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뿐인 사람’, 초단절 사회 [세상읽기]

한겨레 2024. 10. 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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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준 | 아무나유니온 대표

“나쁜 놈 어원이 뭔지 아세요?” 청년은 대뜸 이렇게 물었다. 어리둥절한 사이에 ‘나뿐인 놈’이란다. 낮다는 뜻의 ‘낮브다’가 어원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요즘 세상은 나뿐인 사람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각자도생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각자 생존하려 발버둥 칠수록 나뿐인 사람이 된다. 이는 서로 의지하며 진화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속성에 어긋난다.

사회는 다정한 곁이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사회는 나를 기르고 보호하는 가족이다. 자라며 만나는 사회는 친구다. 성인이 되어 뛰어든 직업의 세계도 사회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면, 집단 따돌림에 시달리면, 직장에서 갑질에 시달리면, 내 곁의 힘이어야 할 사회는 사라진다.

사회는 스스로 망치지 않는다. 외부 충격에 뒤틀리지 않는 한 스스로 망치려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나만의 이익을 챙기려는 시장 경제나 권력을 노리는 난폭한 정치가 사회를 위협했다. 칼 폴라니는 저작 ‘거대한 전환’을 통해 시장과 국가의 위협에 맞선 사회의 자기 보호 운동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지금도 사회는 공격받아 시달리며 위축된다.

경제력 세계 10위권 진입 이력, 인구 5천만명 이상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 세계 6위, 외환보유고 세계 9위라는 경제 통계는 대단하다. 돋보이는 정치 통계도 있다. 박상훈의 책 ‘혐오하는 민주주의’에 따르면 2021년 대한민국 정당원 수는 총 1042만9천여명으로 인구 대비 20.2%, 유권자 대비 23.6%로, 영국의 인구 대비 2%, 스웨덴 등 유럽 각국의 3% 안팎인 수준은 물론 중국의 인구 대비 7.1%를 훨씬 능가한다. 그에 견줘 삶의 만족도, 자살률, 출산율 등 사회 통계는 처참하다. 경제는 성장했고 정치는 확장되었지만, 사회는 납작하게 눌려 있다.

시장 경제의 상품 생산 기지인 공장은 담 넘어 확장되었다. 컨베이어 벨트를 대신한 플랫폼이 ‘사회공장’의 생산라인이다.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어서 곳곳에 스며 있다. 컨베이어 벨트는 모여서 일하게 했지만, 플랫폼은 흩어져 일하게 한다. 같은 직업을 가진 동료와 오감을 통한 상호작용이 어렵다. 온라인에서 초연결 시대일지 몰라도 오프라인은 초단절 상태다. 사회공장의 독립노동자(비임금노동자)는 단절되어 권리 사각지대에 있다. 이들에게 다정한 곁으로서 사회는 희미하다.

의회에서 성숙하지 못하는 정치는 먹고사니즘을 들먹이며 경제에 꽂혔다가 역사 이데올로기 싸움을 불붙이고 사법적 공격과 탄핵 압박을 오가며 사회 보호 경로를 이탈한다. 지지 정당이 집권하면 어용단체처럼 움직이고 실권하면 정권 퇴진을 외치는 사회단체는 사회로서 독립된 비전을 보여줄 수 없다. 쓰다가 버려지는 상품이 되기를 거부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만든 노조는 실리에 집착해 시장 경제에 휩쓸리고, 정치세력화를 추앙하는 상층의 정치 도구가 되면 사회로서 기능이 약해져 경로를 이탈한다.

챗지피티에 견줄 사회이론이 있을까. 관심을 끄는 새로운 기술은 계속 나오지만, 대중적 주목을 받는 사회이론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기술과 함께 개발되는 것이 있다. 나쁜 짓이다. 온라인 공간의 폭력인 ‘사이버불링’과 이를 둘러싼 페미니즘 사상 검증 논란, 엔(n)번방을 넘어 딥페이크 논란이 줄을 잇는다. 미국에서는 딥페이크를 선거운동에 이용하는 일도 벌어진다.

멸종위기종에 인류는 자기밖에 모르는 나뿐인 생물이다. 4차 산업혁명이 타오르고 사회혁명은 억압된 결과다. 지구 행성의 생태계는 기후위기를 통해 인류에게 다른 사회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 요즘은 사회혁명보다 ‘사회대전환’ ‘체제전환’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지만, 우리를 자극할 새로운 이론은 보이지 않는다. 낡은 사회이론은 다른 세계로 가는 경로를 보여주지 못하고 기술권력 앞에 내던져진 것은 오직 우리의 몸뚱이다.

진화를 통해 학습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은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족을 지키려는 것이다. 친구와 즐기려는 것은 우정이 흐르는 사회를 향한 열망이다. 흩어져 일하는 독립노동자가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사회를 향한 열망이다. 동물권을 생각하는 사람은 인간 너머로 사회를 확장한다. 기후정의 운동도 지구 사회를 향한 열망이다. 이런 체험이 쌓여 새로운 사회이론이 탄생하고 확장될 때 마침내 사회의 자기 보호를 위한 거대한 물결이 출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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