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40] ‘에혀 미식회’ 해체하다
친구들과 미식회를 하나 만들었다. 코로나가 서울 식당 지도를 바꾸기 전 일이다. 남자 넷이 맛있는 걸 찾으러 다니다 생각했다. 회비를 걷어 정기적으로 밥 먹는 모임을 만들자. 나머지 멤버도 동의했다. 이름은 에혀 미식회가 됐다. 계산서를 받으면 “에혀” 하고 한숨이 나온다는 의미다.
모임을 결성한 곳은 서울 최초 미슐랭 가이드 별 3개를 받은 ‘모수’였다. 요즘 인기 있는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 요리계급전쟁’의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가 운영하는 곳이다. 서울에서 셋째로는 비쌀 법한 식당서 만든 모임이니 “에혀” 소리가 붙어버린 것이다. 이름을 좀 근사하게 바꾸려다 실패했다. 중년 남자들은 모임 이름을 세련되게 붙이려는 순간 3배는 느끼해진다.
‘에혀 미식회’는 해체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만날 기회가 줄었다. 만나서 뭘 먹을 수 없으니 유명무실해졌다. 어떻게든 살려 보려 했으나 또 어른은 어른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다. 나조차도 오로지 미각의 환희를 위해 냄새와 형태로는 정체가 무엇인지 판별조차 할 수 없어서 설명서 따위가 필요한 음식을 그 돈을 주고 먹어야 하느냐는 윤리적, 아니 재정적 고뇌에 사로잡혔다.
‘흑백요리사 : 요리계급전쟁’으로 요즘 카톡 창이 어지럽다. 내가 아는 모두가 이 요리 예능을 보고 있는 모양이다. 파인다이닝 예약도 방영 전보다 늘었단다. 혹시 이 프로그램이 기울어가던 한국 파인다이닝 시장을 살릴 것인가? 모르겠다. ‘피지컬: 100′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국인 평균 피지컬이 나아졌던가.
‘에혀 미식회’ 재결성은 힘들지도 모르겠다. 이 칼럼을 어머니가 보신다면 “매달 프리랜서로 남의 돈 겨우 받아 살면서 미슐랭? 미쉐린? 엄마는 언제 한 번이라도 그런데 데려가 본 적 있냐”며 한탄하실 것이다. 그래도 혹시 ‘에혀 미식회’에 참가하고 싶은 분들 계시다면 연락주시라. 자격 조건은 하나다. 계산서를 받는 순간 “에혀” 소리가 나올 만큼 통장이 얇아야 한다. 그래야 스릴의 익힘 정도가 타이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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