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210] 전라도 돔배젓
이젠 살 만하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이번 여름이 너무 더워 힘들었던 탓이다. 이것이 어디 날씨 탓할 일인가. 지구촌 우점종인 호모사피엔스의 욕심이 만들어 놓은 결과가 아니던가.
여름은 길어지고, 가을은 짧아졌다. 가을 입맛을 돋우던 전어의 유효 기간도 짧아졌다. 짧은 시간에 그 맛을 찾는 사람이 많다. 어시장에서 새우를 사려고 기웃거리다 전어 시세를 물었더니, 3만원이란다. 추석 때보다 1만5000원이 내렸다. 새우는 뒤로하고 전어회를 주문하고, 내친김에 밤젓도 챙겼다. 전어 내장 중 밤톨만 한 위(胃)로 담근 젓갈이다. 전어를 손질하면서 위만 모아서 천일염을 뿌려 담그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 맛을 즐기는 가정에서나 챙겨 담는다. 통영이나 여수, 고흥이나 벌교 젓갈 집에서 간혹 만날 수 있다. 전라도에서는 돔배젓이라고도 불렀다.
돔배젓을 처음 맛보았던 곳은 여수다. 해산물이 풍부한 도시다. 광양만, 여자만, 가막만, 장수만, 봇돌바다 등에 걸쳐 바다와 맛 그리고 섬과 갯벌이 좋다. 해산물 맛이 깊은 이유다. 오랫동안 제철에 맞춰 선어나 활어를 찾는 인연으로 단골집에서 돔배젓 한 통을 받았다. 사실은 전어회를 부탁하면서 전어 위를 모아달라고 했다.
이후에 귀한 돔배젓을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적도 있다. 서울 한복판 식당에서 회를 주문했는데 초장 대신 돔배젓을 내놓았다. 그리고 상추 대신 해조류를 내놓았다. 회와 해조류와 돔배젓, 생소한 조합인데 자꾸만 손이 갔다.
생선 내장으로 담근 젓은 발효가 잘되고 감칠맛이 깊다. 그래서 생선을 통째로 젓갈을 담글 때 내장을 제거하지 않는다. 내장만으로 담글 때는 씻지 않고 소금을 뿌려야 한다. 서울에서 먹었던 것처럼 쌈장으로 먹으려면 족히 1년 내지 2년은 되어야 한다. 돔배젓은 내장의 쌉쌀한 맛이 가시고 골골한 맛이 뻗쳐 올라올 때가 좋다. 밤젓보다 돔배젓이라 해야 그 맛이 떠오르고, 깊은 맛을 뜻하는 ‘게미’라는 전라도식 표현이 떠오른다. 전어회와 함께 막 담근 돔배젓을 들고 나오는데 안주인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린다. “3개월 정도 놔뒀다가 아무것도 넣지 말고, 매운 고추 썰어 넣고 고춧가루로 무쳐요. 그럼 맛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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