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전쟁 동원될 뻔한 '경북 광산'…세계 1위 공급망 기지로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김익환 2024. 10. 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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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영풍의 이별> ① 영풍그룹의 탄생
日 미쓰비시, 태평양전쟁 주도 제로센·항모 제작
원자재 조달 위해…경북 봉화광산 탐내
'황해도 동향' 최기업·장병희…1960년에 전격 인수
세계 1위 '비철 공급망'…反중국 공급망 전선의 핵심
이 기사는 10월 07일 17:0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사진=연합뉴스

1941년 12월 7일 태평양 한복판. 항공모함 6척을 비롯한 31척의 일본군 전단이 하와이 진주만 기지로 향했다. 항공모함에 늘어선 360대의 제로센 전투기들이 이륙에 나선다. 진주만 공습의 선봉에 섰던 제로센은 우수한 기동력으로 미군 전함·전투기를 격파했다. 제로센과 항공모함으로 무장한 일본 함대는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 서방을 압도하는 전력을 자랑했다. 당시 태평양과 동남아시아 패권을 장악한 최강의 함대였다.

제로센·항공모함을 제작한 회사가 미쓰비시다. 미쓰비시는 일본 산업을 이끈 미쓰이, 스미토모와 함께 3대 재벌로 통한다. 이 회사는 군수품은 물론 여기에 들어가는 각종 광석과 석탄 등 원자재도 차제 조달했다. 이 같은 자원을 채굴하기 위해 일본 전역과 한국, 동남아시아 일대의 광산을 샅샅이 파헤쳤다. 한국인 1500명이 강제노역한 사도광산도 그 가운데 하나다.

미쓰비시는 경상북도 산골의 한 광산에도 탐을 냈다. 1935년 경상북도 봉화군 산골에 자리 잡은 연화광산 개발에 나선 것이다. 연화광산에 묻힌 아연·납을 비롯한 광물을 제로센과 항공모함의 원자재로 활용할 목적이었다. 다행히 상업 생산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화광산은 해방을 맞아 잠시 문을 닫았다. 이후 상업 생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해방을 맞아 국유화한 연화광산을 운영하다가 1960년 민영화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사업자를 물색하다 황해도 봉산 출신 기업인인 최기호·장병희 영풍그룹 창업주가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해방 직후 월남해 1949년 함께 영풍그룹의 모태 회사인 영풍기업사를 세운다. 이 회사는 오징어를 비롯한 수산물을 수출한 회사였다. 오징어를 수출하는 등 외화확보의 최전선에 나서면서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1959년에는 비철 채광업체인 영풍광업을 세우기도 한다. 정부는 1960년에 눈여겨 본 영풍그룹에 연화광산을 넘긴다. 영풍은 광산에서 캐낸 아연광을 제련하기 위해 1970년 인근에 석포제련소를 세운다.

장병희·최기호 공동 창업주 흉상은 지난 28일까지만 해도 서울 논현동 영풍빌딩 1층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성상훈 기자

영풍은 1973년 중화학공업 육성에 나선 박정희 정부의 산업정책에 부응해 울산 온산읍에 제련소도 세운다. 여기를 운영할 고려아연이라는 회사도 설립한다. 고려아연은 영풍 자금과 외부자금이 50대 50로 출자해 출범했다. 고려아연의 초대 사장은 최기호 창업주가 맡기로 했다.

고려아연이 당시 일본 수출시장을 노린 만큼 일본어에 능숙한 최 창업주가 초대 사장에 오른 것이다. 이를 계기로 영풍은 장병희 창업주 후손, 고려아연은 최기호 창업주 후손들이 각각 경영을 맡았다. 장병희·최기호 창업주 일가는 각각 영풍과 고려아연 지분을 엇비슷하게 보유하면서 동업 관계를 유지했다. 포스코그룹이 제철 사업, 영풍그룹이 한국의 비철 사업을 맡아 키우게 된다.

온산제련소와 석포제련소는 아연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1위, 4위 제련소다. 두 가문이 회사를 알차게 키워나가면서 영풍그룹은 한국은 물론 세계적 공급망으로 발돋움했다. 고려아연의 경우 아연, 연, 금, 은, 구리를 비롯한 비철금속 10여종을 연간 120만t씩 생산했다. 압도적 세계 1위 비철기업이다. 광석에서 아연, 연, 은 등을 추출하는 기술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중 패권 경쟁으로 공급망 위기가 불거진 만큼 고려아연의 입지와 위상은 더 커지고 있다. 중국이 전세계 공급망 장악에 나서면서 고려아연의 전략적 입지는 더 단단해졌다. 중국에 대항하는 민주·자유연합의 핵심 공급망 중 하나라는 인식도 번졌다.   

고려아연을 놓고 분쟁을 벌이는 최윤범 회장과 MBK파트너스·영풍도 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들이 이번 분쟁 과정에서 "MBK가 고려아연 중국에 매각할 것"이라거나 "고려아연을 중국에 매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논쟁을 벌이는 이유다. 

영풍그룹 창업주 일가는 일본 태평양전쟁의 군수물자 기지가 될 뻔한 광산을 바탕으로 이 같은 업적을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1980년 최기호 창업주가 타계하면서 이들 동업의 근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②화에서 계속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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