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류는 정말 멸종하는 건가요?

한겨레 2024. 10. 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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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37) ‘인류 멸종 박람회’ 사건2
2019년 4월19일 멸종저항 등 환경단체가 영국 런던 워털루다리를 점거하고 있다. 열흘 동안 런던 전역에서 진행된 이 시위는 시민 불복종과 행동주의를 표방한 ‘멸종저항’을 세계에 알렸다. 남종영
이번 세기 안에 60억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정말 무서워요. 짐 싸서 화성으로 이주해야 할까요? 비밀리에 화성 이주민을 모집하는 기업으로부터 제안이 왔어요. 전 재산을 팔아도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무리해서라도 가고 싶어요. (☞36회에서 이어짐)

인류 멸종 박람회가 열리는 서울시 강남구 코엑스의 전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어요. 제5차 산업혁명의 신화적인 인물 일론 마스크가 참석한다고 해서 카메라를 든 기자들도 돌아다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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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는 ‘자발적 멸종 운동’ 회원들이 “우리가 오래오래 살다가 죽기를!”(May we live long and die out!)이라는 표어 앞에서 서명을 받고 있었어요. 인간의 멸종이 지구의 다른 생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번식을 자제’하고 ‘평화적 멸종’을 다짐하는 서명을 받는 것이었죠.

신기술로 멸종을 막는다고?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자발적 멸종 운동 빼고는 기업들의 홍보 전시장 같은 풍경이네요.”

인류 멸종 박람회를 둘러본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의 왓슨 요원이 말했습니다.

“그러게. 자본과 기술로 기후변화를 해결하겠다는 얘기밖에 없군.”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부스는 ‘탄소 먹는 하마’ 시연장이었어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하는 장치였죠.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이 대형 송풍기처럼 생긴 기계를 가리키며 설명했어요.

“이 기계는 매년 3만6000톤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내연기관차 8600대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겁니다. 앞으로 우리는 나무를 심을 필요가 없습니다. 탄소 먹는 하마가 온실가스 농도를 관리해 주니까요.”

고개를 갸웃하며 왓슨이 질문했어요.

“이 기계만 있다면, 앞으로 우리 생활이 좀 편해지는 겁니까? 지하철 안 타고 막 승용차 타고 다녀도 됩니까?”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한국인이 평균 연간 13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약 2800명 인구의 마을에 하나씩 설치하면, ‘온실가스 순배출량 0’의 탄소중립이 이뤄지는 겁니다. 탄소 먹는 하마는 앞으로 탄소중립의 미래를 여는 총아입니다. 정부의 기후기술 육성 사업 대상에 선정돼 상용화만 마치면…”

그다음으로 사람이 많이 몰린 곳은 인공위성 전시장이었어요. 칠성거울공사가 개발 중인 ‘우주거울 백설호’였죠. 난쟁이 코스튬을 한 홍보요원들이 거대한 거울이 달린 인공위성 앞에서 설명하고 있었죠.

“2700명에 한 대씩 그 기계를 언제적에 설치하려고요? 그러는 동안 인류는 멸종합니다. 하지만, 마법의 우주거울 함대를 지구 궤도에 쏘면 한 방에 해결됩니다.”

우주거울 아이디어는 사실 반세기가 넘는 역사가 있어요. 원리는 단순해요. 우주거울을 장착한 인공위성 함대를 지구 궤도에 올린 뒤, 태양에너지를 반사해 지구로 들어오는 에너지의 양을 줄이면 되는 거예요. 2020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선 앤드루 양은 개폐식 우주거울 설치 등 구체적인 계획까지 제안했어요.

전직 과학자로 보이는 한 백발노인이 말했어요.

“여보시오! 아직도 눈먼 정부 예산과 바보 벤처 투자자의 등골을 빼먹으려고 장사하고 있군. 지구 온도를 낮추려면 수십 억개의 거울이 필요할 것이오. 인류 멸종은 무슨!”

2019년 4월25일 멸종저항의 런던 시위가 끝난 직후 하이드파크 근처 마블아치에 세계적인 미술가 뱅크시의 그래피티가 등장했다. ‘이 순간부터 절망은 끝나고 전술은 시작된다’는 문장이 쓰여져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즈

그때 전시장 장내 방송이 울렸어요.

“제5차 산업혁명의 개척자이자 기술자, 기업인인 일론 마스크씨의 중대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참석자와 언론인 여러분은 콘퍼런스 홀로 모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일론 마스크는 평소 모습대로 청바지에 하얀 티 그리고 마스크를 쓴 채 연단에 올랐어요.

“기후변화로 지구는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인류도 금세기 안에 멸종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여러분의 자식, 손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자, 이 노래를 들어주십시오.”

대형 화면에 구릿빛 원반 모양의 음반이 떴어요. 음반이 돌아가더니, 몽환적인 ‘혹등고래의 노래’가 흐르기 시작했죠. 심연의 바다에서 고래 두 마리가 부르는 아리아였어요.

“미항공우주국(NASA)은 1977년, 이 음반을 보이저호에 실어 우주로 보냈습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곡 등 지구와 인류의 미적 표현 가운데 마지막 남을 조각이 될지도 모를 것들이 담겼죠.”

화성 이주단에 159명 자원했다는데

청중들은 혹등고래의 노래를 신비해하며 듣고 있었어요. 마스크는 코 밑으로 내려간 마스크를 바로잡은 뒤 말을 계속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3년 전, 우주에서 누군가 혹등고래의 노래를 보내고 있는 걸 우리가 포착했습니다. 우리 스페이스에스 그룹은 이 신호를 분석했고 바로 그 발신지가 화성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청중석에서 큰 탄식이 이어졌습니다. 화성이라면 스페이스에스가 인류 멸종을 피해 이주하겠다며 대대적으로 발표한 곳이었거든요. 스페이스에스는 물론 미항공우주국도 화성에 유인 우주선 한 번 착륙시킨 적이 없었지만요.

“그래서 우리는 비밀리에 제1차 화성 이주단을 모집했습니다. 159명의 남녀가 자원했습니다. 이들을 소개합니다!”

일론 마스크의 손짓에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 있는 우주 발사장이 대형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남녀가 우주복을 입고 도열해 있었죠. 마스크가 설명했어요.

“화성에 도착해 고래의 노래를 듣고 다시 보낸 지적생명체와 교류하면서, 앞으로 지구를 탈출할 사람들의 기반을 준비할 대원들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전쟁과 기아 그리고 대폭염과 홍수를 피해 가장 먼저 우주를 개척하는 대원들에게 손뼉을 쳐주십시오!”

홈스와 왓슨도 함께 박수를 치고 있는데, 159명 중 단 한 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여자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고 있는 것 같았어요. 159명은 한 줄로 서서 화성행 로켓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울면서 어깨를 들썩이던 여자는 갑자기 대열에서 이탈해 도망치기 시작했죠. 검은 양복을 입은 보안요원이 달려들어 그녀를 붙잡고 우주선으로 넣었습니다. 홈스가 말했습니다.

“저 여성, 혹시 우리에게 제보한 사람 같은데?”

인류 멸종 박람회에서는 선진 자본과 기술을 이용해 인류 멸종을 막자거나 아니면 지구를 떠나 우주 식민지를 개척하자는 주장, 둘 중 하나였습니다. 모두들 인류 멸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 했어요. 그나마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은 ‘인류 멸종 심포지엄’이었습니다

‘극단적 기후변화’도 연구해야 됩니다

첫 번째 발표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실존위험연구센터(Centre for the study of Existential Risk)의 루크 캠프 연구원이었어요. 헛기침을 한 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화면을 띄웠죠.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보고서:

• 각 나라가 2030년 목표치를 달성하면, 2.4도(1.9~3도) 상승 (한국의 경우 2030년 40% 감축)

• 각 나라가 중장기 목표를 달성하면, 2.1도(1.7~2.6도) 상승 (한국의 경우 2050년 온실가스 배출 0%)

“우리 연구소는 인류 멸종이나 문명 붕괴로 이끄는 위험을 저감하고 연구하는 곳입니다.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IPCC는 3도 이상의 미래의 온난화 세계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총 영향에 대한 정량적 추정치도 거의 없죠. 왜냐하면, 대부분 과학자가 1.5~2도의 상승에만 집중해 연구했고, IPCC 보고서 또한 기존 연구를 검토, 평가, 종합해 제작되었기 때문이죠. 아마도 2015년 파리협정이 제시한 목표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은데, 극단적 기후변화는 사회적 재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3도 이상의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합니다.”

홈스가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각 나라가 파리협정 때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거나, 큰 전쟁이 발발하는 등의 비상사태가 발생해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흐름이 끊기면 어떻게 될까요?”

“포인트를 잘 짚어주셨습니다. 비행기는 극소수의 사고 확률에 대비해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하고 시스템을 개선해 나갑니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어떻죠? 지금 우리는 가장 중요한 시나리오에 대해 가장 조금 알고 있습니다.”

두 번째 발표자는 고생물학자 커트 스테이저였습니다.

“멸종이란 무엇입니까? 특정 종의 개체수가 지속 가능하지 않아 결국에는 0에 이르는 현상이죠. 4900만~5400만 년 전의 중생대 팔레오세-에오세 극열기(PETM)는 15도 높은 세계였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동식물이 살았고, 심지어 영장류의 조상도 살았습니다.”

그는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을 나타내는 두 개의 그래프를 화면에 띄웠어요.

“왼쪽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550~600ppm으로 오르는 2도에서 4도까지의 세계입니다. 오른쪽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2000ppm인 5도에서 9도까지의 세계죠. 두 가지 가설 모두에서 인류는 멸종 위험에 처하지 않고 오히려 이점을 얻을 거라 저는 예상합니다. 앞으로 올 빙하기에 진입할 때 오는 문제들을 미리 감소시키기 때문입니다.”

스위스 소재의 기후 전문 기업 ‘클라임웍스’가 지난 5월 아이슬란드에 설치한 직접공기포집장치. 공기를 빨아들여 이산화탄소를 거른 뒤 땅속에 저장한다. 클라임웍스

그때 밖에서 사람들이 일제히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20, 19, 18, 17…”

장내 방송이 울렸습니다.

“이제 곧 제1차 화성 이주단 159명을 태운 로켓이 출발합니다. 박람회 방문객들은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주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5, 4, 3, 2, 1…”

로켓이 굉음과 함께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주최측이 사전에 준비한 듯, 장내에는 ‘혹등고래의 노래’가 잔잔히 울려 퍼졌습니다.

로켓은 파란 하늘을 수직으로 가르며 올라갔습니다. 중계 화면 하단에 고도 14 ㎞가 찍혔을 때였습니다. 오른쪽 보조추진로켓에서 검은 연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조종석의 목소리가 생중계됐습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검은 연기는 점점 커지더니 로켓을 완전히 뒤덮었습니다. 하늘로 치솟던 거대한 불덩어리는 점차 힘을 잃고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로켓은 여러 개의 파편이 되었고 검은 연기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10월14일에 이어집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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