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개표 불신과 ‘수검표’ 명암[시평]

2024. 10. 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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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美 조지아주 수검표 도입 결정
2020 대선 트럼프 반발 후폭풍
한국도 지난 총선부터 법제화
사람보다 기계 개표가 더 정확
그래도 부정선거 시비 이어져
기술 발전 맞춘 대책 합의할 때

지난달 20일 미국의 조지아주 선거관리위원회가 3 대 2로 이번 대선에서 수개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50개 주 중 수개표를 도입한 곳은 조지아주 하나뿐이란다. 언론은 수개표라지만 사실 수검표가 더 적합한 용어다. 개표원들이 직접 한 표씩 모두 세면서 개표하는 게 아니라, 기계가 먼저 개표한 뒤 그 집계가 정확한지 다시 확인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미국 조지아의 새로운 개표 방식이 결코 낯설지 않은 것이라고 눈치채게 된다. 지난 4월 우리 총선에서 이미 실시했던 바로 그 방식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기계인 투표지 분류기로 먼저 표를 계산한 뒤 개표 사무원이 다시 일일이 오류가 없는지 살펴본 바 있다. 한국에서 투표지 분류기가 일부 해킹 의혹도 받고 정확성에 의심이 남아 수검표를 추가했다. 4월 총선에 우리 과 학생들이 개표 사무원으로 많이 봉사했는데, 그들은 수검표를 하느라 시간만 더 걸렸지 오류는 없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실제로 언론은 총선에서 1만2000명의 개표 사무원을 추가로 동원해 투표지 분류기가 집계한 결과를 다시 수검표했지만, 오류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확인했다.

미국 조지아에서 수검표를 추가하려는 이유도 개표의 정확성을 높이고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선거가 불과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심지어 공화당 내부에서도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데 대한 반대가 있는데, 급하게 수검표를 강행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를 빼고는 설명이 안 된다. 실제로 조지아에서는 2020년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사전투표 개표 뒤 불과 1만여 표 차이로 패배했다. 트럼프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조지아의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고 조직적인 방해 공작을 시도해서 현재도 재판을 받고 있다. 오는 11·5 대선에서도 16명의 선거인단이 배정된 조지아는 대표적인 경합주로 트럼프나 카멀라 해리스 모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개표의 정확성 측면에서 기계와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우월할까. 이는 전문 연구가가 아니더라도 직관적으로 자명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미 정치학계에서는 권위 있는 연구 결과도 더러 제시됐다. 2000년 미 대선 뒤 한 연구는 기계가 투표지를 실제보다 적게 세는 경우는 사람보다 덜하다고 보고했다. 또, 만약 기계는 오류를 일으켜도 어느 한쪽으로만 체계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아 특정 후보가 이득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일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은 오류를 통해 의도적으로 특정 후보를 당선 또는 낙선시킬 수 있다. 결국, 이 연구는 수개표가 기계보다 정확하다고 주장하는 데 주저했다.

미국에서는 또 20개 이상 주에서 선거 뒤 수작업 감사를 제도화하고 있다. 다른 한 연구는 이 감사 결과 수작업 검표가 오히려 오류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수검표가 일반적으로 많은 절차적이고 법적인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잉여적인 재검표와 다중적인 개표 작업이 개표의 정확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지만, 오히려 일관성과 정확성을 해친다고 지적한다. 기계에는 없는 생리적인 차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발생하는 개표원의 다양한 인간적 오류도 개표의 정확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개표 절차와 분업 체계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한 달 뒤 미 조지아에서 4·10 한국 총선과 마찬가지로 수검표가 기계의 정확성만 재확인시키고 끝난다면 개표의 경제적 비용이 훨씬 늘어도 그나마 다행이다. 점차 선거의 규모와 복잡성이 심해지는 데다 과학기술의 발전 덕으로 수개표가 기계나 전자적 개표를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미 조지아에서 수검표 작업으로 개표 관련 크고 작은 법적 시비가 제기되고 소모적인 감정싸움과 소송으로 번져 최종 선거 결과를 발표하는 데 시간만 더 소요된다면 긁어 부스럼 격이 된다. 11·5 대선 한 달 전까지 이미 공화당은 투표 규칙이나 절차와 관련해 전국적으로 100여 건의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다. 2020년 대선 관련 소송 건수의 3배가 넘는다. 수검표가 나중에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할 대선 소송용인지 아닌지는 한 달 뒤면 알게 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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