, 눈, 날개 등)를 붙이는지에 따라 수없이 많은 변이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번 탄생한 체절은 지구상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여치 등판과 체절의 진화는 수준이 다르다. 등판이 생존이라면 체절은 초생존(생존의 수준을 넘어 영속적 성공의 진화 경로로 들어선 상태) 시스템이다.
우리 기업이 생존을 넘어 초생존의 길로 들어서려면 체절 발생 시스템처럼 ‘유리한 변이를 양산할 수 있는 조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중견기업 이상에서는 사내 벤처 또는 자회사 격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실험들을 본진의 간섭 없이 시행할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은 그 자체가 체절 같은 존재이니 그들이 계속 새로운 변이를 만들어낼 수 있게끔 정부, 지자체, 투자사들이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경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선발대 지원을 끊으면 결국 모두가 필멸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국가 전체 측면에서도 일상의 행정을 넘어 새로운 것들을 지속적으로 실행해보는 조직을 두어야만 생존의 위기를 넘을 수 있다. 이것이 자연에서 배우는 초생존의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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