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 휴스턴 모친’ 그래미 수상자 시시 휴스턴 별세

김서영 기자 2024. 10. 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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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시시 휴스턴(왼쪽)과 딸 휘트니 휴스턴이 2010년 9월 한 행사에 동반 참석한 모습. AP연합뉴스

팝스타 휘트니 휴스턴(1963∼2012)의 어머니이자 가수 시시 휴스턴이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7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휴스턴의 가족은 성명을 내 그가 이날 오전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고인은 그동안 알츠하이머병으로 호스피스 치료를 받아왔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휴스턴은 1933년 뉴어크의 공장 노동자 가정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가족과 함께 교회에 다니면서 5세 때부터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10대 시절 형제들과 가스펠 그룹을 결성해 활동하면서 가수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1960년대에는 R&B 보컬그룹 스위트 인스피레이션의 멤버로 활동하며 데이비드 보위, 닐 다이아몬드, 지미 헨드릭스 등 다양한 가수들의 노래에 코러스를 맡았다. 1969년에는 그룹을 탈퇴하고 솔로 활동을 시작해 어리사 프랭클린, 엘비스 프레슬리 등 당대 최고 가수의 백업 보컬을 했다.

그는 1997년 앨범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와 1999년 앨범 ‘히 리데스 미’(He Leadeth Me)로 그래미 시상식 전통 솔 가스펠 부문에서 두 차례 수상했다. 아울러 반세기 넘게 뉴어크의 뉴호프 침례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활동하며 가스펠 발전에 기여했다.

시시 휴스턴의 2013년 5월 공연 모습. AP연합뉴스

휴스턴은 두 번째 결혼에서 존 휴스턴과의 슬하에 휘트니를 포함해 세 자녀를 낳았다. 휘트니를 최고의 가수로 만든 데에는 그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스펠 음악 전문가 로버트 다든은 2015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휘트니 휴스턴은 최고에게 훈련받았다”며 “어떤 스타일로든 노래할 수 있었던 시시 같은 사람의 훈련과 영향력, 경험이 없었다면 그의 성과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휴스턴은 휘트니의 공연을 함께 다니기도 했고, 휘트니의 ‘하우 윌 아이 노’(How Will I Know)와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I Wanna Dance With Somebody) 같은 히트곡의 백업 보컬을 맡기도 했다.

말년에 딸과 손녀를 먼저 잇달아 떠나보내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휘트니는 2012년 LA 베벌리힐스의 한 호텔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휘트니의 딸인 크리스티나 브라운도 2015년 조지아주 자택 욕조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뒤 6개월 동안 치료받다 사망했다. 휘트니는 코카인 흡입 뒤 심장마비를 일으켜 익사한 것으로 조사됐고, 크리스티나 역시 마약을 복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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