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기사 경고 안듣고, 임의로 화재경보기도 꺼…‘부천 호텔 화재’ 업주·소유주 등 4명 구속영장

김태희·박준철 기자 2024. 10. 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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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경기남부경찰청 부천 호텔 화재 수사본부장이 8일 부천원미경찰서에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준철 기자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부천 호텔 화재’는 열려 있던 방화문, 경보기 작동 임의 차단, 간이완강기 미비치 등 부실한 소방 시설 관리와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인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남부경찰청 부천 호텔 화재 수사본부는 8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호텔 소유주 A씨와 운영자 B·C씨, 매니저 D씨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화재는 810호 에어컨 실내기와 실외기를 연결하는 전선에서 최초로 발생했다.

소유주 A씨는 건물을 인수한 지 1년 뒤인 2018년 5월쯤 객실 에어컨 교체 공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공사의 난이도와 영업지장 등을 우려해 전체적인 배선 교체 대신 기존의 노후 전선을 계속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에어컨 설치업자는 기존에 설치돼 있던 에어컨 실내·외기 전선의 길이가 짧아 작업이 어려워지자 기존 전선에 새로운 전선을 연결한 뒤 절연테이프로만 연결 부위를 마감했다.

전기설비기술기준에 따르면 에어컨 전선은 한 개의 전선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불가피하게 두 전선을 연결할 경우에는 연결 부위에 전선 연결용 안전장치인 슬리브 등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때문에 교체 공사 이후 에어컨 AS 기사가 ‘전선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수차례 경고했지만, 호텔 관계자들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경찰은 총 63개 객실 중 15개 객실에서 육안상으로도 에어컨 전선 결선 상태가 부실한 것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화재 대비는 물론 발생 이후 대처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불이 시작되면서 화재경보기가 작동했으나 매니저 D씨는 화재발생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경보기 작동부터 정지시켰다. 이후 D씨는 8층으로 올라가 810호 객실 내 화재를 목격한 후, 1층으로 다시 내려와 화재경보기를 재작동했다.

최초 화재 경보 이후 경보기가 재작동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총 2분24초로, 만약 경보기 작동이 중단되지 않았다면 사망자가 발생한 호실(802·807·902호) 투숙객 5명이 대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화재 안전 시설의 부실도 피해를 키웠다. 각 객실문은 갑종 방화문(60분 이상 화염을 버틸 수 있는 방화문)으로 돼 있었다. 설계도면에는 문이 자동으로 닫히도록 돕는 도어클로저도 설치된 것으로 나와 있었지만, 실제로 불이난 객실에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화재 당시 810호의 열린 객실 문을 통해 화염과 연기가 복도로 급속히 확산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해당 호텔은 환기 등을 이유로 복도에서 연결되는 지하 주차장 방향 비상구의 방화문을 생수병 묶음으로 고정해 열어뒀다. 또 객실에 간이완강기가 있어야 함에도 일부만 비치하거나 층고보다 짧은 로프를 비치하는 등 관리를 소홀했다. 실제로 부상자 중 한명은 완강기를 이용한 탈출을 시도하려 했지만 비치돼 있지 않아 이를 포기한 사실도 확인됐다.

경찰은 투숙객 중 2명이 에어매트로 뛰어내렸다가 사망한 일과 관련해서는 소방당국에 형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화재 당시 807호에 투숙했던 2명은 복도의 화염이 객실 내로 번져 탈출할 길이 없게 되자 지상에 설치된 에어매트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먼저 뛰어내린 사람이 가장자리에 떨어지며 매트가 뒤집혔고 이후 떨어진 나머지 1명은 그대로 바닥에 추락했다.

경찰은 에어매트를 설치한 지점인 807호 바로 아래는 호텔 주차장 진입로로, 약 7도의 경사가 있고, 일부 굴곡이 있어 매트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밝혔다.

또 에어매트 설치에 관한 체계적 매뉴얼이 없었으며, 설치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소방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부적합한 전기 배선 시공 및 방치, 방화문 등 소방시설에 대한 관리 소홀, 안전교육 미흡에 따른 화재경보기 임의 차단 행위 등이 더해져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며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객실 도어클로저 설치라도 의무화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8월 22일 오후 7시 37분 부천시 원미구 중동 코보스 호텔 810호 객실 내에서 전기적 요인에 의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박준철 기자 terry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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