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에도 사람 살리는 인연과 호의… 그 힘은 무엇일까
‘사람 살리는 일이 가장 위대한 일’ 천착
2013년 단편인 ‘빛의 호위’ 이야기 확장
사진가 권은·기자 승준 재회 7년 후 그려
서로 호의가 그 온기 타고 삶으로 이어져
“난민들 이용 아닌 진실 담아 그리려 노력
빛이 퍼져가듯… 구원의 서사 담고 싶었다”
2022년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소설가 조해진은 다시 한 번 전쟁의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전쟁의 무의미함과 그 속에서 꽃핀 사랑과 생명의 연대, 호위의 연대에 대해 쓰고 싶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이니까. 생각해보니 이는 오래전에 썼던 단편 ‘빛의 호위’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빛의 호위’는 2013년 잡지에 발표됐고, 2017년에는 소설집으로도 출간됐다.
우연히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여성들과, 이들 여성과 연대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를 읽었다. 거기에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환대로 받아준 영국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인상적이었다. 그러다가 문뜩 한 여성이 툭, 튀어나왔다. 애나였다. 애나에서 이야기가 확장하기 시작했다.
승준과의 인터뷰 이후 시리아에서 왼쪽 다리 절반을 잃은 권은은 자신이 닮고 싶었던 사진가 게리 앤더슨의 여동생 애나의 부탁을 받는다. 권은은 애나의 영국 집에서 게리의 아버지이자 젊은 시절 드레스덴 폭격작전을 수행했던 콜린의 삶을 되짚은 영상을 제작 편집한다.
삶이 빛이 깃드는 비범한 순간을 포착해온 조해진은 왜 전쟁의 포화가 가득한 빌어먹을 이 세상에서 인연과 호의의 태엽을 감아야 했을까. 그가 쏘아 올린 호의의 빛과 멜로디는 어떤 모습일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조 작가를 지난 3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집필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저와 시대나 지역이 겹치지 않는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저는 소속 기관이 없어서 전쟁지역을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분쟁지역을 활보하는 기자나 사진작가를 상상할 때는 책이나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인물의 마음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제가 가보지 않고 살아보지 않은 곳의 사람들을 쓰려면 핍진성을 더욱 추구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람을 죽이려고 태어나지 않았다’는 드레스덴 공습에 참여한 영국군 출신 콜린의 대사나, ‘나는 지금도 허공에 총을 쏜다’는 할머니 라리사의 대사 등은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한 노력 끝에 나온 대사들이다.”
―타자의 고통을 소비하지 않으려는 권은과 게리의 사진 철학도 인상적인데.
“살고 싶다는 의지를 증여하는 순간을 쓰고 싶었다. 어떤 인물의 절망 순간을 쓰면서도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구원되고, 그 기억으로 또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는 서사까지 생각했던 것 같다. 빛이 사람을 통과해서 영사기처럼 더 넓게 퍼져가는, 빛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1976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조해진은 2004년 중편소설 ‘여자에게 길을 묻다’로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등을,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등을 발표했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느긋하게 일어난 뒤 우선 따뜻한 차부터 한 잔 마실 것이다. 마감이 급하지 않다면 책부터 읽고, 밥을 간단히 먹은 뒤에 서너 시간 정도 글을 쓴다. 마감을 한 뒤, 약속이 없다면 인근 공원에 나가서 7000보쯤 걷거나 요가를 한다. 밤에 와인을 한 잔 마시고 다시 책 속으로. 아니면 미처 마치지 못한 상상의 세계로.
몇 해 전부터 전업으로 글만 쓰고 있다는 소설가 조해진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자신의 일상과 글쓰기 루틴을 들려주었다. 결국 도시가 불온한 어둠으로 포위될 때면, 그는 다시 공감과 연민의 태엽을 감고 호의와 연대의 멜로디를 보낼 것이다. 어느 뒷골목에서 실패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나, 삶과 죽음이 갈리는 경계의 끝자락에서 서성이는 이들의 마음을 찾아서. 그리하여 어느 날엔 삶과 죽음이 선명히 갈리는 바그다드의 어느 병원에서 새 운명을 만나는 게리의 마음도….
“아기는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것을 모르는 듯 그를 올려다보며 생긋 웃었고, 그가 오른손 검지를 그 작은 손바닥에 올려놓았을 땐 아주 꼭, 있는 힘껏 꼭, 잡아주었다. 그 순간 그는 흐느꼈다.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은 아기의 손가락 언어가 그대로 전달되어서였을 것이다. 그날 숙소로 돌아간 그는 두 가지를 결정했다. 언론사를 그만두는 것, 그리고 사람들 속에 섞여 살면서 죽음이 아니라 삶에 가까운 사진을 찍는 것….”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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