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곤 칼럼] 중산층 문제가 된 상속세

고현곤 2024. 10. 8.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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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곤 편집인

올해 정기국회에 제출한 상속세법 개정안이 뜨거운 감자다. 25년 만에 고치는데다 집값 상승으로 상속세 대상이 늘면서 관심이 커졌다. 여야는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온도 차가 있다. 민주당은 상속세를 여전히 부자 세금으로 여긴다. ‘누구 좋으라고 상속세를 깎아주느냐’는 국민 정서가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금이 잘 안 걷히는데 자꾸 감세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현실론 또한 만만치 않다. 정부 안은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자녀공제를 1인당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올렸다. 민주당 안은 최고세율 50%를 유지하되 일괄공제를 5억원에서 8억원, 배우자공제를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인상했다. 양측이 공제를 엇비슷하게 늘린 데 비해 최고세율은 입장 차가 크다.

「 서울 아파트 한 채 물려받아도 대상
세율 높고, 과표구간 현실 반영 못해
공동재산인데 배우자에 과한 세금
유산세 방식도 논란, 근본 손질해야

최고세율 50%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OECD 평균은 26%다. 50%까지 올린 건 1999년 김대중 정부 때다. 외환위기로 서슬 퍼렇던 시절이다. 재벌과 부자를 손봐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 속에 별 논란 없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 후 25년째 그대로다. 외환위기의 유산인 셈이다. 일괄공제는 1997년부터 5억원에 묶여 있다. 그 사이 물가는 두 배로, 소득은 세 배 넘게 올랐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시대가 변하면 세율과 과표 구간, 공제를 적절히 조정해야 한다. 역대 정부와 국회는 그러지 않았다. 세금이 많이 걷히니 적당히 눈 감고 미룬 것이다. 일종의 직무유기다.

상속세는 더 이상 부자 세금이 아니다. 일괄공제·배우자공제를 합쳐 대략 10억원 넘는 재산을 물려받으면 상속세를 내야 한다. 서울에서 10억원 이상 아파트 비중이 40%에 달한다. 올해 평균 매매가격은 13억원이다. 지난해 상속세 납세자(1만9944명)의 절반이 10억~20억원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어느새 상속세가 중산층 세금이 됐다.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상속세를 걱정하고, 세금 내려고 살던 집을 팔아야 한다면 정상은 아니다. OECD에서 캐나다·호주 등 15개국은 상속세가 없다. 상속세가 있는 나머지 23개국 가운데 5개국은 자녀 상속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미국은 최고세율 40%여서 한국과 엇비슷한 것 같지만, 면세 한도가 150억원 안팎으로 엄청나게 높다. 중산층이 상속세 걱정할 일은 없다.

이중과세와 배우자 상속세는 또 다른 논란거리다. 피상속인(사망자)이 생전에 소득세 등 각종 세금을 내고 남은 재산에 다시 상속세를 물린다. 하나의 재산에 이중·삼중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셈이다. 배우자 상속세는 더 심각하다. 재산은 부부가 평생 함께 일군 것이다. 하지만 상속 때 공동재산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이 사망해 배우자가 재산을 물려받으면 상속세를 낸다. 여성이 더 오래 살고, 재산이 남편 명의로 돼 있는 경우가 많아 주로 부인이 대상이다. 미국·영국·프랑스에선 공동 재산으로 보고 배우자에게 상속세를 물리지 않는다. 이혼 때는 공동재산으로 간주해 재산을 나눈다. 과도한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위장 이혼이 늘고 있다. 여성가족부나 수많은 여성단체는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성이 불이익을 받는 세제인데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유산세 방식도 과도한 부담을 낳는다. 어느 가족이 20억원을 물려받았다고 치자. 유산세는 20억원 전체에 먼저 세금부터 물린 후 남은 돈을 나눈다. 누진세여서 상속 재산을 한 덩어리로 묶어 계산하면 세금이 늘어난다. 유산세를 시행하는 OECD 국가는 한국·영국 등 4개국뿐이다. 19개국은 유산취득세다. 유산취득세는 상속 재산을 가족별로 먼저 배분한 뒤 각자의 몫에 세금을 부과한다. 가족 3명이 8·6·6억원으로 나눴으면 각각에 세금을 매긴다. 상속세가 줄어든다. 상속세와 비슷한 증여세는 유산취득세를 적용해 형평성 논란도 있다. 일본은 최고세율 55%로 OECD 1위지만, 유산취득세여서 실제 상속세는 우리보다 대체로 작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유산취득세 법률안을 이르면 내년 상반기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30억원을 세 자녀에게 물려줄 때 유산취득세를 적용하면 상속세가 2억7000만원 줄어든다. 민주당 반대로 국회 통과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한국의 상속세는 전 세계에서 유독 과중한 편이다. 세율이 높고, 과표 구간은 촘촘하다. 공제는 적고, 유산세를 택하고 있다. 상속세는 부자 세금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극심한 좌우 대립 속에 합리적 주장이 설 자리가 없다. 상속세 문제를 거론하면 부자 편을 드는 우파라는 비난이 돌아올 뿐이다. 부자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부자라고 불합리한 세제로 과도한 부담을 져서는 안 된다. ‘혼 좀 내줘야 한다’는 식의 과세는 실패로 끝난다. 종합부동산세가 그런 경우다.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 세수 부족을 이유로 과세를 강행하는 것도 곤란하다. 세수 부족은 거둬야 할 곳에서 제대로 걷고, 엉뚱한 지출은 막아서 해결해야 한다. 상속세는 공제를 늘리는 땜질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손질할 때가 됐다.

고현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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