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 평론가가 찬사를 퍼부은 단 한 명의 영화감독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4. 10. 8.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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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나의 작가주의

정성일 지음, 마음산책 펴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정성일은 한국 영화 전성기였던 1990년대 시네필의 필독서나 다름없던 영화잡지 〈키노〉를 이끌었다. ‘평론’이라는 장르의 문턱을 낮춘 ‘대중적 영화평론가’다. 그런 그가 자신의 첫 단독 저서를 단 한 명의 영화감독을 향한 찬사로 채웠다면 궁금해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중국 다큐멘터리 감독 왕빙의 발자취 가운데 저자가 가장 공들여 소개한 작품 〈철서구〉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은 중국의 한 공장단지가 몰락하는 과정을 9시간 11분이라는 아득한 러닝타임에 담았다. “왕빙의 영화는 내게 당신은 영화를 왜 봅니까,라고 물어보았다”라고 말하는 그가 쓴 ‘평론의 정수’가 여기에 있다.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앤드루 릴런드 지음, 송섬별 옮김, 어크로스 펴냄

“그래서 나는 그 세계를 찾아 나섰다.”

느리지만 꾸준히 시력이 사라지는 병이 있다. 망막색소변성증. 작가이자 출판 편집자인 저자는 10대 시절 이 진단을 받았다. 완전한 시력을 가진 사람이 보는 것의 6% 정도를 볼 수 있는 작가는 저녁을 만들거나 아들을 데리고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올 때 시력을 상실한다면 ‘이런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실명을 그저 시각의 사형선고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시력을 잃을수록 눈멂의 세계, 그곳에 존재할지 모르는 가능성들을 궁금해한다. 그렇게 ‘눈먼 자들의 나라’에 발을 내딛기로 결심했고 ‘더 넓은 세계로 떠나는 의도적인 여행의 연대기’가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시티 뷰

우신영 지음, 다산책방 펴냄

“저흰 보이는 게 밥줄이라서요.”

바다를 메워 만들어진 송도가 소설의 배경이다. 필라테스 센터를 운영하며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수미와 의사 남편 석진은 산뜻하고 계획적인 도시의 풍경을 완성한다. 어느 날부터 칼날을 삼키고 병원을 찾는 옌볜 출신의 유화가 석진에게 어떤 균열을 만든다. 소설 속 인물은 강박과 자해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가의 말이 이 소설을 요약한다. ‘거침없이 투명한 시티 뷰를 위해 유리를 닦는 사람과 스릴을 안전하게 감각하기 위해 가짜 암벽을 타는 사람. 평행의 정의에 의거하여 그들은 절대 스칠 일이 없어 보였다. 그 사실을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헛구역질이 났다. 그게 이 소설의 시작이었다.’

 

코번트가든의 여자들

핼리 루벤홀드 지음, 정지영 옮김, 북트리거 펴냄

“역사가 흥미로운 이야기에서 맘 편한 교훈을 제공하는 경우는 좀처럼 드물다.”

18세기 영국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해리스의 코번트가든 여자 리스트〉였다. 성 판매 여성의 신상 명세를 기술한 책이다. 약 40년간 매해 업데이트되며 성 구매자 남성을 위한 카탈로그 역할을 했다. 〈코번트가든의 여자들〉은 리스트의 저작권자인 세 사람을 중심으로 그 역사를 되짚어본다. 리스트에 이름이 실린 많은 여성(그리고 소녀)은 강간이나 성 착취 피해자이기도 했다. 동시에 궁핍과 학대가 일상인 세계에서 어떻게든 스스로 삶을 일구려고 애쓴 보통 사람이었다. 책의 백미는 부록으로 실린 ‘코번트가든 애호가 목록’이다. 저자가 찾아낸 극히 일부의 성 구매자 이름을 밝혀두었다.

 

코리아 체스판(제2권)

남문희 지음, 푸블리우스 펴냄

“한반도 정세의 지정학적인 구조가 30여 년 전과 매우 비슷해졌다.”

책의 구성이 꽤 독특하다. 2023년부터 올해까지 남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중·러·일 등 각국의 움직임을 분석한 기사가 1부에 실렸다. 2부에서는 시간을 30여 년 거슬러 올라간다. 김영삼 정권 후반기에 한반도와 주변국을 무대로 펼쳐진 역사적 사건과 치열한 흐름을 취재했던 옛 기사로 꾸려진다. 1989년부터 시사주간지 기자로 한반도 문제에 천착해온 저자는 1995년이 미국과 중국 간에 ‘심리적’ 신냉전이 시작된 해이며, 2023년은 미국의 대중국 신냉전 체제가 ‘실질적으로’ 구축된 원년이라고 짚는다. 남북 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미국이 일본의 뒤를 받치고 있는 구도는 기시감이 들게 한다. 2025년 이후 타이완해협의 위기가 본격화될 것이며 ‘주 전장은 타이완해협이지만 승부처는 한반도’가 될 거라는 저자의 정세 인식에 정신이 번쩍 든다.

 

쓰레기의 세계사

로만 쾨스터 지음, 김지현 옮김, 흐름출판 펴냄

“쓰레기는 역사를 비추는 거울이고, 우리는 쓰레기와 생각 이상으로 가깝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이전에 ‘미국을 계속 아름답게(Keep America Beautiful)’가 있었다. 1953년 미국에서 벌어진 캠페인이다. 세계대전 후 대량소비가 시작되자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막대한 쓰레기가 나왔다.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가 부적절하다고 받아들여진 것은 수십 년이 지나서였다. 책은 쓰레기와 인류가 뒤엉켜 분투해온 역사를 훑는다. 패권을 쥔 국가도 자유롭지 않았다. 19세기 말 영국에서 소각은 ‘혁신’으로 취급됐다. 곳곳에 소각장이 설치된 영국 대도시는 대기오염에 시달렸다. 대공황 시기 미국에서는 ‘쓰레기 시장’이 열렸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해 쓰레기에서 물자를 찾은 것이다. 역사와 환경 두 분야에 관심 많은 독자에게 권할 만하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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