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거리두기]AI 디지털 교과서, 혁신인가 유행인가
“잠자는 교실을 깨우겠다”고 윤석열 정부가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야심만만하게 추진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로 드러난 인공지능의 부작용과 문제점에 관한 우려가 증대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딥페이크의 위험에 관한 소란스러운 공포가 오히려 인공지능의 혁명적 성격을 은폐한다면, 심도 있는 논의와 토론은커녕 소리 소문도 없이 진행되는 인공지능의 개발과 활용은 우리의 삶과 사회에 훨씬 더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제까지 종이책 교과서로 가르치던 전통적 교육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AI 디지털 교과서가 그렇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가장 취약한 국가인 대한민국을 디지털 교육 강국으로 탈바꿈하겠다는 듯이 현 정부는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인공지능 접근성이 높고 디지털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다면, 인공지능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모두 다른 나라보다 더 선명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인공지능에 대한 윤리적, 법적 규제를 선도할 수 있으며, AI 디지털 교과서의 선진적 도입은 인공지능 시대 새로운 교육방식의 모델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의 혁명적인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인공지능을 광범위하게 도입하기 이전에 그 문제점에 관한 충분한 논의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공지능은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의 탄생만큼이나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우리의 의식주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일하고, 여행하고, 건강관리를 받고, 서로 소통하는 방식을 바꿀 것이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는 지성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공지능 시대에 교육방식이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에 대한 교육방식이 바뀌려면 무엇보다도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에 관한 교육철학이 바뀌어야 한다.
사회적 논의 별로 없이 도입 박차
그런데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의 의미와 기능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별로 없으면서도 도입 준비는 시간표에 맞추듯 착착 진행되고 있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2025년부터 국어, 영어, 수학, 정보 과목부터 시작하여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대상으로 도입한다고 한다. 기존의 종이책 교과서와 함께 AI 디지털 교과서가 함께 사용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AI 디지털 교과서는 단순히 수업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공지능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역량 교육’에 초점을 맞춘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교원 역량 강화 연수에 참여한 교사의 대다수가 디지털 교과서의 교육적 효과에 의문을 표명하며 전면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기존 교육방식을 혁신하고 미래 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동력으로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그 역할과 의미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강화해야 한다. 그것은 AI 디지털 교과서의 장단점을 단순히 비교하는 걸 넘어서야 한다. 정부가 제시하는 AI 디지털 교과서의 장점은 챗GPT의 답변처럼 표준화되어 있다.
첫째, AI 디지털 교과서의 가장 중요한 장점 중 하나는 개인화된 학습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기존 교과서와 커리큘럼은 대체로 모든 학습자에게 맞는 단일 접근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일부 학생은 뒤처지고 다른 학생은 도전이 부족하여 흥미를 잃을 수 있다. 반면 AI 디지털 교과서는 개별 학생의 성과를 분석하여 어느 부분에서 부족한지를 파악하여 학습자의 현재 이해 수준에 맞는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둘째, AI 디지털 교과서는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한다. 기존 교실 환경에서 학생들은 과제가 채점되고 반환될 때까지 며칠 또는 몇 주를 기다리는데, AI 교과서는 퀴즈와 연습 문제를 풀면 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학생들이 실시간으로 실수를 파악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즉각적인 피드백은 적극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학습 과정을 촉진할 수 있다.
셋째, AI 디지털 교과서는 상호작용의 학습 경험을 지원한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비디오, 시뮬레이션, 대화형 문제 세트와 같은 멀티미디어 요소를 통합함으로써 학생들이 복잡한 개념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화학 반응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 책을 읽는 대신 프로세스 시뮬레이션을 시청하고 변수를 조작하여 결과를 볼 수 있다.
끝으로, AI 디지털 교과서는 유연성과 접근성을 증진한다. 학생들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교과서에 액세스할 수 있다. 이러한 유연성은 교육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교육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AI 디지털 교과서는 다양한 학습 요구 사항을 수용하여 조정 가능한 텍스트 크기, 언어 번역, 멀티미디어 지원과 같은 기능을 제공하여 모든 학생이 자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장점들이 제대로 구현되면 AI 디지털 교과서는 실제로 잠자는 교실을 깨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교실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궁금증에 교육부가 내놓은 답변은 교육혁명에 가깝다. “우리 학생들이 더 많이 질문하고, 더 많이 토론하며, 더 많이 협력하는 교실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질문과 토론과 협력의 역량이라는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챗GPT에게 질문을 잘하는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그동안 질문하는 능력은 학교나 교실에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가르치는 내용과 방식을 혁명적으로 180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질문하는 역량 훼손시킬 우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질문을 잘하는 능력’이지 인공지능과 ‘챗GPT에게’ 질문을 잘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아니다. 방향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잠자는 교실을 깨우기 위해 도입한 AI 디지털 교과서의 가장 커다란 단점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질문하는 능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학습의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디지털 격차에 따라 활용도의 차이가 있고, 학습 데이터를 분석할 때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것도 AI 디지털 교과서의 문제점이기는 하지만,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인간의 핵심역량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연구는 AI 디지털 교과서가 균형 잡힌 교육의 필수 구성 요소인 ‘비판적 사고’와 ‘추론 능력’의 개발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독서 및 교실 토론과 같은 전통적인 학습 방법은 학생들이 자료 수집에 깊이 관여하고, 다양한 의견과 주장을 분석하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식화하도록 장려한다. 반면 AI 디지털 교과서의 적응적 특성으로 인해 학생들이 즉각적인 피드백과 자동화된 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독립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의 필요성이 감소할 수 있다. AI 디지털 교과서의 장점인 ‘즉각적인’ 피드백이 오히려 한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역량을 훼손한다. 전통적인 학습 환경에서 학생들은 종종 복잡한 질문을 생각하고, 모호함과 씨름하고, 답에 도달하기 전에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비교적 긴 이해의 과정은 비판적 사고력을 개발하는 데 중요하다. 학생들이 AI 기반 시스템으로부터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면 이러한 반성적 문제 해결 과정에 참여하려는 동기가 약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시대 전환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토대로 원칙을 가지고 변화하는 것이 ‘혁신’이라면, 아무런 철학도 없이 시대 전환에 편승하는 것은 단순한 ‘유행’에 지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면, 인공지능으로 인해 훼손되는 것도 있다는 점을 통찰해야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우리에게서 빼앗는 것이 비판적 사고의 핵심 역량이라면, 우리는 AI 디지털 교과서를 더욱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어떤 질문과 논의도 없이 진행되는 AI 디지털 교과서의 도입이 잠자는 교실을 깨우기는커녕 질문하는 역량을 더욱 잠들게 하지 않을까 두렵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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